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낯선 곳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말 섞는 게 좋아서다. 그래선지 해외를 가더라도 절대 렌터카를 빌리지 않고, 아무리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당연히 택시보다는 지하철이나 버스가 현지인들과의 접촉면이 넓다.

나와 내가 사는 고장, 국가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썩 괜찮은 경험이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지금껏 몰랐던 잠재된 성격과 습관을 깨닫기도 하고, 종종 지역과 국가에 대한 진솔한 평가도 듣게 된다.

말하자면, 스스로 '객관화'해보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가 모두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편견을 줄이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효과는 분명하다. 우리는 낯선 곳을 더 많이 찾아다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
 
 영화 <두만강> 포스터

영화 <두만강> 포스터 ⓒ 인디스토리

 
객관화

좋아하는 책도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사회에 대해 쓴 글은 쉽게 동의할 순 있지만, 그다지 새롭진 않다. 다들 공감하는 이야기를 읽기 쉽도록 글재주 부려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책들을 읽고 나면 늘 '학자들은 지금껏 세상을 해석해 왔지만, 이젠 세상을 바꿔야 할 때'라는 마르크스의 말이 떠올라 허무해지곤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외국인의 시각에서 솔직담백하게 적은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그들이라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지만, 읽고 나서 그렇게 허무하지는 않다. 평소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온 것들이 대수로울 수 있음을 콕 집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점이든 뭐든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를 가르쳐준다.

지난 주말 연거푸 본 두 영화 이야기를 하려다 서두가 길었다. 좋아하는 영화도 다르지 않다. 제3자의 시각에서 우리 모습을 소란스럽지 않게 보여주는 작품에 눈길이 간다. 그런 영화가 별로 없지만, 제작자든 감독이든 그가 외국인이라면 영화관을 도서관 찾듯 공부하러 간다.

재미가 있고 없고는 다음 문제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대학 강의라고 생각하고 경청하면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작품은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영화 속 장면과 배우들의 대사 어느 하나 버릴 건 없다. 강의가 그렇듯 사람마다 배움과 깨달음의 내용과 정도가 다를 뿐이다.

오래 전 학교에서 아이들과 <두만강>을 관람하며 장률 감독을 처음 알게 됐다. 당시는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탈북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였다. 엄혹한 현실을 차분하고 담담한 앵글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그의 시각이 퍽 감동적이었다.

호흡이 워낙 긴 영화인 탓에 아이들은 보는 걸 버거워했다. 러닝타임이 80여 분에 불과한데도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이 많았다. 관람 뒤 한 아이는 공간적 배경이자 제목인 두만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 자신들에게는 무척 불편한 영화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의미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후끈한 재미도 없고, 배우들의 연기도 어설펐다는 혹평에도,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 시의적절한 영화라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했다. 분명한 건 장률 감독이 아니었다면, 그런 영화는 나올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편견에 맞서 스크린을 무기로 싸우는 재중동포, 곧 조선족이다.

재중동포가 본 대한민국
 
 영화 <군산> 포스터

영화 <군산>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장장 네 시간 반에 걸쳐 영화 <경주>와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를 이어 관람했다. 개봉한 건 2014년 작품인 <경주>가 먼저지만, 역순으로 영화관을 찾아 <군산>부터 보았다. <군산>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11월 8일에 전국 동시 개봉했다.

<군산>은 예상대로 호흡이 길었다. 마치 흑백영상처럼 퇴락한 배경에 배우들의 대사조차 속도를 2배쯤 늘여놓은 듯 느리고 더뎠다. 앞 장면과 바로 이어진 장면을 연결 지어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배경도, 대사도, 몸짓도, 심지어 소품과 스치듯 보이는 글귀조차도 죄다 복선인 듯 난해하다.

노총각 후배 시인과 이혼녀인 선배의 애매모호한 로맨스를 그린 영화라는 소개말이 엉뚱하게 여겨질 정도다. 전날 밤 함께 술에 취해 새벽녘 갑작스레 둘만의 여행을 떠나고, 낯선 곳에서 서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설정은 식상할 정도로 익숙하지만, 문제는 영화관을 나올 땐 그렇게 기억되지 않는 데 있다. 빤한 이야기에 '송곳'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군산>의 줄거리를 묻는다면, 딱히 해줄 말이 그 '빤한 이야기'밖에 없지만, 한국인들의 치부를 묘사한 장면이 많아 보는 내내 불편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게 될 것 같다. 여느 영화에서처럼 피상적인 묘사가 아니라, 보다가 부지불식간에 맞장구칠 만큼 리얼해 순간 뜨끔하기까지 하다. 제3자의 시각을 지닌 장률 감독이기에 가능한 장면들이다.
 
 영화 <군산>의 한 장면.

영화 <군산>의 한 장면. ⓒ (주)트리플픽쳐스

 
불륜 행각 따위는 낄 계제도 못 된다. 치매에 걸린 해병전우회 소속 아버지의 모습은 과거 '가스통 할배'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을 연상시키고, 그가 가정부로 들인 조선족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모습에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그런 그가 가정부를 겁탈하려는 장면은 웃프기까지 하다.

