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와 NC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잠수함 투수 이태양(한화 이글스 우완투수와는 동명이인)은 이미 고교 2학년 때 팀을 전국대회 4강에 올렸고 청소년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억대의 계약금을 받진 못했지만(계약금 9000만 원)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4순위의 높은 순번에 지명되며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프로 입단 후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음에도 2012 시즌이 끝난 후 신생 구단의 특별 지명을 받았다. 그 정도로 장래성이 돋보이는 투수였다. 

이태양은 이적 후에도 2년 동안 4승에 그쳤지만 2015년 풀타임 선발 투수로 성장하며 10승5패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했다. 3.67의 평균자책점은 팀 내에서 두 외국인 투수 재크 스튜어트(2.68)와 에릭 해커(3.13)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지난 2015년 프리미어12 국가대표에 선발돼 한국의 초대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당시 한국 나이로 23세에 불과한 이 젊은 잠수함 선발 투수에겐 창창한 앞날이 보장돼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이미 야구팬들의 기억에서 잊힌 지 오래다. 2016년 7월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되며 소속팀과의 계약이 해지됐고 집행유예를 구형 받으면서 작년 1월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실격됐다. 그 선수가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동료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승부조작 의혹을 폭로했다.

야구팬들 비난 감수하며 '문우람의 억울함' 호소한 이태양
 
'승부조작' 이태양·문우람 기자회견 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승부조작' 이태양·문우람 기자회견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양은 1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히어로즈 시절의 동료였던 문우람과 함께 등장했다. 이태양의 입단 동기인 문우람은 이태양의 승부조작에 브로커로 참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문우람은 자신에 대한 브로커 의혹이 나왔을 때부터 혐의를 부인해 왔고 이태양 역시 자신의 승부조작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문우람의 결백만은 믿어 달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태양은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내 잘못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문우람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며 "과거 검찰조사 당시 내가 했던 진술 때문에 문우람이 브로커로 낙인 찍혔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진술이 죄 없는 문우람을 브로커로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문우람 역시 우연히 알게 된 브로커 조아무개씨에게 받은 선물이 승부조작의 대가처럼 됐다며 다시 한 번 결백을 주장했다.

이태양은 이미 영구실격 무효소송 2심에서도 패소하면서 야구계로 돌아올 거의 모든 길이 막혔다. 지난 2012년 같은 혐의로 영구실격을 당했던 박현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승부조작으로 인한 영구실격 판정이 훗날 뒤집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문우람은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실격을 받았지만 법원의 판결에 반발해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는 재심 결과에 따라 문우람에 대한 영구실격 혐의에 대해 다시 심의를 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야구팬들이 정말 충격을 받은 내용은 따로 있었다. 이태양이 왜 자신에게 한 것처럼 승부조작 혐의를 조사하지 않느냐며 밝힌 동료선수들의 실명이다.
 
기자회견에서 언급된 6명 선수의 실명과 의혹

이태양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2015년 클럽에서 브로커 조아무개씨로부터 승부조작을 청탁 받던 도중 "A, B, C, D, E 등도 지금 이미 다 (조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 선수들의 실명을 폭로했다. 그 중 A 선수에 관해서는 '자신이 조작할 경기에 직접 배팅을 해 스포츠 도박에도 참여한다고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태양은 이 선수들의 이름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왜 자신에게 한 것처럼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리고 기자회견 문서에는 이태양이 직접 밝힌 5명의 선수 외에 F 선수의 이름도 있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파장이 커진 것은 F의 이름이 등장한 후부터였다. 이태양이 직접 언급한 5명은 올 시즌 부진한 선수도 있고 아직 팀의 중심으로 성장하지 못한 선수도 있으며 이미 팀을 떠난 선수도 있다. 하지만 한화 F는 올 시즌 각종 상을 휩쓴 선수다. 당연히 후폭풍도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울먹이는 문우람 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문우람이 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 울먹이는 문우람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문우람이 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F을 비롯해 이태양에 의해 이름이 언급된 선수들은 하나같이 이태양의 발언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F는 이름이 언급된 것조차 황당하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SK 와이번스 A 역시 이태양과는 전혀 알지 못하고 팀 동료였던 문우람과도 사적인 친분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 법원으로부터 승부조작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받은 B도 NC구단을 통해 반박에 나섰다.

승부조작 가담은 물론 직접 자신이 조작한 경기에 베팅까지 했다고 지목 받은 C도 전 소속구단 두산 베어스를 통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밝혔다.

승부조작은 그 종목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에서 스포츠 선수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 중 하나로 꼽힌다. 음주운전, 금지약물 적발 등에 대한 징계가 출전정지, 벌금, 사회 봉사 정도로 결정되는 데 비해 승부조작이 한 번의 적발로 영구실격 처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6년 이태양 사건 이후 한동안 잠잠해진 승부조작 문제가 당사자의 폭로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자회견 후 보도된 바에 따르면, 기자회견에서 실명이 거론된 선수들의 소속 구단은 자체 조사에 들어갔으며 한국야구위원회(KBO)에도 사실 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KBO를 비롯한 관련 기관에서는 하루 빨리 진실을 가려내 팬들이 편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제기된 의혹을 조사해 만약 사실이라면 연루된 선수들을 엄벌에 처하고, 그렇지 않다면 승부조작의 뿌리가 완전히 뽑혔음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증명해야 마땅하다. 하필이면 프로야구의 잔칫날인 'KBO 골든글러브'가 열리는 날 나온 충격적인 폭로가 오히려 프로야구의 '깨끗한 이미지'를 확고히 할 기회가 되려면 말이다.
 
빈자리 많이 보이는 야구장 12일 2018 KBO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에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정운찬 KBO 총재는 이날 오전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문제 등을 포함한 최근 야구계 논란에 대한 입장 표명 기자회견을 했다.

서울 잠실야구장(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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