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흔히 PC(Political Correctness)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간단히 말하면 '말의 표현이나 사용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실 소수자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시대에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분명히 이런 태도에 대해 반기를 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PC에 대한 피로감이라는 주장이다. 분명 올바름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은 유연한 사고를 방해할 수도 있고 피로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더 위험하다. 우리는 트럼프 개인의 언행을 포함해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사회에서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가 자주 벌어졌음을 알고 있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는 그걸 지켜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많은 딜레마를 품고 있는 복잡한 정치적 문제다.

윤리의 문제가 우리 앞에 다다랐을 때

 영화 <더 스퀘어> 포스터.

영화 <더 스퀘어> 포스터. ⓒ 찬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작품 <더 스퀘어>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런 복잡한 맥락을 예술과 일상에서의 사건을 통해 유쾌하면서도 불편하게 풀어낸 블랙 코미디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이다.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 (클리에스 방 분)은 새로운 프로젝트인 '더 스퀘어'를 기획하려고 한다. 해당 기획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성역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나눠 갖는다"는 전시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뢰와 배려를 통해 우리 모두는 이 공간에서 시민으로서의 평등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첫 신을 보자. 어떤 여성이 괴한으로부터 위협을 받아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 이를 외면한다. 크리스티안도 처음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가 다른 사람이 이를 제지하자 그때야 합류해서 관심을 보인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난 뒤에 크리스티안은 핸드폰과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음을 알게 된다. 핸드폰 위치 추적 결과, 크리스티안의 휴대폰은 어느 아파트에 있었다. 그는 부하 직원과 함께 (누가 훔친 건지 모르니) 아파트의 모든 세대에 돌려주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뉘앙스를 담은 협박편지를 돌린다.

그저 자신의 소유품을 되찾을 생각에 했던 무심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죄없는 소년(엘리한드로 에두아르 분)이 도둑으로 몰리고 부모에 의해 외출을 금지당한다. 이후에 소년은 크리스티안을 찾아가 항의하지만 크리스티안은 소년을 그저 한밤에 찾아온 불청객 취급을 하고 쫒아낸다.

영화는 예술을 통해 정치적 올바름과 도덕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이지만 그 '사각형(square)의 공간'에서 벗어나면 일상의 사소한 폭력과 무관심들이 낳는 문제들에 무감각해지고 서툴러진다고 말한다. 이렇게 일상의 문제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더 스퀘어> 스틸 컷.

<더 스퀘어> 스틸 컷. ⓒ 찬란


큐레이터들과 마케팅 업체 직원이 모여 '더 스퀘어'를 어떻게 홍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업체 직원이 홍보 영상을 기획하는데 아기가 전시물 내에서 갑자기 폭발하고 불타버리는 줄거리다. 도덕과 윤리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당위를 전달할 목적이었는데 정작 사회적 약자를 그저 스펙터클의 한 가운데에 밀어넣을 뿐인 비윤리적인 기획 아닌가. 업체 직원들은 '아이스 버킷챌린지'를 예로 들며 이런 자극적이지만 메시지가 분명한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리면 반응이 뜨거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처음 그들이 왔을 때 (First they came)'라는 유명한 시를 떠올리게 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략)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것이 필요한 시점에 침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도덕이나 올바름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맞지만, 과연 당신들은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맞느냐, 결국 미디어에 숟가락 얹어서 유튜브 조회수 얻는 데에나 골몰하지 않는가. 정말 일상에서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윤리의 문제가 당신들 앞에 다다랐을 때 거기에 대해 고민하는데 게으르지 않나, 이런 질문들을 영화는 던진다.

표현의 자유만을 외치는 이들에게도 적용되는 비판

 <더 스퀘어> 스틸컷.

<더 스퀘어> 스틸컷. ⓒ 찬란


하지만 <더 스퀘어>가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의미 없다고 말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위에서 말했듯 윤리의 문제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폐기하자고 말하는 것은 윤리적 파탄이자 21세기에는 반동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이 환대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감독은 훌륭한 대답을 크리스티안을 통해 들려준다.

해당 동영상이 문제가 되어 이사회가 열린 이후 크리스티안은 미술관 차원의 기자회견을 열고 이사회와 논의한 끝에 사퇴할 것임을 알린다. 논란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것과 별개로 기자회견에 나온 사람들의 생각은 극과 극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표현의 자유인데 왜 자기검열을 통해 예술의 입을 막으려고 하냐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 것.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또 '자신의 사적인 생각과 공적인 주장은 일치되어야 하고 논란이 되더라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티안은 말한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언어와 사적인 생각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개인이 무슨 생각을 가지건 간에 머릿속에 있는 이상 규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배하는 사적인 생각이 공론장에서 모두 인정되기란 어렵다. 이것이 영화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가지는 입장인 듯하다. 결코 모든 표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에 손을 들어주진 않는다.

결국 <더 스퀘어>는 '현대사회는 정치적 올바름 과잉의 시대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 방식과 일관성이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정말로 윤리와 올바름이 가닿아야 하는 순간에 무책임하게 방조하는 위선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티안은 진심으로 사죄하기 위해 소년을 찾아간다. 결국 일상에서의 사소한 폭력에 대해서도 영화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코 소년의 분노와 슬픔을 무시하는 것이 답은 아닐 테니 말이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올바름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문제다. 단순히 어느 한 가치가 우월하고 나머지는 무의미하다고 할 문제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블랙 코미디의 거장 루벤 외스틀룬드는 <더 스퀘어>를 통해 PC를 일방적으로 조롱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서도 PC를 성공적으로 풍자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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