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계상.

영화 <말모이>로 윤계상은 새해 초부터 관객과 만나게 됐다. ⓒ 사람엔터테인먼트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기를 지나면서도 살아남은 한글의 힘. 영화 <말모이>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당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조선어학회 사람들과 수많은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안에서 윤계상이 맡은 류정환은 당대 지식인을 상징하는 인물. 고지식하면서도 소신 있는 캐릭터에 대해 윤계상은 "실제의 나와 많이 닮아있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거리감은 없었지만 그 인물이 품고 있던 신념과 의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영화 시사 이후 간담회와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여러 차례 "절망을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인물을 파고들수록 실제 자신의 모습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진 경험을 자세히 듣고 싶었다.

토론의 끝

<말모이>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썼던 엄유나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사람이 드러나는 작품이었으면 했다"는 감독의 바람을 연기로 표현하고자 윤계상은 끈질긴 토론을 자처했다고 한다. "영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며 윤계상은 "저도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했는데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감독님은 제게 벼랑 끝에 몰린듯한 절실함이 묻어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범죄도시> 이후 달라진 건 제가 제 상태를 노출 시키게 됐다는 거다. 잘 이해가 안 간다, 인물의 생각을 잘 모르겠으니 도움을 달라며 동료나 감독께 요청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김판수 역의) 유해진 형과도 많은 얘길 했다. 어떤 타이밍에 감정을 올릴 것인지, 정환과 판수는 어떤 식으로 소통했을지 말이다.  

류정환이 가진 신념과 의지를 표현하기 참 힘들더라.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친일파고, 자신은 사전을 만들고자 했고... 그때 어떤 감정이었을까 가늠이 되질 않았다. 혼자서 땅굴을 엄청나게 팠다(웃음). 눈물이 나와야 할 상황에서 체력과 감정이 떨어지면서 나오지 않기도 했고, 참 힘들었다. 류정환은 실제 여러 인물이 함께 담긴 캐릭터라 저 역시 자료들을 참고했다. 누구인지는 제작사에서 말하지 말라더라(웃음).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영화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대목에서 윤계상은 당시 현장의 감정이 올라오는지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전 단지 영화를 찍는 4개월간 류정환이 됐을 뿐인데도 너무 힘들더라"며 그는 "어떻게 그 시대에 감히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려 했을까 참 놀라웠다. 그래서 존경받는 것 같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영화 출연 이후 변한 게 있다면 그 스스로도 한글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달라졌다는 사실. 윤계상은 "며칠 전 광화문을 걷고 있는데 한글이 새겨진 돌이 너무 좋게 느껴지더라"며 "한글을 애정하는 마음이 심어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이나 콘서트 현장에서 일본말을 알게 모르게 많이 쓰잖나. 그런 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또 한글로 바꾸기 쉽지 않은데 그렇게 자각하면서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god에서 배우 윤계상까지

'막연하게 그냥 열심히 하는 것', '좀 고지식 한 면'. 영화에서 표현된 류정환의 성격을 들며 윤계상은 "그 부분이 되게 비슷하다"고 말했다. "먹고사는 문제, 돈을 밝히는 판수(유해진)의 모습을 지적하는 등 류정환이 일을 그리 유연하게 처리하진 않는데 저 역시 똑같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류정환처럼 저도 자기 세계에 빠지고, 작품마다 땅굴을 판다. <범죄도시> 전에는 매번 벼랑 끝에 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느낌이긴 한데 아까 말씀드렸듯 제 상태를 노출 시키면서 도움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엔 자신감이 너무 없었던 것 같다. 제 역할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부담스러웠는데 오히려 그 마음을 놓고 작품을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상태가 좋아지더라.   

<말모이>처럼 영화 작업은 마음과 마음이 모이는 작업 같다. 흥행이 되든 아니든 그 현장에서 뜻깊게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순간이잖나. 사실 연기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왜 안 했겠나. 근데 그런 생각이 들어도 이젠 할 수밖에 없다. 제가 좀 쓸데없는 고집이 있거든. 실패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뭐든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지금의 절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인생을 살면서 다르게 살자는 생각은 안 한다. 여전히 다음 작품에서 혼자 미친 듯이 죽네 사네 이러고 있을 것이고(웃음)."

 
 배우 윤계상.

"류정환이 그때 어떤 감정이었을까 가늠이 되질 않았다. 혼자서 땅굴을 엄청나게 팠다(웃음). 눈물이 나와야 할 상황에서 체력과 감정이 떨어지면서 나오지 않기도 했고, 참 힘들었다." ⓒ 사람엔터테인먼트

 
전반적으로 여유가 묻어났다. 최근 예능 프로에서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god 멤버들과 걷는 모습에서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가수 윤계상과 배우 윤계상을 존재하게 한 god에 대해서도 그는 성숙해진 생각을 털어놨다. 
 
"전 도움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god 멤버들에게, 연기할 땐 감독님과 배우들에게 말이다. god 재결합에 대해서도 제가 선택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다 신이 계획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기적 마음을 품고 뭔가를 하려 했던 제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재결합하면서 제가 그동안 못 본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감사하다. 

산티아고 길을 끝까지 걸으면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 펼쳐진다. 제 삶에 영향을 분명히 주더라. 그걸 지금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첫날 30km를 걸었는데 너무 힘들고 아파서 괜한 일을 했구나 싶다가도 결국 걷게 된다. 수만 가지 생각을 걸으면서 한다. 제 상황이나 주어진 일, 나중엔 정말 갓난아기 때까지 생각하게 되고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같이 걷고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정말 해탈의 경지까지 가는 것 같더라. 

발의 감각은 어느 순간 없어진다.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콜라나 물에 감사하게 되고(웃음). 순례길 끝 한 성당에 순례자들이 등을 밝히고 서 있는 동상이 있는데 내 생애 마지막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인생의 여정 끝에는 따뜻한 곳에 머물렀으면 하는 생각 말이다. 사실 그때 god 멤버들이 서로 울고 난리가 났었다."


20년 가까이 연예계 활동을 해오며 겪고 거친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god 해체와 재결합 관련해서도 일부 팬들이 윤계상에게 장난 반 진담 반처럼 말하는 '돌아온 탕자'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그는 "속 얘길 다 할 순 없지만 이젠 그런 이미지나 표현들이 큰 의미가 되진 않는다"고 답했다. 

"지금 이렇게 함께 하게 된 게 중요한 것 아닐까. 탕아,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여도 괜찮다. 그게 제게 중요하진 않거든. 막연하게 지금 웃을 수 있는 게 좋다. 그럼에도 절 사랑해주시는 거니 다행인 거지. 나이를 먹어가니 막연하게 흐름에 맡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른들의 마음을 좀 알게 되고, 사는 게 재밌어지는 것 같다."
 
 배우 윤계상.

"god가 재결합하면서 제가 그동안 못 본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감사하다." ⓒ 사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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