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해지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 편이 시려오는, 때로는 밉기도 한 그런 존재다. 어머니가 한 개인의 마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크다. 비록 어머니를 영원히 떠나보냈을지라도, 어머니는 자식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늘 함께 한다.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존재.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다채롭다 못해 양가적이고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TV 드라마 속의 어머니들도 그렇다. 헌신적인 어머니부터, 현명한 어머니, 때로는 얄미운 어머니의 모습까지 올 한 해 동안 방영된 TV 드라마 속 어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이런 어머니들의 다양한 모습을 한 몸에 담아낸 배우가 있다.

배우 남기애.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2014년부터 영화와 드라마로도 영역을 넓힌 그녀는 올 해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세 편의 드라마에 모두 어머니로 출연했다. 그 어머니들은 제각각 다른 사연과 성격을 지닌 캐릭터였지만, 그녀의 몸으로 재현된 어머니들은 실제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졌고,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어줬다. 배우 남기애를 통해 살아난 어머니들을 만나본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 '홍희' (tvN <마더>)
 
 tvN 드라마 <마더>의 한 장면. <마더>에서 남기애는 남편을 살해하고 형을 살고나온 뒤 딸 이보영을 찾아간다.

tvN 드라마 <마더>의 한 장면. <마더>에서 남기애는 남편을 살해하고 형을 살고나온 뒤 딸 이보영을 찾아간다.ⓒ tvN

 
그녀를 올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됐던 tvN 드라마 <마더>에서였다. 학대받은 상처가 있는 수진(이보영)이 학대받는 아이 혜나(허율)를 구하기 위해 엄마가 되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모성을 진지하게 다룬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 남기애는 수진의 친모 홍희로 등장한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홍희는 자신의 딸 수진을 보육원에 데려다 주고 자수를 한다. 정당방위 살인의 대가를 치르고 출소한 홍희는 입양 간 수진의 학교 근처에 이발소를 차리고 숨죽여 수진을 관찰하며 지낸다. 수진과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가 드라마에 등장했을 때, 난 서늘함을 느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과 감정 없는 말투까지. 그녀가 표현한 홍희는 슬픔, 두려움, 죄책감 등 깊은 감정을 숨겨둔 비밀스런 모습이었다. 그녀의 표정만 보고도 어딘지 서늘하게 느꼈던 것은, 홍희와 수진이 서로를 맞닥뜨리기를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된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그녀는 나를 묵직하게 압도했다.

홍희는 수진을 대신해 혜나를 돌봐주면서 표정을 되찾기 시작한다. 혜나와 머리를 감으면서 슬쩍 내비치는 홍희의 웃음은 무표정한 얼굴 속 그녀가 품은 깊은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 그 후 수진에게 친모라는 걸 들키고, 그녀가 토해내는 울음은 그간 딸을 보면서도 엄마임을 밝히지 못했던 모든 슬픔을 쏟아내는 듯했다. 감췄던 감정을 쏟아낸 후 홍희는 경찰에 쫓기는 수진을 돕고, 수진을 위해 또 한 번 헌신하며 자신을 치유해 간다.

홍희는 때로는 무겁게 짓누르는 엄마라는 무게를 버거워하면서도 결국 엄마이기 때문에 다시 힘을 내는 캐릭터였다. 아마 이는 드라마만큼 극적이진 않다 해도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겪는 감정이 아닐까. 자지러질듯 우는 아이를 밤새 달래며 엄마이기를 포기하고 싶다가도, 아이가 보내주는 함박웃음 하나에 다시 힘을 얻는 그런 엄마들 말이다. 남기애는 이런 모성의 양가성을 매우 잘 표현해냈다.

자녀의 진정한 행복을 응원하는 어머니 '미연' (KBS2 <최고의 이혼>)
 
 KBS 2TV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한 장면. <최고의 이혼>에서 남기애는 배두나의 이혼을 이해하려는 엄마 역으로 분했다.

