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동물영화제? 그런 영화제가 있었다니. 구름이와 호두를 키운 지 6개월 남짓. 우린 함께 순천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순천까지 KTX로 2시간 반 정도. 구름이와 호두를 키우면서 외출 전후로 1시간 이상 산책하는 것 외에 15분이라도 짧게 동네 한 바퀴를 자주 돌아서인지 언제부턴가 실내에서는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할 때도 큰 걱정이 없다.

그리고 개들은 보통 자기가 쉬는 공간은 더럽히고 싶지 않아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웬만해선 대소변을 참는다고 한다. 개를 데리고 미국까지 비행기를 탄 이웃이 있는데 15시간이 넘는 동안에도 참았다고 한다(물론 건강을 위해서 성견인 경우 6시간에 한번은 소변을 보게 해주는 게 좋다고 함).

2살 반으로 추정되는 호두군 순천역 앞에서 참았던 쉬를 하느라 바쁜 구름이와 다르게 짐 옆에 붙어 있는 호두. 나도 순천이 처음이라 낯설다. 너도 그런 거니?

▲ 2살 반으로 추정되는 호두군순천역 앞에서 참았던 쉬를 하느라 바쁜 구름이와 다르게 짐 옆에 붙어 있는 호두. 나도 순천이 처음이라 낯설다. 너도 그런 거니?ⓒ 수피아


지난 8월 17일 저녁 8시, 개막식과 함께 영화가 상영됐다. 개막작은 콜린 맥아이버 감독의 '동물원'이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 동물원을 배경으로 사육사의 아들 '톰'(아트 파킨슨)과 그의 친구들이 사살될 위기에 놓인 아기 코끼리를 구해내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시간에 맞게 도착하였으나 서울에서 끝내지 못한 원고를 붙잡느라 숙소에 남아있어야 했다. 하필 글 내용은 '공장식축산'에 관한 것이었다. 동물영화제가 열리는 순천까지 와서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개 두 마리를 옆에 두고, 돼지·소·닭을 생각하고 있으니 남들이 윤도현밴드와 함께 개막식을 즐기고 개막작을 보는 동안 혼자 동물영화제를 나름 즐기고 있었다.

처음으로 와 본 순천에서 원고를 마무리하고, 여행자의 외로움을 느낄 찰나에 전화가 울렸다. 영화제를 소개해준 지인이었다. "같은 숙소에 개 데리고 온 사람들 또 있으니 뒤풀이에 같이 와." 영화제에 온 또 다른 반려견 '사람'이. 이름이 사람이었다. 나도 짧은 기간이지만 구름이 호두 키우면서 다른 개들도 많이 만났는데 이런 이름은 난생 처음이었다. 크기는 좀 있어도 아직 10개월 정도 된 구름이와 동갑내기 강아지였다.
첫눈에 케미 터진 구름군과 사람양 덩치는 꽤 있어도 아직 한창 놀기 좋아하는(?) 10개월 동갑내기들이다

▲ 첫눈에 케미 터진 구름군과 사람양덩치는 꽤 있어도 아직 한창 놀기 좋아하는(?) 10개월 동갑내기들이다ⓒ 수피아


우리는 자연스레 동물 얘기로 흘러갔다. 자리에는 길고양이 다큐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조은성 감독도 있었는데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한국 길고양이들과 달리 일본, 대만 고양이들은 사람을 잘 따른다고 했다.

내 기억 속 다른 나라 길고양이들도 그랬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놓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얻어먹고 나오기도 한다. 반대로 무슬림이 많은 그곳에서 개는 천대를 받는다. 국제관광도시라고 할 수 있는 터키 수도 이스탄불, 골목길 한복판에서 고양이 무리들이 쪼르르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가게 주인집이 키우는 고양이마냥 당당한 자태로 가게 앞을 지키는 냥이들이 귀엽기도 하고, 그 풍경이 낯설어서 사진을 꽤 남겼다. 터키 사람들도 대부분 무슬림인데도 불구하고 개들이 길거리에서, 대학교 계단에서, 세 마리가 같이 모여서 잠을 자도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차들이 알아서 피해주는 건가? 도로 옆 인도에서 아주 편안히 낮잠을 자고 있던 이스탄불 개. 처음에 이런 개를 길에서 봤을때는 죽은 것은 아닐까 다시 가까이 가서 보곤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런 풍경을 자주 보게 되어서 그려러니 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신기한 풍경

