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
유년기에 작가를 꿈꾸며 시를 짓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소녀는 바라던 그대로의 꿈을 이뤘다. 2005년 <녹차정원>으로 옥랑희곡상을 수상하며 극작가로서 두각을 드러냈고, 2010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변신>이 당선되면서 활동에 날개를 달았다.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을 뿐만 아니라, 극작가 겸 연출 동료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최원종 극단 명작옥수수밭 대표와 극단을 이끌면서 예술로 삶을 풍요롭게 채우고 있는 이시원 극작가 겸 연출과 만났다.
극작가로서의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딛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나 작가를 꿈꿨죠. 아버지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셨어요. 제가 지은 시,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언제나 귀 기울여 주셨거든요.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었는데 작가가 되어 희곡집을 내려고 하니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고요. 옥랑희곡상을 수상하고, 작품집이 나왔을 때도 아버지께서 제일 기뻐해 주셨고,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도 제가 가져다드린 신문을 보고 더없이 행복해 하셨죠."
지금처럼 책을 쉬이 구할 수도 없는 시대였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구한 책을 여러 번 읽을 정도로 글을 마음에 품고 삼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소설가라는 구체적인 꿈의 지표를 세울 수 있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해서도 '소설 스터디'를 이어가면서 정진하고, 또 정진했다. 인생의 동반자인 최원종 극단 명작옥수수밭 대표와 만난 것도 그때였다. 20대에 만나 30대가 되고 나서도 스터디 모임은 계속됐고, 극작가로서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최 대표는 희곡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마침 이 작가에게도 졸업 후 회사에 다니면서 이어가던 무미건조한 삶에 변화가 필요하던 차였다.
"뭔가 새로운 자극이 간절히 필요했어요. 이전에 썼던 단편소설을 각색하듯이 희곡으로 써봤죠. 과연 내가 자질이 있기는 한지, 제대로 쓰고 있는 게 맞긴 한 건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요. 그런데 그 작품이 옥랑희곡상을 받게 되면서 극작가로서의 한 걸음을 내딛게 된 거죠. 그만큼 <녹차정원>은 저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