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시민단체가 영화 <허스토리> 제작사에 항의 성명을 전달했다. 해당 성명은 영화가 "재판의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고, 원고들의 명예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후 책임을 묻고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 모임)'은 지난 2일 <허스토리>를 제작한 수필름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경악했고,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면서 항의 성명서를 보냈다.
 
 <허스토리> 포스터.

<허스토리> 포스터.ⓒ 수필름

  
일본 시민단체 "<허스토리>에 경악하고 분노한다"
 
지원 모임은 "이 영화는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실화에 바탕한 영화라고 선전했는데, 변호사도, 지원모임도 취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고들조차 취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절대로 픽션화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바로 원고인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법정에서 호소한 '피해 사실'"이라며 "영화 속에서 후지코시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되어 '위안부'가 된 것으로 설정된 분은 이 재판 원고였던 박SO 할머니다"라고 전했다.
 
지원 모임은 "박SO 할머니는 물론 위안부가 되지 않았고, 이 분을 정신대에 보낸 것으로 설정된 스기야마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였으며 박 할머니께서 많이 존경하고 사랑해 온 분"이라며 "실제로 정신대로 보낸 교사는 6학년 때 담임,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속에선 서귀순(문숙 분)이 일본 도야마 소재 후지코시 공장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됐으나 얼마 안 돼 일본군 위안부가 된 것으로 나온다. 또 서귀순을 근로정신대로 보낸 사람이 그녀의 담임선생인 일본인 여성으로 설정됐다. 그러나 이는 실제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지원 모임 측의 주장이다. 박 할머니는 위안부로 동원된 적이 없으며,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다가 위안소로 다시 연행돼 간 사례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또 스기야마 토미씨가 법정에 나온 것은 제자인 박 할머니가 근로정신대에 끌려간 것이 사실임을 증언하기 위해서였을 뿐, 영화에서처럼 본인이 정신대에 직접 보냈다는 진술을 한 적이 없고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지원 모임 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스기야마씨가 여전히 생존해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위안부 원고들의 피해 실태에 관해서도 증언기록이 존재하는데 왜 이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몇몇 피해자들의 경험을 짜깁기해서 과다하게 각색한 걸까요"라며 "이러한 제작 자세로 보건대, 피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좋다는 식의 상업주의에 감독이 사로잡혀, 피해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작업은 하지 않고 제작한 것은 아닌가 싶고, 감독의 불성실함과 태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원 모임은 이어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는 원고 분들께 지원모임 회원들의 집 혹은 교회에서 숙박하실 수 있도록 해드렸다"며 "그곳에서 재판 관련 회의를 했고 할머니들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노래도 불렀고 춤도 췄다. 영화에서 원고들이 여관에서 숙박한 것으로 묘사된 부분과 그곳에서 발생한 일 전부가, 감독의 황당무계한 공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허스토리> 일본 도쿄 상영회 장면.

영화 <허스토리> 일본 도쿄 상영회 장면.ⓒ 수필름

  
<허스토리> 제작사 수필름 "관부재판을 가져와서 창작했다고 밝혔지만..."
 
해당 단체는 한국에서 '위안부=정신대'라는 착오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정신대로 동원돼 간 피해자들 중 일부가 실제로 위안부가 됐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는 동원 경로가 다르며, 근로정신대는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동원 형태로 남녀 모두 동원대상이 된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앞서 영화 개봉 직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상임대표 이국언) 측도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군수공장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다가 일본군 성노예로 이중 동원된 사례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다"며 역사적 사실이 일부 왜곡돼 있음을 지적했다. 또 시민모임 측은 영화에서 관부 재판의 원고가 모두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원고 중 한 명인 양금덕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수필름 측은 사과를 하고, 양금덕 할머니를 가까운 시일 내 찾아뵙겠다고 약속하며 일단락됐다.
 
지원모임 측의 성명에 대해 민진수 수필름 대표는 6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허스토리>는 재판관이나 일본 분들을 중심으로 만들진 않았다. 할머니들과 원고 단장 중심으로 만들었던 것"이라며 "어느 한 사람의 사연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리진 않았고, 관부재판 관련 책의 내용, 소식지,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풀어냈다. 과거를 재현해서 슬픔을 강요하는 듯한 장면을 일부러 배제했고, 관부재판을 가져와서 창작했다는 것을 영화 엔딩에서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 대표는 "영화 속에서 특별히 일본인을 나쁘게 그리진 않았고, 피해자 분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제작했다"면서 "어제 지원 모임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찾아뵙고 말씀드리려 한다"고 전했다.
 
