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우울한 상태인 것 같아."
 
여자가 '요즘 어떠냐'고 묻자, 앞에 앉은 남자가 이렇게 답한다. 둘은 식당에 마주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어쩌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 대화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옆에서 대화를 엿들은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울증'을 호소하던 그 남자가 예닐곱의 앳된 꼬마였기 때문이다.
 
반대편에 앉았던 여성은 아마도 소년의 엄마였을 것이다. 옆자리 앉았던 사내는 이 독특한 경험을 글에 담아 <뉴스위크>에 기고했다. 그 칼럼은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두 사람의 대화에 귀 기울이던 사람은 대학에서 미디어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리고 글이 쓰인 시점은 1982년이었다. 그는 아이의 '어른스러운' 언어가 텔레비전이라는 '뉴미디어'의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린이들이 그저 어른들의 말투만 흉내 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실제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앞의 사내는 2년 뒤 '어른화 된 아이들', '아이화 된 어른들,' '남녀 경계의 상실'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원인을 분석한 책을 펴냈다. 이 <장소 감각의 상실>이라는 책을 쓴 이는 조슈아 메이로위츠로, 이 책은 나오자마자 학계와 방송계의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유튜브

"30여 년 전 특유의 '어른스러움'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던 '텔레비전 세대'. 이제 부모가 된 그들은 '유튜브 세대' 자녀들의 카메라에 놀라는 신세가 된 것일까?"ⓒ pixabay


이 책이 나온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텔레비전은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다. 아이들은 이제 유튜브를 본다.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비디오를 직접 찍어 올리기도 한다. 아이들 카메라에는 무엇이 담길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물리적 세계는 한정된 탓에 기껏해야 제 얼굴, 부모, 친구들의 모습이 담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평범한 피사체로도 충분히 놀라운 영상이 만들어진다.
 
최근 '엄마 몰카'가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엄마에게 장난감 총을 쏜 뒤 놀라는 모습을 찍거나, 자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엄마의 속옷을 찍어서 올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30여 년 전 특유의 '어른스러움'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던 '텔레비전 세대'. 이제 부모가 된 그들은 '유튜브 세대' 자녀들의 카메라에 놀라는 신세가 된 것일까?
 
'유튜브 세대'의 카메라에 놀라는 '텔레비전 세대'
 
문제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엄마 몰카 카메라'라는 제목의 영상은 빈 벽을 오래 비추는 '롱테이크'로 시작해, 서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부터 격하게 움직이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눈을 어지럽힌다. 아이 키가 작은데다가,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 몸을 더 낮추는 탓에 카메라 위치는 어른 무릎 높이로 떨어진다.
 
아이는 장난스럽게 식탁 의자 뒤에 숨어 촬영을 계속한다. 잠시 후 건조대에 빨래를 너는 엄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상체는 보이지 않고, 바지를 입은 다리 모습만이 보인다. 아이의 '셰이키 카메라'는 이곳저곳을 비추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마도 빨래를 널다가 떨어졌을) 옷가지를 잠시 비춘다.
  
 2018년 9월 13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보도한 '몰카 찍어 엄마 사생활도 공개... 도 넘은 '유튜브 세대' 중 한 장면

2018년 9월 13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보도한 '몰카 찍어 엄마 사생활도 공개... 도 넘은 '유튜브 세대' 중 한 장면ⓒ MBC

 
 2018년 9월 13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보도한 '몰카 찍어 엄마 사생활도 공개... 도 넘은 '유튜브 세대' 중 한 장면

2018년 9월 13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보도한 '몰카 찍어 엄마 사생활도 공개... 도 넘은 '유튜브 세대' 중 한 장면ⓒ MBC


아이를 발견한 엄마가 "깜짝 놀랐네"라고 말하자, 아이는 웃으며 도망친다. 잠시 후 작가의 '전하는 말씀'이 흘러나온다.
 
"'좋아요' 한 번 눌러주세요. '싫어요' 하면 너무 싫어."
 
아래에 붙은 댓글들을 살펴보니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잖게 타이르는 글도 있었으나 대개 이런 투였다.
 
