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방송된 <도전! 골든벨> 안양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 편 최후의 1인 학생의 화이트보드. 왼쪽 상단의 메시지가 블러처리 되어 있다.

5일 방송된 <도전! 골든벨> 안양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 편 최후의 1인 학생의 화이트보드. 왼쪽 상단의 메시지가 블러처리 되어 있다.ⓒ kbs


'동일 범죄 동일 처벌.'

KBS <도전! 골든벨> 제작진이 지난 5일 방송에서 지워버린 문구다. 지난 5일 안양 근명여자정보고 편에서 '최후의 1인' 학생이 화이트보드에 적은 이 문구를 블러 처리한 제작진은 그 배경에 대해 "공영방송은 '첨예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정치적·종교적·문화적 이슈의 경우,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방송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제작진은 또 "청소년 출연자가 이러한 이슈 다툼에 휘말려 입게 될 피해"를 우려했다고도 했다. 녹화 전 학생 출연자들에게 "프로그램 취지를 벗어나는 멘트는 자제하라"고 사전 고지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불거진 후 해당 학생은 과도한 신상털이와 비난으로 소셜 미디어 계정을 폐쇄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논란과 잡음을 접하며 들 수밖에 없는 의문 하나. '동일 범죄 동일 처벌' 주장은 페미니즘 이슈에 앞서 '인권'의 문제가 아닌가. 아니, 애초 페미니즘이 인권의 문제 아니었던가. 그 학생이 함께 적은 '낙태죄 폐지' 주장 역시 같은 맥락 아니겠는가. 애초 공영방송이 그러한 주장을 적은 10대의 목소리를 '음소거'시키고 검열하는 행위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언어는 시대와 공간에 따라 그 의미가 변질되고 퇴색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동일 범죄 동일 처벌' 주장의 의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비단 그 구호가 특정 집회에 등장했다고 해도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반면 '동일 범죄 동일 처벌'이란 주장을 둘러싼 '해석'과 '의도', 그리고 '액션'들만 거침없이 횡행하는 중이다. 경찰의 워마드 운영자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가 좋은 예다.

이와 관련, 지난 8일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해외에 체류하는 워마드 운영진 중 한 명을 지난 5월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8일 SBS 보도에 앞서 이미 석 달 전 워마드 운영진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성 차별적 편파수사' 논란 예견된 이례적이고 신속한 수사 

 8일 방송된 sbs <8뉴스>.

8일 방송된 sbs <8뉴스>.ⓒ sbs


"현재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워마드 운영자의 신원을 알아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복수의 경찰 관계자가 확인했습니다. 운영자에게는 우선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가 적용됐습니다(중략).

경찰은 각각의 사진과 글에 대해 서울과 부산 등 전국 여러 관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워마드 운영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워마드의 서버가 있는 미국 당국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또, 범죄인 인도 청구나 인터폴 적색 수배 요청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8일 SBS < 8뉴스 >가 단독으로 전한 "'워마드' 운영자 체포영장…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 보도다. SBS는 워마드에 올라온 남성 누드모델 사진들과 대학 남자 화장실로 추정되는 몰카 사진, 천주교 성체 훼손 추정 사진, 성당 방화 예고 글, 남자아이 살해 예고 글, 문재인 대통령 나체 합성 사진 등이 문제시됐다고 전했다. 사이트 폐쇄 국민 청원이 제기됐다는 사실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혐오 대상이 다를 뿐 문제의 심각성이 워마드 못잖은 '일베'의 운영자를 제대로 수사한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워마드 운영자 체포영장이 성 차별적 편파 수사로 비치지 않을까 경찰은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면서 보도 말미 "성 차별적 편파 수사" 논란이 일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확히 들어 맞았다. 보도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상에서 논란이 급격히 퍼졌다. 트위터 상에서는 '#내가_워마드다', '#내가_워마드운영자다'란 해시태그를 단 '분노'와 '항의' 글들이 넘쳐났다.

그럴 만했다. '동일 범죄 동일 처벌' 주장이 홍대 누드모델 사진 사건의 용의자를 신속하게 검거하고 포토라인에까지 세운 경찰의 이례적인 '성과'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한 경찰의 빠른 검거와 유례없는 '홍보'가 여성이 용의자였기 때문에, 그것이 '남성혐오' 사이트인 워마드에 게시됐기 때문 아니냐는 의심과 반론이었다.

