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체육대회에 친구와 격하게 놀다가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만화를 흉내 내며 격하게 휘두른 친구의 발을 피하지 못해서 턱에 맞았다. 입에서는 피가 나왔고 이상한 느낌에 혀로 입 안을 확인하니 이가 하나도 없었다. 턱이 골절되어 잇몸 속으로 다 숨어버린 것이었다.

근처에 있던 선생님들은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치과로 달려갔다. 두려움으로 도착한 치과에서는 수술을 할 수 없다며 다른 병원을 알아봐준다고 했다. 그렇게 간단한 응급조치로 턱만 고정하고서 꽤 긴 시간을 대기했다. 그러다 다른 병원이 연결되고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을 바로 받지 못해서 걱정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런 비슷한 경험이 다들 있을 것 같다. 밤에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갔으나 많은 대기 인원으로 치료를 늦게 받아야 했던 경험 같은 것. 비록 나는 경상이었기에 기다리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중상이나 그 이상의 환자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는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일 게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빠르게 받지 못하고 생명이 위급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 2017년 10월 29일 방송된 SBS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 '생존의 조건-권역외상센터' 편이다.

7시간이나 늦게 권역외상센터에 도착한 환자

 중증 외상환자를 전문으로 한다는 권역외상센터. 이 곳은 많은 수술실을 확보하고 있고 24시간 동안 환자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절한 조치를 받아야 할 시간에 제대로 도착하는 환자들은 별로 없다.

중증 외상환자를 전문으로 한다는 권역외상센터. 이 곳은 많은 수술실을 확보하고 있고 24시간 동안 환자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절한 조치를 받아야 할 시간에 제대로 도착하는 환자들은 별로 없다. ⓒ SBS


집에 함께 살던 순한 개가 돌변해 아이를 공격했다. 아이는 큰 상처를 입었고 바로 119 구조대와 함께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교상(사람이나 동물에 물려 생긴 상처)의 경우에는 염증의 우려 때문에 바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경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아이는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곧 심정지까지 발생했다. 심폐소생술을 계속 시행했지만 방도는 없었고 병원에서는 살릴 수 없다며 이송할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사고 후 8시간 만에 외상을 전문으로 한다는 외상센터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더 이상 할 수 있는 조치들이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이었고 이송 전에 시행됐던 기관절개술도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는 것이 외상센터 의사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짧은 생을 마치고 떠났다.

중증 외상환자를 전문으로 한다는 권역외상센터. 이 곳은 많은 수술실을 확보하고 있고 24시간 동안 환자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절한 조치를 받아야 할 시간에 제대로 도착하는 환자들은 별로 없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 환자가 들어온다. 그가 외상센터에 도착한 것은 교통사고 7시간 뒤인 새벽 2시였다. 여러 분야의 의사들의 협진으로 빠르게 조치를 취하지만 많이 늦은 상태라고 한다. 다리의 상태는 심각했고 내장출혈도 계속되고 있었다. 비록 의사들의 노력으로 목숨은 살릴 수 있었으나 양쪽 신장은 모두 떼어내야 했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 늦게 오게 된 것일까.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그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1차 병원에서는 다른 곳은 이상이 없으며 다리뼈만 부러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들이 보기에는 상태가 안 좋아 보였고 응급수술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인원이 없다며 거절당했다. 응급차를 이용하여 2차 병원으로 이송하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사설 차를 불러서 2차 병원으로 이송했고 양쪽 신장이 다 파열됐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수술을 받을 수는 없었다. 비어있는 중환자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수술이 가능한 외상센터로 이송되었다. 그가 7시간이나 늦게 외상센터에 오게 된 이유였다.

열악한 권역외상센터의 현실, 의료진도 부족하다

 이렇게 필요한 외상센터. 하지만 이 곳에서 치료받는 중증 외상환자의 정도는 20~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70~80%의 환자는 보통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필요한 외상센터. 하지만 이 곳에서 치료받는 중증 외상환자의 정도는 20~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70~80%의 환자는 보통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 SBS


우리나라 중증 외상환자 수는 한 해에 10만 명 넘게 발생한다(2017년 11월 21일 <세계일보> '귀순 북한 병사' 집도의 이국종 교수가 민원에 시달리는 이유).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50세 이하의 사망원인 1위는 '외상 등의 사고'였다. 이 중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던 환자가 35% 정도다. 이는 미국이나 독일 등에 비해 약 5배 정도 높은 수치다. 그만큼 많은 외상 환자들이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 외상환자라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는 곳이다. 일상생활에 늘 존재하는 중증 외상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다. 권역외상센터는 의료진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환자의 자기 부담비도 5%로 낮췄다. 정부는 2019년 예산안에서 권역외상센터를 현재 13개에서 15개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2018년 8월 28일 <연합뉴스> [2019예산 요약] ① 보건·복지·고용·일자리·교육).

외상센터는 여러 분야의 의사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가 들어왔을 때 협진과 빠른 조치로 제대로 된 치료를 진행할 수 있다. 게다가 큰 사고의 경우에는 직접 의사가 사고 현장으로 나가 응급치료를 진행하며 이송을 하기 때문에 생존 확률이 더욱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중증 외상환자는 연간 전체 중증 외상환자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70%의 환자는 일반 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권역외상센터가 전국의 모든 중증 외상환자를 다 수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고 발생 시 바로 이송되는 경우보다는 1차, 2차 병원 등을 거치고 오면 그만큼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닥터헬기의 경우 구급차에 비해서 흔들림이 없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안정감 있게 응급치료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규정 상 주간에만 운영이 가능하고 착륙할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되어 있어 사용이 쉽지 않다. 많은 중증 외상환자들이 야간에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외상센터를 통해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많은 환자들의 모습이 나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긴 시간을 대기하고 있는 외상센터 의사들의 모습도 나왔다. 가족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이지만 중증 외상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이기에 그들은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권역외상센터의 현실은 열악하다. 무엇보다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것. 권역외상센터의 예산은 올해 53% 증가했지만 전문의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2018년 8월 21일 <머니투데이> [단독]예산 53% 늘렸는데…권역외상센터, 5년째 10~20% 불용). 불의의 사고를 당한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인 권역외상센터이기에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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