KBS 2TV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한 장면. <최고의 이혼>에서 남기애는 배두나의 이혼을 이해하려는 엄마 역으로 분했다.ⓒ KBS

 
다채로운 모성의 향연이었던 <마더>가 끝난 후 난 한동안 TV에서 기억에 남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 10월 두 커플이 이혼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KBS2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눈에 띄는 어머니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극 중 석무(차태현)의 어머니 미연이었다. 미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순종적이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미묘한 분위기에 끌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로 그 배우, 반갑게도 남기애였다.

처음 느낌처럼, 이 드라마에서 남기애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뜻을 따르며 수십 년을 순종적인 아내로 살아온 엄마였다. 하지만, 성인이 된 딸이 이혼을 하겠다며 찾아왔을 때 다짜고짜 소리치며 반대하는 남편을 앞에 두고 그녀는 말한다. "이혼해라. 나도 그랬어. 너 결혼할 때 좋았는데 그게 검사 사위 봐서 자랑하려는 마음인지, 네 행복을 생각한 건지 모르겠어. 그게 한이 되더라. 너를 몰랐던 게"라고. 체면만 생각하는 남편과 달리,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솔직히 표현하는 미연은 정말 힘 있는 엄마였다.

미연은 이후 여전히 딸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남편에게 "걔가 싫다잖아"라고 강하게 말하며 자식의 행복을 수호한다. 또, 아들인 석무가 이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며느리 휘루(배두나)에게 "내 딸은 이혼하라 해놓고 너한텐 하지 말라고 못하겠다" 말하며 며느리와 딸을 모두 여성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미연의 이런 모습은 내겐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필요할 때 용기를 내어 변화를 일으키는 어머니 미연은 무척 강하고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이는 내가 엄마에게 바랐던 것,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엄마의 모습이기도 했다. 남기애가 표현한 미연이 조금이라도 어색했더라면 이런 동일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식을 이용하는 어머니 '미옥' (tvN <남자친구>)
 
 tvN 드라마 <마더>의 한 장면. 남기애는 <마더>에서 표독스러운 엄마 미옥을 연기한다.

tvN 드라마 <남자친구>의 한 장면. 남기애는 <남자친구>에서 표독스러운 엄마 미옥을 연기한다.ⓒ tvN

 
<최고의 이혼>을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났다. 바로 요즘 한창 방영 중인 tvN <남자친구>에서다. 이 드라마에서 수현(송혜교)의 어머니로 분한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헌신적이거나, 조용하면서도 현명했던 어머니 역할을 했던 남기애가 맞나 싶을 정도 그녀는 욕심을 가득 채운 이기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남편을 청와대에 입성시키겠다는 욕망을 지닌 미옥은 남편의 정치자금을 대는 태경그룹과 손잡기 위해 딸 수현을 이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태경그룹의 아들 우석(장승조)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수현을 이해해주거나 딸의 자유로운 삶을 응원해줄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남편이 권력을 잡고, 그에 따라 주어지는 권력을 함께 누리기 바라는 그녀는 수현의 전 시어머니 화진(차화연)에게 굽신거리며 수현의 재혼을 추진한다. 유명 정치인 아버지 덕에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한 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수현의 아빠 차종현(문성근)보다도 더하다.
 
미옥은 자신의 욕구와 딸의 인생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치 딸을 자신의 소유물 인 냥 대한다. 미옥을 보면서 '엄마가 어쩌면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나 역시 아이가 내 뜻대로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직 중반에도 이르지 않은 이 드라마에서 미옥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기애는 이전의 두 드라마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모성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 한해 남기애는 이렇듯 다양한 모성을 보여줬다. 그녀가 연기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기도 했고, 가부장적 가정 문화에 반기를 들고 자식의 행복을 지켜주기도 했다. 또,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식을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올해로 딱 10년 차 엄마가 된 나는 한 해 동안 남기애가 표현한 어머니들을 보며 나 자신을 비춰보기도 했고, 나의 어머니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각 드라마마다 모성의 한 측면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자연스러웠기에 나의 현실을 비춰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남기애가 올 한 해 동안 담아낸 어머니들의 모습은 우리의 어머니들 그리고 엄마인 우리 자신들이 모두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엄마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엄마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해준 배우 남기애에게 감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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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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