헌데, 경찰이 이제 그 문제의 사이트를 운영한 이를 잡겠다고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았다고 한다.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가 적용했고, 전국 동시다발적인 수사까지 펼치고 있단다. 심지어 미국에 공조수사까지 요청했고, 인터폴 적색 수배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나 이례적이고 신속한 수사가 아닐 수 없다.

편파수사 논란 기름 부은 경찰

문재인 대통령이 몰카 등 성범죄의 실질적인 근절을 촉구한 것이 무려 한 달 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일 몰카 성범죄에 대해 "여성들의 문제의식은 사회적인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데 있다"며 "우리 사회가 성적 수치심, 모욕감 등 피해에 대해 그 무게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한 바 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에 "성별 간 갈등이나 혐오감이 더 커지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이제는 대학로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장소를 옮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가 지난 4일로 4차째를 맞았다. 주최 측은 7만여 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1차 1만 5000여 명(5월 19일), 2차 4만 5000여 명(6월 9일), 3차 6만여 명을 포함하면 연인원 19만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여성들이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 시위의 주요한 구호 역시 '동일 범죄 동일 처벌'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이번 워마드 운영자 체포영장 발부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 기름을 붓고, 그 시위에 공감하는 여성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자살골이 아닐 수 없다. 계속되는 시위와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신속하고 구체적인 수사와 영장 발부는 "여성이라서", "워마드가 남혐 사이트라서", "왜 일베는 놔두고"란 비판을 자초하는 헛발질이 될 가능성이 크다.

9일 낮 12시 기준 5만5천 명의 동의를 받은 "워마드 편파수사 하지말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딱 그런 논리였다. 청원자는 "일간베스트, 오유(오늘의 유머), 디시(디시인사이드) 등 수많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음란물이 유포되고 운영자는 이를 방조하고, 동참하고 있지만, 이는 한 번도 문제 삼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청원인은 "편파수사하지 말라고 하는 수만 여성의 목소리를 정부는 무엇으로 들은 것인가? 듣긴 들었는가?"라며 "소라넷은 해외 서버라서 못 잡고 일베(일간베스트)도 못 잡으면서 워마드는 잡을 수 있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역시나 '동일 범죄 동일 처벌'이란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물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미 2010년 초반부터 강간 모의 등이 올라왔던 일베는 왜 버젓이 살아 있나. 소라넷 운영자 검거는 왜 이리 오래 걸렸는가. 근래 들어 여성들에게 더 큰 공포의 대상으로 대두되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대책은 무엇인가. 더욱이 그 불법 촬영물들이 버젓이 거래되는 웹하드 등 불법, 합법 사이트와 업로더, 유포자를 잡기 위한 어떤 수사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가.

민갑룡 신임 경찰청장이 지난 24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몰카 불법촬영 등 여성 대상 범죄 근절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불안을 헤아려야 한다"고도 했다. 그 워딩 자체는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민 청장이 마련한 특단의 대책 중 우선은 워마드 운영자 체포영장 발부였던 것 같다. 안타깝다. 이번 체포영장 발부가 그 범죄의 질이나 불법, 위법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성별 간 갈등이나 혐오감"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청와대 게시판에는 워마드 폐쇄와 운영자 체포를 주장하는 청원 글도 속속 올라오는 중이다.

이쯤 되면, 편파수사  논란을 자초한 경찰의 '의도'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워마드 사이트의 범죄 사실이 있다면 그 범죄를 수사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여성 혐오 사이트 운영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번 사안에 '동일 범죄 동일 처벌'란 인권의 문제가 어떻게 적용됐는지 말이다.

마침 이러한 논란과 비판을 의식한 듯, 민갑룡 경찰청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오늘(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사이버성폭력 수사팀 개소식에서 민 청장은 "일베에 대해서도 최근 불법촬영물이 게시된 사건을 신속히 수사해 게시자는 검거했고,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고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수사를 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개소식을 가진 사이버성폭력 수사팀은 앞으로 불법촬영 등 각종 사이버 성폭력과 관련한 해외 서버 수사, 대형 웹하드 업체와 결탁한 촬영물 유포나 판매에 관한 수사를 전담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민 청장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그동안 차별을 받고 불법행위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측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두고,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 등 엄정한 사법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첨예한 갈등이 지속 중인 불법촬영 편파수사 문제와 남혐-여혐 논란의 진원지가 되어 가는 워마드에 대한 수사 논란을 경찰이 잠재울 수 있을까. 이미 3개월 전 수사에 들어갔다는 워마드 운영자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향후 이러한 편파수사 논란을 반복하는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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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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