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후략)".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1919년 건립된 임시정부에서 온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혹자는 '임시'라는 말에 주목하며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신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면, '헌법'을 먼저 살펴 보라고 하고 싶다. 앞서 밝혔듯 헌법에는 이미 상해의 임시정부를 계승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그리고 3.1운동이 벌어진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에 맞춰 방송사들도 100주년 특집을 방송했거나, 방송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잘 몰랐던 '그날'의 사람들
 
 MBC 다큐 < 1919~2019, 기억록 > 영상 중 한 장면

MBC 다큐 < 1919~2019, 기억록 > 영상 중 한 장면ⓒ MBC

   
MBC는 특별기획으로 < 1919-2019 기억록 >(아래 <기억록>)을 1월 1일부터 방영 중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아래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MBC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기억록>은 4분가량의 짤막한 100부작 캠페인 다큐로, 여러 스타들이 독립운동 '기록자'로 나섰다.

지난 1월 1회 김연아가 출연한 '유관순'편을 시작으로, <기억록>에서는 윤동주와 안중근 등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김상덕, 박자혜 등 평소에 잘 접하지 못했던 이들까지 다루고 있다. 3회 '김향화'편에 출연한 탤런트 신혜선의 말에서 <기억록>의 취지가 잘 드러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분들, 영화 속에 나오시는 분들, 그런 분들 말고 더 많은 분들이 있으셨을 텐데 그분들에 대해 잘 몰랐었던 게 좀 죄송한 마음도 있고... '그분들이 물려준 소중한 환경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MBC <1919-2019 : 기억록> 중 일부.

MBC <1919-2019 : 기억록> 중 일부.ⓒ MBC

 
신혜선의 말대로, <기억록>은 교과서에 잘 나오지 않았거나 우리가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에 대해 가볍게 훑을 수 있는 브리핑 형식으로 구성됐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부분 1919년 3월 1일의 만세운동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당시 수원에서 기생 33명이 주도한 만세운동도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기록에 따르면, 1919년 3월 29일 국권 침탈에 분노한 기생들이 수원경찰서에서 만세를 외치자 일본 경찰들이 이들을 체포했다. 이에 수원의 학생·상인·노동자 300여 명은 체포된 기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이 운동은 안성·해주·통영의 기생들에게도 퍼졌다. 당시 만세 시위를 주도했던 기생 김향화는 2009년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으나 후손을 찾을 수 없었고, 그의 훈장은 슬프게도 수원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로드다큐 임정>, 임시정부 흔적 찾아 중국으로 간 기자들
 
 <임정로드> 갈무리.

<임정로드> 갈무리.ⓒ OhmyTV

  
한편 <오마이뉴스>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일'을 벌였다. 지난 2018년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20박 21일 동안 독립운동사의 흔적을 따라 6800km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를 <로드다큐 임정>이라는 이름으로 다큐 영상물을 내놓았다. 매번 반복되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기자들 나름의 답을 내려 보고자 '현장'에 직접 가본 것이다.

<로드다큐 임정>의 시작은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의 1932년 4월 29일 행적을 쫓는 것이었다. 이날 윤봉길은 상하이 원창리 13호에서 김구 선생과 마지막 식사를 함께했고 시계를 교환했다고 한다. 70여 년이 지난 후인 지난해 기자들이 그곳에 가보니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건물 터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후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상하이를 거쳐 자싱, 항저우, 난징을 방문하는 등 임시정부의 흔적들을 찾아나섰다.

윤봉길의 거사 이후 일본의 탄압이 거세졌다.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무차별적으로 잡혀가자 임시정부는 근거지를 항저우로 옮겼다. 이때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은 자싱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을 포함한 임정 요인들은 2년 동안 저보성(褚輔成) 선생의 보호 아래 은둔할 수 있었다. 현재 그 자리는 박물관 형태로 복원돼 당시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로드다큐 임정>은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의 흔적을 찾는 여정도 중요하게 다뤘다. 약산은 난징의 금릉대학에서 20대 때 영문학을 수학하다가 신흥무관학교로 적을 옮겼고,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지금까지도 잘 알려진 의열단을 창설했다. 그러나 곧 군사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광저우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임정팀이 추적하는 약산의 흔적들은 말 그대로 '흔적'으로만 남아 있거나 그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세웠던 조선혁명 간부학교는 갈 수 있는 길조차 험난할 뿐더러 허름한 폐허로만 남아 있거나 보존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유일한 흔적은 '천녕사'라고 적혀 있는 빨간 글씨뿐이었다. 독립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의 본부가 1939년 계림으로 넘어왔었는데,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상태다. 

흥미로운 기독교의 독립운동
 
 CBSTV <북간도의 십자가> 포스터.

CBSTV <북간도의 십자가> 포스터.ⓒ CBS

  
2019년을 앞두고 CBS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를 제작했다. <북간도의 십자가>는 북간도 출신의 마지막 생존 인사인 문동환 목사와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역사 이야기다. 문 목사의 조카인 배우 문성근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약 1900년 이후로 동아시아 정세가 혼란해지면서 조선 역시 안전하지 못하게 되자, 김약연 목사,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 등 여러 가문이 북간도로 이주해서 공동체를 꾸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진보적인 캐나다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마을과 학교를 세워 일제에 저항하고자 했다.

당시 북간도 용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동휘는 전도사 출신이었다. 그는 교회와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삼천 개의 교회와 삼천 개의 학교가 세워지면 조선의 독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한 것이다. 학생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성경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동휘는 주장했다. 
 
 북간도에 있는 막새기와다. 막새기와엔 태극기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다큐 <북간도의 십자가> 중 한 장면. 북간도에 있는 막새기와의 모습이다. 막새기와엔 태극기와 십자가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CBS

 
북간도 용정에 3만 명이 넘게 모여 벌인 3·13 시위에는 많은 이들이 태극기 또는 십자가를 들고 나왔다. 천주교회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립선언 포고문이 낭독된 뒤에 만세 시위 행진을 하려고 했는데, 이 계획을 사전에 알아차린 일본은 시위대의 대한독립기를 빼앗고 무차별 사격을 감행했다. 이 일로 시위 당시 18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당했다. 

기독교와 만난 독립운동의 당시 모습은 많은 비기독교인들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다큐 중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의 육성에서도 드러나듯, 현지 교회에서는 독립군이 찾아오면 최선을 다해 먹을 것을 대접하고 여러 가지 편의와 숙소를 제공했다. 청산리 대첩에서도 기독교인들이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고달픈 민중의 삶 속에서 구원과 해방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상만큼 급진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북간도의 십자가>를 연출한 반태경 PD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기독교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면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도 큰 감동을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억록>부터 <로드다큐 임정> <북간도의 십자가>까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방송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일반인으로서는 이런 방송들이 없으면 엄혹하던 시기 해방을 염원하며 활동하던 이들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방송들의 의미가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기억록>은 매주 월요일 MBC를 통해 방송 중이고, <북간도의 십자가>는 오는 CBS에서 3월 1일 1부와 2부가 연속 방영될 예정이다. <로드다큐 임정> 또한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들을 언제든 볼 수 있다. 100년 전의 역사란 기억하지 않으면 희미해지는 일들인 만큼, 더욱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같은 역사 다큐를 찾아 살펴보는 시도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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