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권력이다. 그 권력을 좇는 이들은 정치인에게 돈을 대고 줄을 대기도 한다. 그런 이들의 '과거'는 중요하거나, 때로는 중요치 않다. 아니,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할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금권'이 필요하고, 대개 힘 있는 조직폭력배(아래 조폭)들은 그 둘을 모두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본인 지역구의 그 금권을 가진 이들의 청탁을, 혹을 접근을 마다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우리가 조폭을 다룬 영화들에서 보고 또 봤던 설정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난 2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조폭과 권력 - 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편이 던져준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중 한 장면.

지난 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중 한 장면. ⓒ SBS


"영화 <비열한 거리> 봤어요? 진짜 <비열한 거리> 보면 진짜 교과서예요, 교과서." (전직 조직폭력배)
"<신세계> 그런 영화 자체가 현실에 똑같이 적용이 될 수 있다고." (조직폭력배 담당 형사)
"<아수라>라는 영화가 있어요. 그 스토리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하고 너무 똑같아요." (정치권 관계자)


21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도입부에 목소리로 출연한 전직 조폭, 형사, 정치권 인사는 하나 같이 '영화 같은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영화에서도 보고 싶은 것만 부각시켜 볼 뿐이다. 특히나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세계와 관련된 소재라면 더더욱 작은 것까지 확대해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소재와 인물을 담을 때 필요한 것이 철저하고 또 철저한 팩트 체크다. 한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영화의 서사가 주는 어떤 이미지를 빌려와 그 팩트의 신빙성을 강조하고 충격을 강화하는 데 일정 정도 활용했다. 아마도 그 영화들이 언급된 증언을 토대로 제작진이 받은 충격을 시청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당한 효과인지는 사실 의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vs. 이재명 경기도지사

2015년 태국에서 일어난 '파타야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무려 28개월 간 도주 중에 올해 3월 검거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파타야 고급 리조트 주차장에서 발견된 25살 임동준을 폭행으로 죽게 한 용의자 김형진이 도주할 수 있었던 배경과 기소 내용에 주목했다.

여러 정황이나 증언에도 불구하고 검거된 김형진의 공소 사실에 살인 등 주요 죄목은 빠진 채 '공동감금, 공동강요, 공동폭행, 도박공간 개설, 점유이탈물 횡령, 주거침입' 등으로 기소됐다는 것이다. 또 김형진이 도주할 수 있던 과정이나 배경의 규모 역시 그 어떤 조력 없이 개인이 벌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에 관해 제작진은 이렇게 설명한다.

"용의자 김형진은 경기도 성남 최대 조직폭력집단인 '국제마피아'파의 조직원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4월 말, 성남 '국제마피아'파의 출신의 조폭이 정치권의 곁을 맴돌고 있다는 의혹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취재 결과, 전·현직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들이 정치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행사에 참여하며, 조폭 출신들이 운영하는 민간단체에서는 성남시에서 예산을 지원받고 있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은수미 성남 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조폭 출신 기업가 연루설을 비롯해, 성남시와 경기도 내 조폭과 정치인 간의 유착 관계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의혹에 휩싸인 유력 정치인들과 성남 '국제마피아'파 전·현직 조직원들을 직접 취재함으로써 조직폭력배 유착설의 실체를 알아본다. 과연 악의적인 음해와 모략일까, 아니면 의혹 너머 진실일까?"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는 등 조직폭력배 측과 연루·유착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들이 조폭인 것을 알지 못했다며 연루·유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는 등 조직폭력배 측과 연루·유착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들이 조폭인 것을 알지 못했다며 연루·유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 유성애


요약하자면, 이렇다. '파타야 사건' 방영 이후 후속취재를 해봤더니, 김형진이 소속된 폭력조직 성남 '국제마피아'파가 도주를 도왔고 이에 관해 추적하니 그 '국제마피아'파가 운영하는 기업 코마트레이드와 이재명 시장 재직 시절 성남시와의 유착 관계들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은수미 성남 시장의 운전기사 논란도 역시 코마트레이드 기업과 관련됐다는 의혹도 거론됐다. 방송분에 따르면 충분히 충격적이고 의혹을 삼을 만한 정황이라는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방송 직후 벌어진 논란 역시 예고된 수순이었다. 연출자인 이큰별 PD는 '1년 전 파타야 살인사건 방송 이후 받은 제보 내용을 보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조직폭력배와 연관된 정치인들이 많다'며 "의혹이 확인되면 (다른 정치인도) 방송을 내 보낼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방송은 "빙산의 일각"이란 표현도 썼다(관련 기사 : '그알' PD "조폭 협박, 이재명 전화... 방송 못담은 내용 많아").

이재명 시장 측의 반론도 이어졌다. 방송 직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조폭연루설을 부인했던 이 시장은 지난 25일 SBS와 <그것이 알고 싶다>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반론을 제기했다. 이 시장은 내용 증명에서 "시청자들로서는 이러한 악의적인 편집으로 인하여 이재명 지사가 중대한 범행을 일삼는 폭력조직을 도와왔던 것으로 오인할 소지마저 있다"며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관련 기사 : 이재명 "통화 일부만 발췌 희화화까지... 정치적으로 큰 타격").

