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업그레이드> 포스터.

영화 <업그레이드> 포스터.ⓒ UPI코리아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2003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2-리로디드>의 메인 광고 문구이다. 이 영화는 1999년 세기말에 개봉해 가히 액션 패러다임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지금까지도 그 이상을 선보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트릭스>의 후속편이자 위대한 매트릭스 트롤리지의 한 편으로 그 가치는 충분함 이상을 보여줬다. 

21세기 들어 <매트릭스>의 액션 계보를 이어받으려는 또는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매트릭스는 잊어라!'라는 광고 문구로 당당하게 SF 액션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퀼리브리엄>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잔인함의 미학을 새로 새운 <킬 빌> 시리즈, 부드러운 강함의 영원한 판타지를 실현시킨 <와호장룡>도 있었다. 면대면 맨몸 액션의 새로운 장을 연 <본> 시리즈, 아크로바틱 100% 리얼 액션을 표방한 <옹박> 시리즈 등. 이밖에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부지기수이다. 

최근 이 계보를 이을 만한 액션영화로는 <존 윅> 시리즈 정도가 생각난다. <이퀼리브리엄>과 <킬 빌>과 <본>을 투박하게 합쳐놓은 듯한 영화로,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영화 중 <업그레이드>도 계보에 포함시킬 수 있을 듯하다. 

<업그레이드>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겟 아웃> 등으로 유명한 공포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의 첫 액션 영화라고 한다. <위플래쉬>로 새로운 도전을 했던 제작사이기도 하니, 이번에는 어떤 액션을 선보일지 한껏 기대된다. 

전신마비 환자에게 다가온 최첨단 기술의 유혹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 <업그레이드> 초반부에서 주인공 그레이는 아내와 함께 차 주인에게 차를 돌려주러 간다. 차 주인은 다름 아닌 유명한 베슬컴퓨터사의 주인 베론 킨이다. 그는 차를 가져다 준 주인공에게 스템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칩을 보여준다. 스템은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새롭고 더 나은 두뇌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후 그레이와 아내는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자동주행 차량이 오류를 일으켜 집과 정반대인 뉴크라운이라는 빈민도시로 향한다. 그곳에서 주인공과 아내는 사고를 당하고, 이들에게 네 명의 괴한이 들이닥친다. 결국 그레이는 전신마비가 되고 아내는 죽게 된다. 사고 후 그레이는 전신마비가 됐지만 최첨단 로봇기술 덕분에 누워만 있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레이 앞에 베론 킨이 다시 나타나 뭐든지 할 수 있는 스템을 들이댄다. 스템은 그레이를 다시 걷게 해줄 수도 있다. 그레이는 아내를 생각하며 극비수술을 받아들이고 몸에 스템을 이식한다. 스템은 그레이를 걷게 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첨단 기술과 시스템을 이용해 그의 몸과 머릿속에 들어와 최선의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해준다. 그레이는 자의 혹은 스템에 의해 아내의 복수를 시작하는데... 

신선한 로봇 액션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는 그레이의 '은근 코믹 말빨'과 스템에 의한 로봇(컴퓨터) 액션으로 외양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최첨단 로봇이 인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디스토피아적 메시지가 내용을 진중하게 채운다. 관객은 새로운 양식의 액션을 관람하면서, 오래된 SF적 두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00% 액션 장르라 할 만한 이 영화에, 그것도 은근한 잔인함을 내세우는 와중에 '코믹'이 들어갈 소지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레이와 인공지능 스템의 케미가 주는 재미가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온다. 은근한 유머, 지배하려는 스템과 지배당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레이의 밀당이 주는 재미도 은근하다. 

그래도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쾌감은 뭐니뭐니 해도 스템 덕분에 강해진 그레이의 로봇 액션이다. 완벽한 각본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움직여야 하기에 저절로 많은 연습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의 환상적인 워킹에 배우들이 혼연일체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레이는 상대방과 약속된 동작을 완벽히 하는 와중에, 카메라는 카메라대로 정밀하게 움직인다. 

액션 연기에 애드리브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영화에서 액션이라는 것이 각본에 완벽히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점에서 정말 힘든 것이다. 이 영화가 비록 리얼 액션과는 거리가 조금 멀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신기하고 반갑고 신선한 면도 있다. 최근 액션 영화의 대세가 리얼 액션인데, <업그레이드>는 이에 당당하게 반기를 들었다고 할까. <업그레이드> 액션의 신선함은 '로봇 액션'에서, 로봇 액션의 신선함은 '리얼 액션'의 반감에서 오는 것이다. 

아날로그적 인간에 침투한 최첨단 시스템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신선한 액션만 가지고는 앞에 'SF'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민망하다. 물론 SF가 이제는 마니아가 아닌 대중지향적인 장르가 돼 보다 볼 거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인간세계에 대한 진중한 철학이다. SF의 배경은 주로 미래, 거기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상천외한 것들이 부지기수인데, 그 중에는 꼭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그것들이 노리는 인간은 최첨단을 달리던지 가장 아날로그적인 경우가 많다.

괴한의 습격으로 아내는 죽고 전신마비가 된 그레이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준 첨단두뇌 스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이기도 하다. 그레이가 비록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마 스템은 그렇기에 그레이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괜히 SF영화에서 외계생명체들이 인간의 뇌에 침투해 육체를 조종하겠는가. 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 명제를 조금 비튼다. 정신은 나의 것이지만, 정신의 반과 온전한 육체는 다른 존재의 것이라면? 그리고 그 존재가 육체가 가진 능력을 온전히 끌어올리게 해준다면? 

그런 공존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하면 더욱 무서워진다. 나는 육체를 가질 수 없지만, 인공지능은 육체'까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정신까지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육체는 껍데기이기 때문에 가지는 비사고성으로 정신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육체는 주체가 될 순 없겠지만 주체에 의한 절대성이 고스란히 침유된다면 못할 게 없다. 인간은 뇌의 능력의 일부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육체도 마찬가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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