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지난 9월 19일의 남북군사합의를 '굴욕적 합의'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와 안보를 제고하기 위한 합의를 그들은 그렇게 깎아내리고 있다.
 
군사문제에 관한 합의를 굴욕적 합의로 규정할 수 있으려면, 어느 한쪽이 배상금을 부담하거나 군사주권을 포기하는 등의 일이 있어야 한다. 군사문제와 관련해 지난 100여 년간 동아시아에서 체결된 조약 중에 가장 굴욕적인 것 중 하나는 1895년 청나라·일본 시모노세키조약(하관조약·마관조약)이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일본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데도, 일본 돈 3억 6천만 엔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 돈은 청나라의 3년치 정부예산, 일본의 4년반치 정부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이를 밑천으로 일본은 산업 근대화를 일으켰다. 이 정도면 청나라한테 굴욕적 합의였다고 말해도 당연하다. 9·19 군사합의에서 이 정도의 굴욕적 조항을 발견할 수 있을까? 눈을 몇 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20일 방송된 MBC <피디수첩(PD수첩)> '화살머리고지 전투' 편은 남북 군사합의가 어느 한쪽에 굴욕을 주기보다는 양쪽 모두에 이익을 주는 이유를 설명했다. 강원도 철원군의 백마고지 전투와 더불어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철원군 화살머리고지 및 상감령에서 얼마나 끔찍한 참상이 벌어졌는지를 소개했다. 우리 군인들이 더는 그런 참상을 당하지 않도록 막으려면 남북 군사합의 같은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방송이었다.   

휴전 직전 화살머리고지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백마고지 바로 옆 서쪽의 화살머리고지는 지난 10월 17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임 실장이 언급한 수통에는 총알 자국이 30여 군데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총탄과 얼마나 많은 포탄이 해발 281미터짜리 작은 고지에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곳에서는 휴전 직전인 1953년 6월 29~30일과 7월 6~11일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고지를 사수하려 하고, 북한군과 중공군(중국군)은 고지를 빼앗으려 하는 전투였다.
 
<피디수첩>은 "남북한 병사들과 유엔군, 중공군까지 가세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수천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말로 화살머리고지 전투의 규모를 설명했다. 육군 2사단 32연대 작전주임으로 전투에 참가한 변일현(1928년 생)씨는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처절한 전투"였다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한번 쏘게 되면 백여 발씩 떨어지는데. 거기에 말이에요. 그러니까 틈이 없이 떨어지는 거예요. 참호에 들어가 있어도 소용없어요. 지하에 들어가 있어야 해요. ······ (백병전 뒤에) 아군 측의 상황이 어떻게 됐나 해서 (참호 밖을) 내다보게 되면, 허예요. 적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허옇게 쓰러져 있어요."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공중에서 폭탄이 비오듯 쏟아졌다고 한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촘촘히 떨어졌다고 한다. 그 결과, 쓰러진 시신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시신들이 흰색이었을 리 없는데도 '허옇다'라고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전투가 참혹하다 못해 환상적으로까지 기억될 여지가 있었을 정도로 끔찍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좁은 고지에 총탄·포탄이 폭우 내리듯 떨어지다 보니, 전사자들의 시신 또한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팔다리 등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 시신들이 온 사방에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생존한 병사들도 그런 장면에 익숙해지게 됐다. 삼강령 전투에 참가한 문관혁(1934년생)씨는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고지에) 올라가서 참호를 파는데. 소대본부를 파는 거예요. 사람 팔이 이만한 게 나왔어. 벽에서. 그게 인민군 팔인지 중공군 팔인지 한국군 팔인지 모르잖아요 팔을 보고 분간할 수 없잖아.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라고 팔 잘라 버릴 수 없잖아. 판 참호를 무시하고 다른 데 가서 팔 순 없었어요. 장소가 그곳밖에 없는데. (전사자의 팔이) 하필 내 침대 머리맡에 있는데, 그날 저녁 그 팔 위에 밥상 놓고 밥 먹었어요."
 
더욱 더 서글픈 것은, 그런 시신들이 제대로 수습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무장지대 안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로 65년간이나 방치됐으니, 얼마나 많은 원혼이 이곳에 서려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철원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이유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남북분단 이전에는 철원이 지금의 대전과 비슷했다. 철원은 한반도 전체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곳이었다. 거기다가 기름진 쌀을 생산하는 철원 평야도 있었다. 해방 전에 백화점이 있었을 정도로 부유한 곳이기도 했다.
 