<그것이 알고 싶다>가 빌려온 영화 이미지의 힘

 지난 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중 한 장면.

지난 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중 한 장면. ⓒ SBS


이 글에서 기계적인 균형을 언급할 생각은 없다. 한데 방송을 다시 봐도, 제작진이 제기한 팩트들이 방송 서두에 언급한 영화가 가리키는 현실에 그대로 대응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특히나 방송 직후 수없이 회자됐던 <아수라>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아수라>에 앞서 언급된 <신세계>는 조폭 집단에 스파이로 잠입한 경찰의 갈등을 그린다. 이는 홍콩 영화 <무간도>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현찰을 들고선 직접 줄을 대려는 조폭 보스의 제안을 거절하는 형사의 모습도 담겼다. <비열한 거리>는 어느 젊은 조폭이 한 회장의 제안으로 걸림돌로 부상한 부장검사를 살해한 뒤 벌어지는 일종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모두 비장미 넘치는 누아르 영화들이다. 일각에선 조폭 미화란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이후 다시 본 <아수라>는 훨씬 더한 '지옥도'를 다룬다. '천당 위의 분당'보다 더 돈이 되는 '안남시'를 만들고, 그 이권을 챙기려는 시장이 파트너인 폭력배와 매제인 형사를 이용하다 못해 살해까지 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 시장은 각종 언론플레이는 기본이요, 살인교사와 마약거래 등도 서슴지 않는다.

형사와 검사, 조폭과 시장까지 연루된 거대한 지옥도를 그린 <아수라>는 여러 폭력 묘사나 끝을 보는 서사구조 등 일부 관객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악의 화신과도 같은 '안남시장'의 이미지와 개발을 앞둔 도시나 시장과 형사, 조폭과의 연루 등 몇 가지 설정이나 디테일로 인해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SNS 등에서 "<아수라>가 실화를 방불케 한다"는 호들갑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호들갑의 단서를 제작진이 방송에서 제공한 면도 있다.

요지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탐사보도'한 내용과 팩트들이 과연 방송에서 언급된 영화들의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느냐다. 전직 시장이자 현직 도지사가 조폭과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까지는 물론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악의적인 음해와 모략일까, 아니면 의혹 너머 진실일까?"라는 물음에 대해 일정 정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제작진이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에서 <아수라>와 같은 영화 속 이미지의 강력한 힘을 빌려오는 것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소설가 장정일은 25일자 <한국일보> "부실한 보도에도 공적가치가 있다?"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정작 이 방송물의 문제는 기본을 확실하게 챙기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다. 이 방송물이 무서운 것은, 김형진을 비호하는 배후로 이재명을 연상할 수 있도록 서사가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탐사보도물의 연출자는 자신이 캐낸 증거와 논리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과 조폭'은 자신이 갖추지 못한 증거와 논리를 영화에 의탁한다. 이 탐사보도물에 따르면, 이재명이 국제마피아파 조직의 일부이고 국제마피아파와 공생해온 증거는 고스란히 영화 '아수라'에 들어있다. 이렇게 해서 이재명은 황정민이 되었다. 이처럼 허술한 탐사보도가 가능한 것은 제작자들이 시청자와 대중을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의문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는 등 조직폭력배 측과 연루·유착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들이 조폭인 것을 알지 못했다며 연루·유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는 등 조직폭력배 측과 연루·유착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들이 조폭인 것을 알지 못했다며 연루·유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 SBS 그것이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후속 취재를 예고했다. 이재명 시장 역시 침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논란은 의혹에 관한 '팩트'가 더 밝혀져야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내용의 영화들을 언급한 뒤 전반부엔 살인사건에 관해, 딱 잘라 후반부엔 정치인의 연루에 관해 정황과 의혹 수준에서 제기한 것이 온당한 편집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일보>의 칼럼에서 장정일은 또 이렇게 썼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함께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한국언론진흥재단, 2014)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기자 지망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언론학도의 필수 교재다. 이 책은 탐사보도에 한 장을 할애하면서 '탐사보도는 검찰이 기소를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수반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탐사보도에 오르내린 사안들은 재수사나 기소에 돌입하는 수가 많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탐사보도의 기소적 차원은 더 높은 증거 수준을 요구한다.' 이 원칙이 준수되지 않을 때, 부실한 탐사보도로 순식간에 평판이 저하되거나 인격살해를 당한 피해자의 피해는 이루 복구할 수 없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며 팩트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도저히 가해자들이 반박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서야 그들이 '한방'을 터트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가능성을 막는 것은 물론 가해자들이 빠져나갈 구석을 차단함으로써 반박 불가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제기한 의혹과 팩트 체크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나 <아수라>와 같은 영화의 이미지가 주는 힘을 빌려온 대목은 더욱 그렇다.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의제 설정과 편집 실력(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지사도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꼬집은 바 있다)을 자랑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면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 더 신중했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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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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