진보세력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한다. 두 주인공은 진보세력으로 그려지는데, 둘 중 이혼녀 송현(문소리 분)은 그의 사촌언니로부터 아예 '빨갱이'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들이 얼치기 시민단체에 휘둘리는 모습을 통해 진보세력의 나이브함을 꼬집는다. 애초 노총각 시인 윤영(박해일 분)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은근히 색을 밝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압권은 평소 '엄근진'한 모습의 그가 자폐를 앓고 있는 민박집 사장의 딸을 건드리는 장면이다. 이는 얼마 전 사회적 이슈가 된 특수학교 성폭행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 "너는 되고 나는 안 돼"라는 대사가 섬뜩하다. 또, 아버지가 들인 가정부가 윤동주 시인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을 통해 천박한 국민성을 꼬집는 장면도 뜨끔하다.

관람 후기에 재미없다, 지루하다, 난해하다는 혹평이 많지만, 난 조선족 출신 영화감독의 한국인 비판으로 읽혀 나름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군산>은 잔잔하고 따뜻한 '계몽 영화'다. 의무와 당위만을 강제하는 군사정권 시절의 구닥다리 영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살짝 비틀어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죽비 같은 작품이다.

다만, 부제로 쓰인 '거위를 노래하다'의 함의를 도무지 알 길 없어 답답했다. 거위가 나오는 장면은 두 시간 넘도록 딱 두 번뿐이다. 시인의 서울 집에 기르는 실제 거위의 모습과, 엔딩 장면에서 자막으로 등장하는 한시 '영아(咏鵝)'의 시구에서다. 한시 제목의 우리말 풀이가 곧 '거위를 노래하다'인데, 아무리 관련성을 떠올리려 해도 '갑툭튀'인 것만 같다.

<군산>과 <경주>
 
 영화 <경주> 포스터

영화 <경주> 포스터 ⓒ 인벤트 디

 
그래서 장률 감독의 전작인 <경주>를 부러 다운로드해 보았다. 도시를 공간적 배경 삼은 것도 같고, 무엇보다 동일한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산>은 <경주>의 속편이라는 사실을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을 본 뒤라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 함의를 알든 모르든 <군산>을 관통하는 소재가 부제에도 쓰인 거위라면, <경주>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소재는 단연 '춘화(春畵)'다. 친한 선배의 죽음으로 한국에 온 주인공(박해일 분)은 7년 전 경주의 한 찻집에서 본 춘화를 통해 옛 추억을 곱씹는다. 조문을 마친 후 춘화를 보러 경주를 찾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찻집은 그대로되 찾던 춘화는 벽지로 덧발라져 숨어버렸다. 대신 새로 찻집을 인수한 여주인공(신민아 분)과 새로운 추억을 쌓게 된다. 선배와의 옛 추억은 벽지 속에서 시나브로 사라지고, 그녀와의 새 추억은 벽지 밖에 새로 쌓여갈 것이다. 둘이 서로 '새로운 춘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잔잔하게, 때로는 웃프게 화면에 담아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관객들이 감독의 머리 위에 있다. <경주> 역시 위태위태한 부부가 옛 추억을 떠올리고,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아슬아슬한 사랑을 나눈다는 그저 그런 로맨스물이다. 장면마다 한국인의 치부를 은근슬쩍 건드리는 것 또한 <군산>과 별반 다르지 않다.

후줄근한 옷차림만 보고 무시하던 지방대 교수가 주인공이 북경대학 정치학 교수라는 걸 알고는 깍듯이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런 그가 가장 먼저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문화재 훼손이라며 나무라던 경비원이 당사자가 경찰인 걸 알고는 무안해하는 장면 역시 조선족 감독의 눈에 비친 우리의 치부다.

공간적 배경이 경상도 경주에서 전라도 군산으로 바뀐 것 빼고는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여주인공이 이혼녀에 남편과 사별한 부인으로 바뀌었지만, 같은 인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흡사하다. 고풍스러운 경주의 찻집을 군산의 허름한 칼국수 집으로, 경주의 여주인공 집을 군산의 민박집으로 바꾼다 해도 스토리상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영화 <경주>의 한 장면

영화 <경주>의 한 장면 ⓒ 인벤트 디

 
그가 찾던 춘화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추억처럼 등장한다. 풀밭에서 성교하고 있는 남녀와 그 옆에 생뚱맞게 거위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7년 전 춘화를 보며 키득거리는 남주인공 앞에 시간을 거슬러 여주인공이 찻잔을 들고 와 앉으면서 그들의 '새로운 춘화'는 추억으로 완성되고 이내 자막이 올라간다.

남녀의 뒤엉킨 모습에 민망해했을 거위는 노래하듯 주둥이를 벌리고 있다. 춘화 속에 등장하는 그 거위를 소재 삼은 영화가 바로 후속편인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 아닐는지. 그렇다면, <경주>를 촬영할 때 이미 4년 뒤 <군산>의 부제까지 구상해놓은 셈이니 놀라울 뿐이다. 영화를 따라 경주와 군산을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은 차라리 덤이다.

사족 하나. <군산>은 장면마다 하나같이 퇴락한 건물을 배경 삼고 있다. 그들이 묵은 민박집도, 옥상에서 보이는 건물들도, 칼국수 집도, 점집도, 바람 쐬러 간 해변의 집조차도 오래된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거나 사람 떠난 빈집들이다. 아무리 군산이 도심공동화가 심각하다 해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억측이지만, 지금 군산 지역의 심각한 경제 상황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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