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결혼식> 메인포스터 영화 <너의 결혼식> 메인포스터

▲ 영화 <너의 결혼식> 메인포스터영화 <너의 결혼식> 메인포스터ⓒ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캐릭터와 배우의 존재감이 중요하지 않은 영화가 어디 있을까. 모든 장르를 통틀어 인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기본 중에 기본이며, 이는 원초적으로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다 놓는 유인책이 된다. 오죽하면 배우에게 '티켓 파워'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배우들의 흥행력을 가늠하는 수단으로 삼고,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아이덴티티>와 같은 시리즈에서는 메인 캐릭터를 담당하는 배우와의 계약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 실제로 <본 레거시>에서 맷 데이먼이 빠진다는 소식에 실망한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 하지만, 그 어떤 장르도 멜로/로맨스 장르만큼 캐스팅이 중요하지는 않다. 멜로/로맨스 장르야 말로 캐스팅이 시작의 반이며,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지점에서, 2000년대 초반 이후 국내 멜로/로맨스 장르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가 뭘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들이 중년의 시기로 넘어가고, 유망했던 젊은 여배우들이 안타까운 선택과 사고들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믿고 맡길만한' 배우들의 수가 적어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후에도 새로운 배우들이 끊임없이 충무로의 문을 두드렸지만 한번 냉각된 멜로/로맨스 장르에 대한 투자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고, 이 틈을 타 남성 중심의 느와르/범죄 장르가 흥행, 여배우들의 기회 박탈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라는 지적이다. 산업이 철저히 자본의 논리도 돌아가고 있는 이상, 이는 앞으로도 제도적 뒷받침이나 업계의 자성적 태도가 없이는 개선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다지며 꿋꿋한 걸음을 보여주고 있는 젊은 배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속 스캔들>(2008)과 <늑대소년>(2012)으로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확보한 뒤 작년에는 <힘쏀여자 도봉순>을 통해 안방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배우 박보영이 대표적이다.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 <돌연변이>,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등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연기 경험을 쌓은 것도 그녀에게는 큰 자산이었으니, 국내의 젊은 배우들 가운데 그녀만큼 흥행성과 다양성을 갖춘 배우는 쉽게 찾기 힘들다.

영화 <너의 결혼식>은 이런 지점에서 작품 외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건축학개론> 이후 6년만에 만나볼 수 있게 된 한국판 첫사랑 이야기이자,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을 함께 만나볼 수 있는 로맨스 작품이라는 것이 하나. 이 부분은 현재 특정 장르에 과하게 몰입되어있는 산업의 획일화된 방향성에 하나의 숨통이 되어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적절한 요소들이 잘 갖춰만 진다면 여전히 국내 멜로/로맨스 장르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박보영이라는 안정적인 캐릭터의 획득과 함께.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03.

영화는 고3 여름, 우연(김영광 역)이 다니던 강릉의 어느 고등학교에 승희(박보영 역)가 전학을 오게 되고, 두 사람이 첫사랑을 시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순간 다시 우연의 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승희와 그런 승희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치는 우연. 두 사람의 사랑과 우정이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며 사랑스러움과 안타까운 마음의 양면을 건드려 온다.

이 영화의 핵심은 인연을 두고 우연이라는 요소를 극대화하여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 김영광이 맡은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우연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문에 사랑에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타이밍이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원래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을 사랑을 놓친 것보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개인의 감정이나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외부적 상황에 의해 상실하는 기회들이 훨씬 더 안타까운 법 아닌가. 영화 속 두 사람의 모습이 꼭 그렇다.

만남과 헤어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구조만 뜯어보자면, 지난 2012년 개봉했던 론 쉐르픽 감독의 <원데이>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다. 영화 <원데이>는 1988년 7월 15일 대학교 졸업식 날 처음 만난 두 남녀가 20년 동안 반복되는 7월 15일의 우연적인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던 작품이었다. 작품 속 우연과 승희의 만남과 헤어짐을 계속해서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작품이 생각난다. 이 작품이 영화 <원데이>를 각색하거나 원작으로 삼는 리메이크 작품은 아니기에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결말은 분명히 다르지만.

04.

영화 <너의 결혼식>의 강점 역시 과거의 다른 멜로/로맨스 작품들처럼 두 메인 캐릭터에 있다. 전체적으로 승희의 강함을 우연의 부드러움이 받아내는 식의 전개가 이어지는데, 승희의 강한 듯 여린 캐릭터 설정, 우연의 부드러운 듯 강인한 캐릭터 설정의 농도에 무리가 없다. 두 캐릭터 가운데 더 인상적인 것은 승희라고 볼 수 있는데, 이전의 국내 로맨스 작품들에서 여자 주인공이 수동적이고 피동적이기만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승희 역을 맡은 배우 박보영은 이번 작품에서 훨씬 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동안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그들의 친구 역할, 조연들의 연기도 전체적인 톤과 잘 어울리며 시너지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과 같은 첫사랑 로맨스물의 작품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역할들이다. 특히, 우연의 오랜 친구인 근남(강기영 역)은 마치 <건축학개론>의 납뜩이(조정석 역)와 유사한 역할을 맡아 톡톡한 감초 역할을 해낸다. 오징어 다리를 뜯으며 우연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장면의 모습은 두 손을 마주 비비던 납뜩이의 모습과 오버랩 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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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05.

이처럼 영화 <너의 결혼식>으로 첫 장편 작품을 연출한 이석근 감독의 색깔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모습으로 작품의 톤에 맞춰 잘 설정된 두 배우의 매력을 십분 활용해낸다. 작품 속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멀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들도 꽤 유연한 편이고, 엔딩에서의 선택이 충분히 관객들에게 이해가 될 정도로 개연성이 있다.

2000년대 초, 중반의 문화적 향수를 건드릴 수 있도록 가로본능 핸드폰이라던가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위닝 일레븐 시리즈를 활용하는 장면들도 생각보다 세심한 구석이 있다. 이처럼 세심하게 잘 표현된 장치들은 그 시절을 함께 향유했던 관객들에게 추억을 상기시키는 기회가 되며 작품과 관객 사이의 집적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특정 플롯들을 동일한 대사의 반복으로 이어내는 장면들도 영리하다. 물론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이 작품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줄 정도로 참신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작품은 그런 장르적 정형성을 따르면서도 충분한 매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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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06.

확실히 <너의 결혼식>은 가벼운 작품이다. 나쁜 의미로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특별한 생각이나 깊은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게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누군가에게는 성공적인 기억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슬픈 것은 사실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작품 속 우연의 모습처럼 어린 시절의 사랑에는 패기와 열정이 있다. 첫사랑을 소재로 하는 어느 작품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의 풋풋했던 시절, 그 시절의 사랑을 한 번쯤 추억하게 된다거나 잠시 미뤄두었던 사랑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는 충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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