▲ 차들이 알아서 피해주는 건가?도로 옆 인도에서 아주 편안히 낮잠을 자고 있던 이스탄불 개. 처음에 이런 개를 길에서 봤을때는 죽은 것은 아닐까 다시 가까이 가서 보곤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런 풍경을 자주 보게 되어서 그려러니 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신기한 풍경ⓒ 수피아


낮잠 자는 이스탄불 길고양이 무심하게 차를 마시는 이스탄불 사람들도 신기했다

▲ 낮잠 자는 이스탄불 길고양이무심하게 차를 마시는 이스탄불 사람들도 신기했다ⓒ 수피아


감독은 고양이에 대한, 알고 싶지 않았던 것도 귀띔해주었는데 다큐에 장면을 넣지는 않았지만 보신탕에 고양이를 넣기도 한다는 사실. 우리는 뜨악하며 술잔을 들이켰다. 호두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개 이름)'이네 품에서 곤히 잠들고, 내 옆에서 쉬고 있던 사람이와 구름이는 다시금 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사람이네와 우리는 차를 타고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잠들기 전에 한 번 더 배변활동을 하기 위해 숙소에서 나왔는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람이네와 마주쳤다. 사람이네는 언제 주변 파악을 다 했는지 숙소에서 조금만 더 가면 산책하기 좋은 강변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람이네도 좀 전에 순천에 도착했다던데 숙소 근처 산책코스를 벌써 다 파악하다니. 견주로서 배워야 할 자세이다. 그렇다면 내일 일정은 동천에서 산책 후 영화제 상영작들 보러가자. 상영작은 모두 무료인데 시간별로 장소가 달라서 골라서 봐야하는데, 뭘 볼까나?
제6회 순천만동물영화제 상영시간표 시간이 다 달라서 어차피 다 볼수는 없지만 영화제 끝나고서라도 챙겨 보고 싶다

▲ 제6회 순천만동물영화제 상영시간표시간이 다 달라서 어차피 다 볼수는 없지만 영화제 끝나고서라도 챙겨 보고 싶다ⓒ 순천만동물영화제 주최측


그 많은 영화들 중에서 신기하리만치 본 영화가 하나도 없었다. 들어본 영화들도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괜찮다. 영화제에서 친절하게 소개 책자를 준비해줬으니. 곤충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는 여기가 아니라도 찾아보기 쉬울 거 같으니까 패스. 바다 속에서 음향으로 소통하는 고래들이 소음으로 인해 받는 고통을 조명한 <소닉 씨(Sonic Sea)>는 관심이 좀 가는걸, 그런데 오전 11시 시작이라 갈 수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화를 다 챙겨보겠다는 야심은 다 어디로 간 건지. 가능성이 높은 오후 1시 반에는 황윤 감독의 <침묵의 숲>을 상영한다. 한국 땅에서 보기 힘든 야생동물을 찾아 중국 연변, 두만강, 백두산 등지로 떠나는 내용의 다큐 영화. 오케이, 이걸 먼저 보고, 오후 6시 반에는 김태리 배우도 나오고, 감독과의 대화시간도 있는 <리틀 포레스트>를 보자.

동물권 운동단체 '카라'의 대표이기도 한 임순례 감독이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바지락에서 생명의 힘을 발견하곤 채식을 하게 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육고기도 아닌, 눈코입이 있는지 없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조개류에서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감성이라 꽤 오래전에 본 내용인데도 기억이 난다. 채식을 하게 된 사람들은 다 이런 인상 깊은 계기가 하나씩은 있는 걸까. 영화제가 끝날 쯤 내 마음에도 변화가 생길까? 우선 자자.

