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밴드 위저의 < Weezer(Teal Album) > 커버. 정규 12번째 앨범이자 커버 앨범이다.

록 밴드 위저의 < Weezer(Teal Album) > 커버. 정규 12번째 앨범이자 커버 앨범이다.ⓒ 워너뮤직코리아


<삼국지>를 읽어봤다면 '사공명주생중달(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쫓아내다)'이라는 일화를 기억할 것이다. 제갈량의 병사 소식을 듣고 촉군을 추격하던 사마의가 태연히 의자에 앉아있는 제갈량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군사를 돌렸는데, 알고 보니 생전 제갈량이 사후를 대비하여 본인을 본따 만든 목상이었더라는 이야기다. 재상을 잃은 위기의 촉군은 제갈량의 계책으로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2018년 팝 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잊혀져 가던 록밴드 위저가 1982년 밴드 토토(Toto)의 히트곡 'Africa'를 커버해 다시금 메이저 시장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인기 TV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인기를 얻은 'Africa'를 커버하면서 위저는 오랜만에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고 2018년 한 해 가장 많이 언급된 밴드 중 하나가 됐다. 2017년 무색무취 < Pacific Daydream >의 참패로 어두운 미래가 드리운 얼터너티브 노장을 1980년대 대중음악의 영웅이 구원한 셈이다.

위저는 기세를 몰아 단 하나의 오리지널 곡 없는 커버 앨범을 본인들의 12번째 정규작으로 발매했다. < Weezer (Teal Album) >에는 위저 작사 위저 작곡의 노래가 없다. 팀을 구원한 토토를 필두로 1980년대 히트 뮤지션들 - 아하, 티어스 포 피어스, 유리스믹스, 마이클 잭슨 - 의 대표곡들을 커버했다. 블랙 사바스, 터틀스, ELO, 벤 이 킹(Ben E. King) 등의 올타임 베스트도 빼놓지 않는다.
 
 만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여자 주인공을 그린 아하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좌), 우측은 위저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다.

만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여자 주인공을 그린 아하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좌), 우측은 위저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다.ⓒ 아하, 위저 유튜브 캡쳐

 
그 유명한 '빌리 진'과 'Take on me',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에 수록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Mr. blue sky', 유리스믹스의 히트곡 'Sweet dreams'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소환하며 원곡을 다시 찾아 듣게 만든다. 특히 만화책 속 주인공이 현실세계 여인을 데려가는 뮤직비디오로 너무도 유명한 'Take on me'는 뮤직비디오까지 오마주했다. 

아티스트들의 대표곡만을 골라 놓은 선곡표는 < Weezer (Teal Album) >의 목적이 젠체나 허세가 아닌 봉사와 헌사임을 밝힌다. 원곡을 소화하는 태도도 간결하다. 재해석은 아주 조금이고 오리지널을 보존하여 커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걸그룹 TLC의 'No scrubs', 벤 이 킹의 'Stand by me' 커버 정도가 직선적인 밴드의 터치로 새롭다.

원래도 위저는 라디오헤드, 블랙 사바스, 스매싱 펌킨스 등 재해석에 일가견이 있던 팀이었다. 2013년 지산 록 페스티벌로 내한했을 때는 당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인기였던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를 커버했을 정도였다. 
 
 1994년 위저의 ‘Buddy holly’ 뮤직비디오. 명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메가폰을 잡아 과거 미국의 히트쇼 ‘아메리칸 밴드스탠드’를 패러디했다.

1994년 위저의 ‘Buddy holly’ 뮤직비디오. 명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메가폰을 잡아 과거 미국의 히트쇼 ‘아메리칸 밴드스탠드’를 패러디했다.ⓒ Weezer 유튜브 캡쳐

 
그래서인지 커버 수준도 좋다.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와 'Take on me' 같은 뉴웨이브 트랙이 특히 그렇고 'Paranoid' 같은 하드 록도 곧잘 소화한다. 동시에 밴드는 댄스 팝 'Billie jean'과 전자 음악 'Sweet dreams'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Africa'의 성공이 우연이 아닌 실력의 결과라는 걸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카피와 다름없기에 원곡을 듣는 편이 훨씬 좋다.

1994년 데뷔한 위저는 로큰롤의 전설 버디 홀리를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풍자하며 기성의 문법을 조롱하던 신세대 밴드였다. 그러나 2018년 'Africa'의 그들은 흘러간 옛 노래 커버로 다시 인기를 얻었고 이듬해 흘러간 유행가를 소개하는 팝 큐레이터 격 앨범을 내놨다.

< Weezer (Teal Album) >은 1980년대를 겪은 이들에게는 추억을, 1980년대를 겪지 못한 신세대에겐 새로운 형태의 유행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영원히 젊은 감각으로 승부할 것만 같던 밴드가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음을 넌지시 인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위저라서 낼 수 있는 앨범이지만 위저이기에 내지 말아야 했던 앨범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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