그 옛날 궁예가 이곳에 도읍을 둔 것도 철원이 갖는 전략적·경제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이 바로 위쪽의 평강군·김화군과 함께 '철의 삼각지대'로 불린 것도 이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철원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놓칠 수 없는 땅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이 '철원만큼은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며 전투 독려차 방문했다는 김일성 고지가 이곳에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철원 땅에 대한 김일성의 애착을, 역사학자 이은식은 <지명이 품은 한국사> '세번째 이야기 2편'에서 "철원의 고지를 빼앗긴 김일성 당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3일 동안 애통해 하며 식음을 전폐했다는 소문이 전하기도 한다"하는 말로 설명한다. 그 정도였으니, 이곳에 엄청난 물량의 포탄과 총탄이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결하는 병력의 숫자를 줄여야 평화가 보장된다
 
 백마고지역에서 찍은 사진.

백마고지역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피디수첩>이 강조한 대로, 남북 군사합의는 비무장지대에서 초소(GP)를 없애고 지뢰를 제거하고 도로를 연결함으로서 전쟁 발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화살머리고지 전투, 백마고지 전투, 상감령 전투 같은 참극을 이 땅에서 근절하기 위한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의 군사충돌은 한국전쟁 휴전 후에도 계속 있었다. 비무장지대는 최근까지도 위험한 곳이었다. 연평해전 사례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휴전 뒤에도 남북은 육상과 해상에 걸쳐 수시로 충돌했다. 이런 충돌의 소지를 없애고, 진정한 의미의 비무장지대를 만들자는 게 이번 합의의 취지다.
 
자유한국당 논리대로라면, 양쪽이 더 많은 병력을 맞대고 있어야 평화가 보장되게 된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려운 논리다. 이는 과거의 독재정권이 주입한 논리와 같다. 대결하는 병력의 숫자를 줄여야 평화가 보장되고 안보가 보장된다. 이것이 이치에 맞고 상식에 부합한다. 남북 군사합의는 그런 이치와 상식에 입각해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피디수첩>에서 지적된 것처럼, 자유한국당은 '북한 쪽 GP가 훨씬 많은데도, 시범 철거때 양쪽 10개씩 철거하기로 한 것은 남한에 굴욕적이다'라는 식으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시범 철거에서 똑같은 숫자를 철거하더라도, 결국 북한 쪽 GP가 더 많이 철거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것처럼, 그쪽 GP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누가 손해를 보는가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겠지만, 자유한국당처럼 손익을 굳이 따진다면 엄밀히 말해 손해를 보는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이 더 많은 GP를 철거하게 된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현재까지 철거된 숫자가 똑같다는 이유로 남한이 굴욕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기존 방법과 질을 달리 하는 9·19 남북 군사합의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자유한국당이 화살머리고지 등에서 벌어진 전투들가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주었는지, 그런 충돌이 최근까지도 계속됐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그런 엉뚱한 논리를 들고 나와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 대결 강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평화와 안보를 강구하는 것은 이제껏 보수정권이 썼던 방식이다. 이 방식이 실패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방식을 쓰는 동안에 한반도의 긴장상태는 더욱 더 고조되기만 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는 기존 방법과 질을 달리 한다. 대결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방법으로 평화와 안보를 강구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무대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GP를 없애고 유해를 발굴하고 도로를 내고자 한다. 싸울 일을 만들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와 안보를 추구하는 접근법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충돌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전쟁 가능성에 대한 대비는 당연히 계속돼야 한다. 이번 군사합의는 그런 노력에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되지는 않는다. 전쟁 발발을 재촉하는 시설을 없애면, 그만큼 전쟁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이번 군사합의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연평해전으로 아들 잃은 아버지의 한 마디

아직까지도 '휴전선에 더 많은 군대를 배치해야 안전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국민들을 바보처럼 다루던 독재정권의 거짓 공작에 자신이 세뇌된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경험법칙과 상식으로 판단해보면, 싸울 일을 안 만드는 게 싸움을 막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연평해전에서 아들 박동혁 병장을 잃은 박남준씨는 9·19 군사합의에 대해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부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수 있고 억측도 나올 수 있고. 김정일을 그냥 송곳으로 찔러 죽여버리고 싶은데, '지금 하고 있는 행위는 우리 민족이 다 가야 할 길이다. 우리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박남준 씨.

박남준 씨.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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