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을 두고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동학대'라는 사회적 이슈를 상업영화의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이 그렇고, 주인공을 포함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 대부분이 '여성'이며 두 여성 간의 연대를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많은 자본이 투입된 대형 블록버스터가 아닌데도 꾸준히 상영관을 늘려가더니 개봉 4주 차에 관객 수 70만 명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고, 데뷔 15년 차 배우 한지민에게 첫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 됐다.
 
스쳐지날 수도 있었던 상아(한지민 분)와 지은(김시아 분)이 서로를 알아보고 구원이 되었던 것처럼, <미쓰백>을 발견한 관객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의미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미쓰백>의 팬덤인 '쓰백러'들은 단체 관람, N차 관람(여러 번 관람하기), 영혼 보내기(표를 결제한 후 극장에 가지 않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영화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상영관을 지켜왔다. 이 유례없는 진기한 현상은 '소비'와 '운동'의 주체로서 여성 관객을 드러나게 했고, 이들은 '남성' 위주인 지금의 한국영화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영화 <미쓰백> 스틸컷

영화 <미쓰백> 스틸컷 ⓒ 리틀빅픽쳐스

 
<미쓰백>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사실 좀 긴 시간이 걸렸고, 적지 않은 어려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거든요."

지난 11월 열린 제38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미쓰백>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한지민 배우는 수상소감을 통해 개봉하기까지의 고충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험난하고 긴 여정을 잘 싸워서 이 영화를 완성"한 이지원 감독에게도 공을 돌렸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대개 지난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지만, '여성' 감독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들 때 그 과정은 유독 더 어려운가 보다. <미쓰백>을 만든 이지원 감독은 학대당하는 이웃 아동을 목격한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담아 주인공 '백상아'를 여성으로 만들었다. 투자 과정에서 이 캐릭터를 남성으로 바꾸면 투자하겠다는 제안도 있었다고 했지만, 감독은 끝내 이 여성 캐릭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투자를 받고도 배급 문제로 한동안 개봉을 연기해야 했던 이 작품은 촬영이 끝난 지 1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겨우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십 수 년을 영화판 현장에서 맨몸으로 부딪혀가며 영화감독을 꿈꿔왔던 감독은 '치열하게 싸우며' 완성한 이 입봉작의 개봉을 앞두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영화 <미쓰백>을 제작한 이지원 감독

영화 <미쓰백>을 제작한 이지원 감독 ⓒ 리틀빅픽쳐스

 
한국영화계에서 '여성'의 위치

2018년의 여성 관객들은 그 상황을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한국영화계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고, 소수의 여성들은 그 남성의 '엄마'이거나 '아내'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범죄 사건의 '피해자'로만 겨우 전시되는 정도다. 자기 서사를 가진 여성 캐릭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쓰백>이 이렇게 기울어진 판을 딛고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성 관객들은 이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건 <미쓰백>이 여성서사의 측면에서 결코 '완벽'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극 중 아동학대 재현 장면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었고,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 상아와 지은을 도와주는 남성 형사인 장섭(이희준 분) 캐릭터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반응이 있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이러한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미쓰백>이 의미를 넘어 상업적으로도 성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고, 이는 트위터에서 <미쓰백> 관람을 장려하는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미쓰백>이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사회적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었던 데는 이렇게 자발적으로 움직인 관객들의 공이 컸다.
 
 지난 8일 열린 영화 <미쓰백>의 두 번째 단체관람 현장

지난 8일 열린 영화 <미쓰백>의 두 번째 단체관람 현장 ⓒ 이유정

 
'쓰백러'와 '영혼 관람'의 탄생

'쓰백러'들은 자신이 직접 관람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예매해두고 '영혼이라도 보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예매권을 양도하는 방식으로 <미쓰백>을 지지했다. 영화를 10번, 20번 이상씩 관람하는 'n차 관람'이나 영화관을 직접 대여해 영화를 상영하는 '단관(단체관람)'도 또 다른 지지 방식이다. 사실 지난 상반기에 위안부 여성들의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 개봉 당시에도 '허스토리안'들을 중심으로 영화 관람을 장려하거나 단체관람을 추진했던 적은 있었다. 이러한 흐름들이 쌓이면서 <미쓰백>에서는 '영혼 관람'이라는 새로운 현상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소비자 운동'은 페미니즘이 부상하면서 '여성 서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적 흐름과도 궤를 같이 한다. 특히 문화 영역에서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여성 소비자들이 가장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가장 적극적인 지지의 형태가 이번 <미쓰백>의 경우와 같은 '소비장려운동'이라면, 반대로 가장 적극적인 저항의 형태로는 '불매 운동'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소비자운동은 '영화'를 넘어 문화 전반의 영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출판 업계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도서의 판매가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 텀블벅 등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도 페미니즘 굿즈나 프로젝트의 모금액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소비 패턴이 의미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사회에서 그간 상대적으로 발언권이 잘 주어지지 않았던 젊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가장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자 선택이었던 셈이다.
 
<미쓰백>에서 상아와 지은이 보여준 '여성 연대'는 비단 영화 안에서만 그치지 않고, 이렇게 스크린 밖으로 나와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만들어냈다. '영혼'까지 오가는 이 진한 연대를 마냥 흥미롭다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건 여성들에게 이 문제가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이 간절한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콘텐츠 리뷰 미디어 <치키>에도 실렸습니다(http://cheeky.co.kr/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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