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타 출신은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 속설이 있다. 현역 시절 강한 자존심과 개성을 앞세워 성공했던 스타들이, 선수 때와는 또 다른 덕목을 요구하는 지도자의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종종 시행착오를 겪는 현상을 의미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스타 출신임에도 지도자로서 명장으로 인정받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대상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 속설은 아직까지 유효해 보인다. 최근 한국스포츠를 대표하는 최고의 전설로 꼽히던 스타들이 국가대표 감독으로서는 잇달아 쓴 맛을 경험하는 비운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농구대표팀의 허재 감독, 축구대표팀의 신태용 감독, 야구대표팀의 선동열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성적을 떠나서 스포츠 전설로서 평생 쌓아온 명성과 신뢰에 흠집을 남기고 있다는 게 더 뼈아프다.

허재-신태용-선동열, 제각각 다른 이유로 비판받았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지난 8월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농구대통령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허재 감독은 최근 농구대표팀 사령탑직에서 사임했다. 2016년 전임감독으로 선임된 지 약 2년 3개월 만이다.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내고 귀국한 지 약 이틀만이다. 귀화선수 라건아를 앞세워 대회 2연패를 노렸던 한국농구는 오세근-김종규-이종현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절감하며 준결승에서 강호 이란에 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허재 감독의 진정한 사임 배경은 두 아들의 대표팀 발탁을 둘러싼 '특혜 논란'이 결정타였다. 허재 감독의 친아들인 허웅과 허훈은 허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의 붙박이 멤버로 중용되었다. 아시안 게임 전부터 '두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 비하여 특출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도 유독 과도한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이미 악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이후 나온 보도에 따르면, 허 감독은 여론과 기술위원회의 반론을 무시하고 두 선수의 대회 발탁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안게임에서 두 선수는 모두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허훈은 8강 토너먼트 이후로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란전의 졸전까지 겹치며 파장은 갈수록 커지자 선수선발에 관여한 국가대표 경기력향상위원들이 책임을 지고 대회 직후 전원 사임을 결의했다. 이후 허재 감독도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허재 감독은 아들 발탁 논란에 실력을 보고 뽑았다고 주장해왔지만 농구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KBL에서 그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였거나, 신장-수비 면에서 더 장점을 보인 선수들이 있음에도 허웅-허훈에 비하여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을 두고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특히 아시안게임에 병역 혜택까지 걸려 있어서 선수선발 문제가 더 민감하기 때문에 더욱 거세졌다. 결국 허 감독은 '세대교체나 장신화 같은 대표팀의 현안마저 외면하고 특정 선수를 더 편애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허재 감독으로서는 2015년 전주 KCC에서 성적부진으로 사임한 데 이어 이번엔 대표팀에서 '혈연농구' 논란을 풀지 못한 채 중도하차하며 지도자로서의 커리어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축구대표팀은 전통적으로 '국내 지도자들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이끌었던 차범근 감독은 멕시코-네덜란드전에서 연패한 이후 사상 최초로 대회 중도에 경질되어 조기귀국하는 불명예를 당했다. 차 감독은 이후 국내 축구계의 비리 의혹을 폭로했다가 축구협회로부터 5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당하는 등 한동안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한일 월드컵의 영웅 홍명보 감독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의리축구' 논란 등으로 숱한 구설수만 남긴 채 불명예 낙마했다. 2017년 축구협회 전무로 복귀하며 행정가로 변신했지만 팬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질문에 답하는 신태용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 기자단 숙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신태용호는 비공개로 진행된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0-2로 패하며 오스트리아 레오강 훈련 캠프를 마감했다. 신태용호는 12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뮌헨을 거쳐 베이스캠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한다.

축구대표팀 신태용 전 감독ⓒ 연합뉴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신태용 감독도 K리그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출신이다. 신 감독은 대표팀을 맡아 한국축구의 9회 연속 본선 진출, 러시아 월드컵에서 아시아팀으로 본선 사상 최초로 독일을 꺾는 '카잔의 기적' 등 나름의 업적을 남겼으나, 스웨덴-멕시코전 패배와 '트릭' 논란 등으로 재임 기간 내내 엇갈린 평가를 받으며 결국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축구협회가 차기 감독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신 감독도 여전히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지만,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최종적으로 지휘봉을 잡게 되며 신 감독은 퇴임 기자회견조차 갖지 못하고 쓸쓸하게 잊혀졌다. 공과는 있어도, 그동안 각급 대표팀을 넘나들며 어려울 때마다 한국축구의 구원투수로 헌신했던 공로에 비하면 결말이 지나치게 야박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국보급 투수로 명성을 떨쳤던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은 최근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야구의 대회 3연패를 이끄는 업적을 세웠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했다. 야구대표팀은 대회 전부터 오지환-박해민 등 병역미필자들을 둘러싼 선수선발 논란으로 여론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는 실업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대만에 일격을 당하는 등 경기력 면에서도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선동열 감독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동열 감독이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나는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동열 감독ⓒ 연합뉴스


대표팀은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은 지켜냈지만 논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사실상 아시안게임이 병역면탈의 창구로 전락했다'라고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야구대표팀을 향하여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조롱이 나오는가 하면, 우승 이후에도 오지환-박해민을 둘러싸고 '불공정한 병역혜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야구대표팀은 비난을 받았다. 대표팀 전임감독으로서 오지환과 박해민의 선발을 밀어붙인 선동열 감독을 향한 책임론도 거세다. 아시안게임의 후유증으로 병역혜택 제도의 축소나 경찰야구단 폐지 논의 같은 후폭풍이 쏟아지고 있어서 선동열 감독은 우승하고도 가시방석에 놓인 형국이다.

'성적만 좋으면 그만'? 더 이상 결과로 논란 해결되지 않는다

한때 한국스포츠의 자부심이었던 '영웅'들이 지도자로서는 나란히 수모를 당하는 모습은, 이들을 사랑해왔던 스포츠팬들에게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선수 시절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나 리더십을 갖췄던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또 다르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최신 트렌드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달라진 시대환경에 맞는 가치관과 소통능력도 갖춰야 한다. 하물며 국가대표팀 감독은 만인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자리다. 자신이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의 지식과 신념에만 기대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이들이 비판받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성적보다 선수 선발의 '공정성'이라든가, 언행 및 태도에 관련된 문제 제기가 많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팬들이 과거처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절차와 과정의 의미를 중시하는 세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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