다음날, 오전이라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 동천으로 향했다. 햇살이 서울처럼 뜨거웠지만 구름이와 호두는 낯선 곳에서의 산책이 설렌지 발걸음이 아주 힘차다. 강물이 널따랗게 흐르는 반면에 동천을 찾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우리가 있는 쪽 반대편에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자전거에서 막 내려 징검다리를 건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인사나 해볼까. 우리도 징검다리를 걸었다.

서로 양보하며 지나다가 소년에게 혼자 온 거냐고 물었다. "원래 친구 한 명이랑 같이 오려고 했는데 다른 친구들하고 산에 갔다고 해서 혼자 왔어요." 소년은 이곳에 자주 온다고 했다. 친구들과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구름이와 호두에게 관심도 보였으나 우리 애들이 동천의 매력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소년을 무시하듯 지나갔고, 소년도 그려려니 하고 강물을 응시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강물을 멀찌감치 보는 구름이와 가까이에서 보는 호두 구름이는 물에 들어가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고, 호두는 올 여름부터 물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 강물을 멀찌감치 보는 구름이와 가까이에서 보는 호두구름이는 물에 들어가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고, 호두는 올 여름부터 물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수피아


징검다리 건너기 참 쉽죠잉~ 6개월 전만 해도 작은 시냇가 징검다리도 건널듯 말듯 망설이던 구름이와 나의 도움을 받아서 건넜던 호두. 이제는 성큼성큼, 껑충껑충 나보다 더 빨리 간다.

▲ 징검다리 건너기 참 쉽죠잉~6개월 전만 해도 작은 시냇가 징검다리도 건널듯 말듯 망설이던 구름이와 나의 도움을 받아서 건넜던 호두. 이제는 성큼성큼, 껑충껑충 나보다 더 빨리 간다.ⓒ 수피아


 점처럼 보일 정도로 강변을 벗어날때까지 소년은 그 자리에 있었다

점처럼 보일 정도로 강변을 벗어날때까지 소년은 그 자리에 있었다ⓒ 수피아


산책을 끝내고 계획대로 영화를 보려고 나오려는데 웬일인지 구름이와 호두가 따라 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보통 산책을 1시간 이상 하고 들여보내고 외출할 때는 녀석들도 쉬려고 하는데 말이다. 녀석들도 낯선 곳이라 좀 불안한 건가. 그렇다고 영화관에 데려갈 수도 없고, 영화제에 왔는데 영화는 봐야겠고. 마음이 짠하면서도 동천 산책한 것을 위안 삼고 나와 버렸다.

에잇! 하며 1층 로비 밖으로 나오는데 "향림 작가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개 이름)'이네였다. 영화관에는 사람이와 같이 못 들어가니 애견 운동장을 갈 거라고. 날 바라보는 사람이와 나가는 내 뒤에서 낑낑 거리는 우리 호두와 구름이가 교차되면서 영화냐 녀석들이냐 고민하던 순간 "운동장 같이 가요!"라고 해주신다.

그 한마디에 나는 '그래 여기까지 와서'하는 마음으로 냉큼 3층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며칠 만에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개처럼 미친 듯이 뛰어나와 사람이와 재회하는 녀석들을 보니 잘됐다 싶은 마음이 200프로 들었다. 가끔은 타인이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읽어줄 때가 있다.

사람이 덕분에 구름이와 호두의 1일 스케줄이 확 달라졌다. 아니, 개의 수명이 20세, 사람이 100세라고 치면 개의 하루는 인간의 4일과 맞먹는게 아닐까. 사람이 덕분의 구름이와 호두의 4일 스케줄이 확 달라졌다. 서울에서부터 차 운전을 해서 내려온 사람이네. 차를 같이 타고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아, 이제 본격적으로 서로 소개를 하는 시간이군. 저는 최근 00분을 알게 됐는데 그 분이 여기를 소개…. "아뇨. 개들하고 같이 서울에서 순천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물었어요" …(대략난감) 아…. 저희는 ktx를 타고…. 우리는 그렇게 개들 소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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