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방영된 올리브 < 밥블레스유 >에 출연한 박진영.  이날 방영분에서 그는 자신의 사무실 벽에 유재하 1집이 걸려 있는 이유를 짧게 언급했다.

지난 10월 25일 방영된 올리브 < 밥블레스유 >에 출연한 박진영. 이날 방영분에서 그는 자신의 사무실 벽에 유재하 1집이 걸려 있는 이유를 짧게 언급했다.ⓒ CJ ENM

 
박진영은 왜 유재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일까?

국내 굴지의 기획사 JYP 엔터테인먼트의 신사옥, 박진영 대표 프로듀서의 방에는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안겨준 과거 명작 LP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최근 JTBC <아이돌룸> 같은 예능 프로 속 화면을 통해 확인된 것만 하더라도 프린스 < Purple Rain >, 마이클 잭슨 < Off The Wall >, 휘트니 휴스턴 < Whitney Houston > , 베이비페이스 < Tender Lover > 등 1970~80년대 팝 음악계를 화려하게 장식한 R&B 명작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유독 튀는(?) 음반이 하나 보였다. 그건 바로 유재하 1집이었다. 주로 미국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은 펑키+댄스 음악에서 강점을 보인 박진영과 서정성과 1980년대 소프트 팝+록이 조화를 이뤘던 유재하의 음악은 특별한 접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무실에 이 음반이 걸려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최근 올리브 <밥블레스유>에 출연한 박진영의 입을 통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음악은 유재하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유재하 선배님의 목소리를 너무 좋아한다. 편안하게 말하듯이 부른다. 바로 공기반 소리반이다."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박진영은 왜 한국 대중음악은 유재하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한 것일까?

해마다 높아지는 작품의 위상... 발라드의 교과서
 
 11월 1일 공개되는 유재하의 명곡 `지난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생전 사진을 토대로 홀로그램 기법으로 그의 모습을 재현했다.

11월 1일 공개되는 유재하의 명곡 `지난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생전 사진을 토대로 홀로그램 기법으로 그의 모습을 재현했다.ⓒ 지니뮤직

 
음악계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이른바 '가요 명반' 순위에서 <유재하 1집>의 가치는 그 어떤 음반 이상의 위상을 지닌다. 실제로 지금은 폐간된 음악월간지 <서브>의 1998년 조사, 2007년 <경향신문>과 올해 <한겨레>의 조사에서 <유재하 1집> 순위는 매번 상승하고 있다.

해외만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 및 취향이 달라지다보니,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일례로 오랜기간 해외 각종 음악지들의 명반 1순위는 비틀즈의 <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nad >가 독식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일부 매체들은 비틀즈의 또 다른 걸작 < Revolver > 등을 명반 1순위로 언급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확인된다. 최근 한겨레·멜론·태림스코어가 공동으로 음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발표한 '100대 명반' 순위에서 <유재하 1집>은 과거 20여년 이상 1위를 지키던 록그룹 들국화의 1집을 제치고 새롭게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지금은 이른바 'R&B 발라드' 등 변형된 형태의 듣기 편한 곡(예: 헤이즈)들이 널리 사랑받는 시대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발라드는 유재하, 이문세, 신승훈, 이승환 등이 선보였던 팝 발라드 성향의 곡들이었고 가장 큰 뿌리가 되어준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유재하 1집>이다.

조바꿈을 통한 악곡의 변화 주기,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적극 도입하는 등 기존 우리 가요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색깔을 지닌 음악들은 1980년대 영미 팝음악이 지배하던 국내 라디오 및 음반 시장의 축이 점차 국내 대중음악으로 넘어오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또한 소위 '뽕끼' 혹은 '신파조'로 언급되는 기성세대의 발라드와의 작별을 고한 것 역시 이 음반이 효시였다.

스스로 시대를 관통하는 음반이 되다
 
 유재하 1집(왼쪽), `우울한 편지`가 삽입된 영화 < 살인의 추억 > 사운드트랙 표지. 지난 2003년 카카오(구 로엔)의 전신인 서울음반을 통해 발매되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유재하 1집(왼쪽), `우울한 편지`가 삽입된 영화 < 살인의 추억 > 사운드트랙 표지. 지난 2003년 카카오(구 로엔)의 전신인 서울음반을 통해 발매되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킹핀엔터테인먼트, 서울음반

 
1987년 발표된 <유재하 1집>은 31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에 볼 때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단순히 대부분의 악기 연주를 혼자 담당했다는 연주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음악이 21세기에 여전히 대중들에게 유효할 수 있음을 1집 음반 스스로가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혹자는 단 한 장만 내놓고 요절한 음악인이기 때문에 '과대 평가' 되는 게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창작인의 생존 유무와 상관 없이 <유재하 1집>은 그 안에 담긴 내용물만으로도 충분히 대접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녹음된 국내 가요 음반들과 비교해서 각종 악기의 쓰임새 및 녹음 상태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은 얼핏 특이점이 발견되진 않는다. 키보디스트인 그가 직접 연주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도 각종 장비의 발전이 있었던 1990년대 음반들에 비해 투박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클래식('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재즈('우울한 편지')에 기반을 둔 세련된 화성 구성은 이른바 '소프트 팝/록'으로 분류되는 토토(Toto) 같은 1980년대 팝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유재하의 작업물('텅빈 오늘밤')에 충실한 자양분이 되어준다. 가장 1980년대스러운 소리를 담았지만 지금 들어도 촌스러운 구석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이렇듯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러 차례의 녹음(오버더빙)을 거쳐 두텁게 쌓아 만든 보컬 하모니는 폭발적인 가창력 없이도 감히 완벽한 소리를 들려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지난날') 또한 작곡, 연주 뿐만 아니라 편곡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요즘 음악계의 흐름을 일찌감치 예측이라도 한 것 마냥 미래지향적인 제작 방식은 이 음반의 생명력을 이어가게 만드는 에너지 역할을 담당해낸다.   

이쯤되면 왜 박진영이 "공기반 소리반"의 시초이자 한국 대중음악의 전환점으로 이 음반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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