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켄드릭 라마의 첫 내한 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7월 30일, 켄드릭 라마의 첫 내한 공연이 펼쳐졌다.ⓒ 현대카드


'와 미쳤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2015년, 켄드릭 라마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내뱉은 감탄사였다. 군 생활이 권태롭게 느껴지던 상병 시절, 부대 컴퓨터로 음악을 듣는 것만큼 좋은 여가 생활은 없었다.

당시 내가 즐겨 듣던 곡은 긍정의 메시지를 외치는 'I'였다. 이 곡이 수록된 < To Pimp A Butterfly > 역시 시디(CD) 플레이어로 여러 번을 돌려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치밀하게 앨범을 만들 수 있을까' 감탄했다. 이 앨범과 함께 켄드릭 라마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현재 켄드릭 라마를 단순히 '힙합씬의 강자'라고 말하는 건 좀 부족한 설명이다. 그는 현 시점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거물이기 때문이다. 켄드릭 라마는 듣는 이를 짜릿하게 하는 래퍼이자, 현대 미국 사회의 자화상이며, 여전히 남아 있는 인종 차별을 고발하는 목소리다.

현대카드가 그의 첫 내한 공연 소식을 발표했을 때, 많은 음악팬들이 열광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도 오랜 버킷 리스트를 이루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지난 7월 30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이날 실외 온도는 35도를 가뿐하게 웃돌았다. 얼음물을 가득 채운 페트병을 들고도 더위를 식힐 수 없었다. 실외에서 오랜 시간 동안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은 다소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을 유치할 수 있는 실내 공연장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의 공연 인프라도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켄드릭 라마를 만나겠다는 팬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켄드릭 라마가 무대에 오르기 전, 켄드릭 라마와 같은 레이블인 TDE(Top DawnDawg Entertainment)의 신예 Sir가 분위기를 띄웠다. 랩과 노래를 유연하게 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존 레전드(John Legend)와 스쿨보이 큐(Schoolboy Q)를 섞어놓는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이것이 제왕의 'DNA'다

본 공연의 시작이 가까워지면서, 공연석에 자리 잡은 2만 여명의 관객들이 '켄드릭'을 연호했다.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켄드릭 라마의 또 다른 자아인 '쿵푸케니' 비디오가 재생되었다. 그리고 켄드릭 라마가 'Blood'에 삽입했던 폭스 뉴스의 음성도 흘러나왔다. 켄드릭 라마의 공연을 보고 '힙합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인종차별보다 유해하다'며 비웃는 폭스뉴스 출연자의 목소리였다. 이윽고 화려한 섬광이 무대를 뒤덮었다. 'I got I got I got I got!' DNA의 비트와 함께 모두가 기다리던 '그'가 등장했다.

실제로 접한 켄드릭 라마의 라이브는 놀라웠다. 아무리 빠른 템포의 랩을 해도 플로우에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안정적으로 톤을 유지했다. 켄드릭 라마의 랩은 라이브 밴드가 옆에서 만들어내는 비트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그가 동시대 래퍼 중 가장 앞서가는 작사가인 동시에,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과거 마이클 잭슨이 그랬듯이 관객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이번 공연이 'The DAMN Tour'의 일환으로 열린만큼, 이날 현장에선 'Element', 'LOVE' 등 < DAMN > 앨범 수록곡들이 주로 울려퍼졌다.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의 'goosebumps', 스쿨보이 큐(Schoolboy Q)의 'Collard Greens', '블랙팬서 더 앨범'(Black Panther The Album Music From And Inspired By)에 수록된 'Big Shot' 등 켄드릭 라마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곡들 역시 들을 수 있었다.

 켄드릭 라마는 첫 내한 공연에서 완벽한 라이브 실력을 뽐냈다.

켄드릭 라마는 첫 내한 공연에서 완벽한 라이브 실력을 뽐냈다.ⓒ 현대카드


구역별로 온도차가 있긴 했지만, 제왕을 맞이하는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장르 특성상 모든 가사를 따라부르긴 어려웠겠으나, 'Bitch, Don't Kill My Vibe', 'Alright'을 부를 때 팬들의 떼창은 빛을 발했다. 켄드릭 라마는 'LOVE'를 부르면서 공연에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히트곡 'Humble'로 팬들을 단합시킨 켄드릭 라마는 앵콜곡 'All The Stars'를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는 'I'll be back'이라는 약속과 함께 무대를 떠났다. 폭염 속에서 펼쳐진 공연은 약 60분 만에 마무리되었다(세 곡만 더 불렀다면 좋았을 것이다). 생각보다 짧은 러닝 타임에 아쉬움을 표하는 관객들이 많이 있었지만, 켄드릭 라마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젊은 전설'의 이름에 걸맞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공연에서 즐거웠던 점만을 돌아보고 싶지만, 음향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Loyalty 같은 경우엔 마이크와 밴드 사운드가 갑자기 꺼졌고, 'Swimming Pools'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리가 끊기면서, 한창 올라 있던 팬들의 흥도 끊겨 버렸다. 다행히 켄드릭 라마의 노련함 덕분에 분위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으나, 해당 곡들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던 이들은 큰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켄드릭 라마는 며칠 전 펼쳐진 일본 후지록 페스티벌에서도 비슷한 선곡을 들고 왔으나, 차이는 '소리'였다. 소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좋은 음향 상태가 뒷받침되어야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 켄드릭 라마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더없이 완벽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이 시대 최고의 래퍼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운 공연이었으나, 다음에는 더욱 마음 편하게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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