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닮은 사랑 이야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막을 내린 지 3일째(29일 기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3일 내내 비가 오고 있다. 인우와 태희가 생각하는 비오는 날, 다음 시즌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
 
 
 인우와 태희가 왈츠를 추고 있다.

인우와 태희가 왈츠를 추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자가 우산 속으로 뛰어든다. 그녀는 우산을 든 남자에게 "저기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만 데려다 달라"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우산 주인 인우와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는 영화처럼 첫 눈에 반해 사랑을 시작한다.
 
작품의 시간대는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현재는 2000년 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는 인우의 학교가 배경인데, 인우는 '다정하고 따뜻한'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그리고 이미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있다. 새로운 학급을 맡은 첫 날, 학생들은 인우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태희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인우는 그녀를 처음 만난 1983년 여름을 떠올린다. 인우는 당돌하게 우산에 뛰어든 태희에게 마음을 뺏겼지만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딸꾹질만 하다가 놓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기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진짜 운명인걸까? 학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고 인우는 열렬히 태희를 쫓아다닌다. 본인은 출석을 안해 낙제를 당할지언정 태희의 미술 전공 수업은 몰래 쫓아다니며 청강까지 했다. 인우와 태희는 서로를 정말로 사랑하게 됐다. 무섭게 싸울 때도 있지만 항상 서로를 찾는다. 그러다 인우가 군대를 가게 되자 잠시 떨어져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그런데 인우의 앞에 태희와 똑 닮은 제자 현빈이 나타난다. 물건을 잡을 때 새끼손가락을 드는 것도,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도, 궁금해 하는 질문들도 모두 태희와 같다. 현빈이는 태희가 그랬듯이 인우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원작은 2001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다. 주연으로 이병헌, 고(故) 이은주 배우가 출연했는데 11번이나 재개봉을 할 정도로 영화 역시 팬들이 많다. 뮤지컬은 2012년 초연, 2013년 재연 그리고 5년 만에 삼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은 5년 만에 공연되는 것이기도 하고 영화가 개봉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작품 속에 나오는 '현재'도 2018년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가 돼버렸다. 그래서 작품의 대사나 노래 가사들을 지금 시대에 맞게 조금씩 수정했다.
 
작품은 인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실 남성 제자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느낀다는 소재만 보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인우의 감정을 잘 따라가면 모든 상황들이 납득이 가고 오히려 보는 사람이 더 애가 탈 것이다. 공연은 태희를 좋아하며 애타는 것도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음도 다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 번에 몰아치는 게 아니라 작품의 속에서 비가 내는 것처럼 나도 조금씩 인우의 마음에 젖어들었다.
 
작품의 조명이 정말 좋았다. 무대가 깊은 편인데 바닥에 조명을 쏴서 신호등을 만들고 비 내리는 연출을 하는 등 신비롭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노래가 좋은 걸로 예전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나도 작품은 이번에 처음 봤지만 노래는 이미 가사를 다 외울 만큼 많이 들었었다. 설렘 가득한 노래부터 슬프다 못해 눈물이 날 것 같은 노래, 강하게 감정을 토해내는 노래 등 감성과 극적인 분위기를 모두 잡은 노래들이 많다.
 
'그대인가요'는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를 놓쳐버린 인우가 우연히 만나기를 기다리는 노래다. "내게 특별한 한 사람이 그대인가요"라며 설레는 마음과 애타는 심정을 표현한다. '그런가봐'는 고등학생들의 풋풋하지만 짓궂기도 한 사랑을 표현한 노래다. 통통 뒤는 멜로디에 사랑이 시작되는 가사가 매력적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다음 생에 다른 성별, 다른 얼굴로 만난다면?
 
 
 인우와 태희가 산에 올라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우와 태희가 산에 올라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오랜 시간이 흘러 다른 얼굴, 다른 성별로 나타난다면 인우처럼 다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작품을 보면서 인우의 마음은 이해가 됐다. '진짜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런데 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면 저런 감정들이 생기는 건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내가 계속 떠올리는 이유는 작품이 뻔하기 때문이다. '뻔하다'는 말이 나쁜 뜻이 아니고, 우리는 한 번쯤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에 첫 눈에 반하는 상상을 한다는 얘기다. 또 '다음 생에도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꿈꾸는 건 실제에서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꿈 같은 내용들이 이 작품 속에 담겨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물론 작품은 이런 내용을 뻔하지 않도록 좋은 노래, 설득력 있는 연기, 예쁜 무대 등으로 잘 꾸몄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캐릭터들의 성격과 감정을 연결하는 서사였다. 인우가 굳이 마음 이야기를 격하게 하지 않아도 이미 관객들이 먼저 알아채고 잘 따라갔다. 또한 흔들리는 인우와 현빈이의 곁에 있는 주변 인물들의 변화를 보니까 한 사람도 안 아픈 사람이 없구나 싶어서 더 애뜻했다.
 
아쉬운 점은 없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고 언제나 널 찾아다니겠다'라는 말을 이렇게 잘 풀어냈는데 어디 아쉬움이 있겠는가. 잔잔한 분위기 속에 강렬한 사랑을 하는 인우와 태희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 삼연에 이은 사연 무대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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