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메인 포스터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메인 포스터ⓒ 판씨네마


01.
영화 속 사랑 이야기는 대체로 극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통해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영화 바깥에서의 가장 큰 목적이기에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도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명확한 편이다. 현실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거나 후회를 잔뜩 남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관객들도 그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 그 순도 높은 감정과 극적인 상황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기도 한다. 과거의 스스로 역시 작품 속 주인공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속 다이아나(조시아 마멧 역)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런던으로 향했다. 남자친구 벤(매튜 쉐어 역)과의 아픈 이별까지 감내하면서 선택한 결정이었다.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리고 3년 뒤, 뉴욕으로 돌아온 지금 그녀가 새로 구한 아파트 아래층에 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헤어지면서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게 되자 미묘한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과거의 아련함과 현재의 불편함 사이에서 헷갈리기 시작하는 그녀다.

02.
소피 브룩스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인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는 헤어진 남녀의 우연한 재회로 인해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와 관계의 재정립 과정을 차분히 그려나가는 작품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로맨스 작품들이 짙고 명확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불분명한 관계와 감정에 대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그레타 거윅 스타일을 표방하는 소피 브룩스 감독의 스타일과도 연결이 되는데, 영화는 실제로 그동안 그레타 거윅 감독이 보여준 바 있는 실제성과 허구성의 경계에 대한 연출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자신의 꿈을 위해 이별을 선택했지만 우연한 재회로 인해 그 선택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후회하는 다이아나의 시선이 영화의 주요한 시점으로 작용한다.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바뀌기는 했지만 과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 작품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감독의 말을 고려하면, 작중 다이아나의 심리에는 감독 본인의 많은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로맨스는 A가 B를 좋아하거나 A와 B가 서로를 사랑하거나 하는 진행중인 관계의 상황에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혹은 스스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으나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마음을 제대로 지지할 수 없는 개인의 심리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

▲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 판씨네마


03.
홍보 상의 이유로 영화의 많은 부분이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로 귀결되고 있다. < The Boy Downstairs >라는 원제가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로 변경되어 국내에 알려진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로맨스의 영역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전체적인 영화의 내용은 내면의 걱정과 망설임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오히려 영화 속 다양한 설정들은 이 작품이 다이아나의 내면을 설명하고 그 심리를 극복해가는 과정임을 확인시켜준다.

다이아나의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에이미(데어드르 오코넬 역)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주는 방법으로 다이아나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현재 주어진 것들에 몰두할 줄 안다. 다이아나와 유사한 젊은 시절을 지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대화들을 고려하면, 다이아나의 삶이 그녀의 모습을 따라 흐를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직접 부딪히고 돌아보면서 자신 스스로의 적정선을 찾아가는 가비(다이애나 어빈 역)는 그 무엇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역시 막다른 길에 부딪히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쪽으로 선택을 몰고 가는 다이아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자신만을 사랑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 강단 있게 행동하는 가비의 모습은 다이아나의 현재에 시사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

04.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다이아나의 모습에서도 유사한 문제는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처음의 장면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가 여전히 꿈만 가진 채로 현실을 지탱하기 위해 드레스 숍에 취직하게 되는 장면이 눈에 밟힌다. 소중한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런던에 쏟았지만 결국 그녀의 삶은 3년 전 뉴욕에 존재하던 그녀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벤에게 진심을 고백한 후 일정 정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그녀의 일상에서는 글을 쓰는 행위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과연 감독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이 장면들을 생략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3년 전의 계획을 성공하지 못한 채 원래의 보금자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그러니까 벤과의 재회는 단순히 옛 연인과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되기보다는 그 감정에 자신이 런던으로 향하기 위해 포기했던 기회 비용의 몫까지 합쳐지게 되는 셈인 것이다. 다이아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적극적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작가의 길을 포기하지도 못한 그 어중간한 갈림길 사이에서 말이다.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

▲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 판씨네마


05.
몇 번의 과거 회상을 통해 이전의 선택이 현재의 모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그때의 선택으로 인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영화는 표현한다. 이를 통해 다이아나의 적지 않은 후회들이 표현되고 있지만 영화는 부정적이거나 비극적인 결말로 향할 계획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인생 속 어떤 관계에도 그 관계를 전복시킬만한 결정적인 순간은 오기 마련이며 그 때의 선택이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다이아나와 벤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물론 선택에 따른 결과의 향방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다. 3개월 만에 제안된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를 단숨에 받아들였던 에이미의 모습이 어떻다고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했지만 누구보다 빨리 사별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뉴욕으로 돌아온 다이아나가 벤과 같은 건물에 살게 되는 이 기막힌 우연은 물론 과거의 모든 굴레를 벗고 현재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던 그녀의 마음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06.
하나의 개체가 갖고 있는 성격이나 취향과 같은 무형적 가치들은 어느 한 부분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거의 대부분의 행동이나 특정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유사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가 주인공 다이아나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 또한 그런 것이다. 사랑을 놓고 한 선택이 시간이 지나 후회를 하게 된다는 단편적인 로맨스가 아닌, 사랑은 물론 자신의 꿈 앞에서도 결코 다르지 않았던 모습의 한 개인이 어떻게 그 한계를 뛰어넘어가는가 하는 것 말이다. 하나만 빼고 완벽한 이 뉴욕 아파트에 필요했던 조각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 대한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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