한편 <허스토리>는 지난 6월 말 개봉해 3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4일 개막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영화제작사에 항의 성명을 보낸 '전후 책임을 묻고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은 위안부 동원 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 7명 등 10명이 1992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전후 배상 소송인 일명 '관부 재판'을 지원한 단체로, 하나후사 도시오·에미코 부부가 설립하고 이끌어왔다. 이들 부부가 주축이 된 지원 모임은 재판 당시 할머니들의 체제비와 재판비용 등을 지원하고, 피해 사실을 알리는 집회를 여는 등 일본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힘을 보탰다. 재판 이후 하나후사 부부는 매년 한 차례씩 피해자와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성명서 전문>영화 <허스토리>의 제작자에게 항의한다!
우리는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전후 책임을 묻고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회원들입니다.
 
이 영화는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실화에 바탕한 영화라고 선전했는데, 변호사도 지원 모임도 취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고들조차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경악했고,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원고들의 바람과 지원모임의 바람이 무시되고 왜곡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부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측이 함께 원고로서 임했던 재판입니다. 열 분의 원고 중 일곱 분이 근로정신대 피해자입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한국사회에서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고독하게 투쟁해야 했습니다. 정신대가 곧 위안부라는 한국사회의 기존 인식 속에서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편견의 눈초리를 받으며 싸워 왔고, 이제 겨우 그런 차이와 근로정신대의 피해 실태가 인식되게 된 시점에서 그간의 편견을 증폭시키는 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근로정신대의 실태를 관부재판에서 지워 버린 것은 범죄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위안부 원고들의 피해 실태에 관해서도 증언기록이 존재하는데 왜 이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몇몇 피해자들의 경험을 짜집기해서 과다하게 각색한 걸까요. 이러한 제작 자세로 보건대, 피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좋다는 식의 상업주의에 감독이 사로잡혀, 피해자의 고통에 귀기울이는 작업은 하지 않고 제작한 것은 아닌가 싶고, 감독의 불성실함과 태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최고재판소(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며 시모노세키 판결을 내렸던 재판관들의 성의와 용기에 대한 헤아림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절대로 픽션화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바로, 원고인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법정에서 호소한 '피해 사실'입니다.
 
영화 속에서, 후지코시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되어 위안부가 된 것으로 설정된 분은, 이 재판 원고였던 박SO 할머니입니다. 이분은 98년 당시 시모노세키 판결 얘기가 한국에 보도되면서, 지역사회와 교회 시람들로부터 "위안부였던 거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창피하니까 재판은 하지 말아요!"라는 말로 가족들이 애원하는 정황 속에서 분노와 슬픔으로 인해 가벼운 뇌경색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훗날 치매 증상을 보이게 된 것은 이때 일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기도 합니다.
 
박SO 할머니는 물론 위안부가 되지 않았고, 이 분을 정신대에 보낸 것으로 설정된 스기야마 선생님은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였으며 박 할머니께서 많이 존경하고 사랑해 온 분입니다. 실제로 정신대로 보낸 교사는 6학년 때 담임, 그러니까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스기야마 선생님과의 후쿠오카에서의 감동적이었던 상봉 장면을 완전히 다른 스토리—픽션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만약 박SO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분노하고 상처받으셨을까요. 스기야마 선생님은 황민화 교육에 관계했던 자신을 깊이 후회하고, 한일간 진정한 우호를 위한 활동에 일생을 바쳐오신 분입니다. 아직 생존 중이신 스기야마 선생님이 이 영화를 우연히라도 만나는 일이 없기를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는 원고 분들께 지원모임 회원들의 집 혹은 교회에서 숙박하실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그곳에서 재판 관련 회의를 했고 할머니들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노래도 불렀고 춤도 추었습니다. 친해지면서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고민을 토로하실 때도 있었고, 그러면서 우리는 피해자들이 입은 깊은 상처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은, 원고들과 지원자들 간의 상호 신뢰와 사랑과 존경심이 깊어지면서 자신을 바꿔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원고들이 여관에서 숙박한 것으로 묘사된 부분과 그곳에서 발생한 일 전부가, 감독의 황당무계한 공상일 뿐입니다.
 
지원모임이 바랐던 것은, 원고 피해자들과 함께하며 함께 싸우는 일, 그리고 일본사회에 그녀들의 피해를 알리면서 일본정부를 향해 해결을 촉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본 국내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제작하는 모임' 등의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전쟁피해진상규명법을 국회에서 성립시키기 위한 활동도 했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배상법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 지역인 후쿠오카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기 위한 선거전 등의 활동도, 부족하나마 해 왔습니다. 재판을 통해 만들어진 원고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우리 모임의 역량을 넘는 싸움에까지 우리를 나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고들과 지원자들의 그런 교류와 운동은 전혀 묘사하지 않았고, 당시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우익들의 조롱이나 시민들의 차가운 태도를 여기저기 끼워 넣어 일본사회에 대한 반감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재판의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고들의 바람과 명예에 또 한번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관부재판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는 않았던 영화 <허스토리> 제작자들에게 통렬한 반성을 요구합니다!
 
2018년 10월 2일
전후 책임을 묻고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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