"너 뉴스 떴어 인마 ㅋㅋㅋ "
"자식이 쓰레기네"
"그만해 미친X아"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구별해야지 XX"

 
이것들은 비교적 '순한' 편에 속한다. '유충'으로 시작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써놓은 이가 있는가 하면, 어머니에게까지 욕설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스를 보고 몰려온 이들이 (안 그랬다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을) 비디오의 조회 수를 대폭 올려놓고 있었다. 보도 하루만에 15만 뷰를 넘어섰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문제의 비디오보다 격한 감정을 쏟아낸 댓글들이 훨씬 더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가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학교나 주위 어른이 '사람을 찍은 영상을 함부로 인터넷에 올리면 안 돼요'라고 가르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아이가 뻔히 볼 수 있는 게시물 아래 걸쭉한 욕설과 잔혹한 글로 도배한 어른들은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내가 보기에는 '아이들이 찍을 만한' 비디오였다. 어른들 눈에는 아무 감흥도 없을 집안의 풍경과, 들키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촬영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나는 모험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나는 논란이 된 영상보다 아이 자신의 얼굴이 담긴 비디오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휴대폰 카메라처럼 '값싸고 쉬운 기술'의 진화속도가 교육이 따라가기 벅찰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는 점이고, 이렇게 제작된 영상을 간편히, 제한 없이 올려주면서 돈을 버는 회사가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드라마를 보고 어른 말투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저주를 내뿜지 않는다. 이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이런 변화는 시청자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구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텔레비전의 속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설사 아이를 방에 보내고 어른들만 남아 텔레비전을 본다 해도, 배우들의 격정적인 대사는 벽을 넘어 아이들의 귀에 고스란히 꽂힌다.
 
조슈아 메이로위츠는 텔레비전의 무차별적 정보 유포 행위가 사람들을 나이, 성별, 역할로 구분해 온 경계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했다. '장소 감각의 상실'이란 사회적 역할의 붕괴를 의미한다. 과거에 아이들은 그림책을 봤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읽을 수 없거나 읽기 어려운 표현으로 된 책과 신문을 읽었다.
 
남성과 여성은 각기 구분된 공간에서 같은 성별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성역할을 재생산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글을 읽지 못해도 볼 수 있으며, 방송은 시청자들의 나이와 성별을 구분하지 않은 채 온갖 정보를 내뿜는다. 이런 정보를 접한 시청자들의 정체성이 뒤섞이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유튜브는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과거 책과 텔레비전 사이에 일어났던 충돌이 현재 인터넷과 유튜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 서치엔진을 통한 검색은 일단 글을 알아야 할 수 있고, 일정한 요령과 지식을 갖춘 사람일수록 정보를 더 잘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는 지식과 요령은 고사하고, 아예 글을 몰라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연관된' 내용의 비디오를 직접 골라 '추천'해 주며 '자동 플레이'까지 해 준다. 유튜브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재앙은 봐도 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튜브의 월 사용자 수는 15억이 넘는다. 이들은 (2018년 기준으로) 1분마다 300시간 분의 비디오를 올리는데, 매일 43만 시간이 넘는 영상이 새롭게 충전되는 것이다. 단 하루에 업로드되는 비디오만 보려 해도 50년이 걸리는 것이다. 물론 '50년'은 잠도 안 자고, 일이나 공부도 안 하고, 밥도 안 먹으면서(혹은 보면서 먹거나) 시청할 때의 이야기다. 만일 6시간 자고, 8시간 일하면서 시청하면 100년이 지나도 하루 분량을 소화할 수 없다.
  
 유튜브

"유튜브의 월 사용자 수는 15억이 넘는다. 이들은 (2018년 기준으로) 1분마다 300시간 분의 비디오를 올리는데, 매일 43만 시간이 넘는 영상이 새롭게 충전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양'보다 '질'의 문제다. 앞에서 '웹과 유튜브'의 관계를 '책과 방송'에 비유했지만, 유튜브와 방송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유튜브와 달리 방송은 '누구나' 만들어 방영할 수 없으며, 내용에 까다로운 규제와 제약이 따른다. '공익성'이 지상파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비록 방송의 공익성은 대개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머물지만, 유튜브는 아예 '공익' 자체를 내세우지 않는다. 공익은커녕, 공과 사의 경계조차 무너진 공간이다. 재미와 주목, 오직 이 2가지가 지배하는 곳이며, 이것은 쉽게 금전으로 환산된다.
 
극단적 대립의 매체
 
유튜브의 또 다른 문제는 사회를 극단적 대립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온건한 영상을 보는 사람에게까지 극단적 주장이 담긴 음모론이나 실체불명의 주장이 담긴 비디오를 권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 자체가 편향적 정보를 추구하게 만든다는 견해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나, '영상'이 갖는 접근성은 정보 편향의 위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른바 '가짜뉴스'의 영향력이 나이, 성별, 교육수준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며,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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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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