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생일이었다. 목숨을 끊고 싶었다.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었다. '그' 남자를 구하기 위해 다른 사내가 주저 않고 선로 아래로 뒤따른다. 막무가내로 저항하는 남자와 그를 설득하며 살리려는 사내. 예상대로 달려오는 지하철, 둘 다 살기엔 시각이 촉박하다. 그때 정지하는 화면.

이 충격적인 CCTV 화면 뒤 이어지는 암전. 전화가 울리자, 그 남자 민수(지용석)의 회색빛 일상이 이어진다. 임신 중인 아내 지영(김시은)은 생일을 맞은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라 종용하고, 민수는 장례식장에 들러야 한다며 미안하다 말한다. 한껏 처진 목소리로. 세차장을 운영 중인 민수에게 손님들은 "웃지 않는다"고 채근을 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느냐며 명함을 건넨다.

그렇게 산 자는 죽은 자와의, 죽은 자의 가족들과의 대면이 탐탁치가 않다. 아니, 거북스럽다. 반면 제사상을 차리는 희자(예수정)는 살짝 들떠있다. 뭘 그리 열심이냐는 딸의 잔소리도,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사위의 농도 들리지 않는 눈치다. 오로지 희자의 관심은 젊은 나이에 죽은 아들 진우의 제삿상과 아마도 수 년을 그 모임의 손님으로 들른 민수에게로 쏠려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민수도, 가족들도 그 자리가 편할 리 없다. 당연하다. 민수를 구하고자 선로에 뛰어들었던 아들 진우는 목숨을 잃었고, 대신 민수는 살아서 절을 하고 있다. 희자는 그런 죽은 아들의 사진이나 옷가지를 버리지도 못하고 방에 고스란히 간직 중이다. 살아남은 민수는 그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제사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했으리라.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아 판타스틱 장편 경쟁부문 진출작이자 19일 극장 개봉한 <행복의 나라>는 이러한 민수와 희자 사이의 무거운 공기를 미세하게 포착하는 작품이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드리워진 극도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치유되지 못한 죄책감은 자꾸 민수의 일상에 손을 뻗는다.

끝끝내 가시지 않는 불안이란 공기

 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민수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은 진우의 집을 가까스로 도망치다시피 해 다음날 아침 아내가 마련한 생일 케이크를 마주하게 되기까지, <행복의 나라>는 상영시간의 절반을 그 불편한 공기를 세밀하게 묘파하는 한편 끝끝내 먹은 음식을 토해 내고 묵혔던 감정까지 끄집어 올릴 수밖에 없는 민수의 감정을 내밀하게 쌓아 올린다. 그래야만 후반부 모호할 수 있는 민수의 선택, 그 선택에서 비롯된 파국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리라는 듯이.

물론 그 공감을 위한 강요나 감정 과잉은 없다. 다만, <행복의 나라>의 관심은 오로지 민수의 액션과 리액션으로 향할 뿐이다. 카메라는 이제는 미국으로 떠난다는 진우 옛 애인의 눈물을 바라보는 민수의 흔들리는 눈빛을, 끝끝내 폭발한 민수 누나의 불만을 감내해야 하는 민수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함으로 향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불편한 죄책감이다.

더군다나, 이제 그는 한 가족의 '가장'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고, 살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그러나 그 행복은 생면부지 타인의 죽음과 맞바꾼 미래다. 그 대척점에 아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붙잡고 싶은 어머니 희자가 있다. 아들이 살린 그 목숨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유사 가족으로 만들고 싶은 그 감정을 우리는 도대체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그 보편 특수한 감정에 천착하는 <행복의 나라>에서 민수와 그의 가족들이 결국 '무속'의 힘에 이끌린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심리적 난구에 봉착했을 때, 더더군다나 죽은 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죄책감을 해결할 수 없을 때 민수가 이끌리게 되는 지극히 한국적인 서사. 민수의 그 선택 또한 산 자의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행복의 나라>가 품고 있는 지독한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행복의 나라>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의미

 영화 <행복의 나라>의 포스터.

영화 <행복의 나라>의 포스터.ⓒ 인디스토리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두 가지가 바로 국민의 안전과 타인의 죽음일 것이다. 비약일 수 있지만, <행복의 나라>에는 그러한 참사 이후 한국사회의 공기가 감지된다. 물론 영화에 켜켜이 드리워진 그 죄책감과 불안의 공기가 그러한 한국사회의 오늘을 대칭적으로 가리키진 않는다. 민수가 자살하려던 이유 역시 영화는 끝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죄책감에서 도망치려는 산 자와 아들 대신 살아남은 그 산 자를 보듬으려는 유족의 갈등만이 부각될 뿐이다.

그럼에도 <행복의 나라>의 그 불안한 공기나 민수의 죄책감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두 가지리라. 사회적 타살을 마주하게 되는 작금의 한국에서 살아남기가 주는 공감이 첫 번째일 것이요, 타인의 희생이란 반석 위에서 작든 크든 죄를 짓고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이 그 둘째일 것이다.

그러한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화 속 누구는 이 땅을 떠나고, 누구는 죽은 자에 매달리며, 또 누구는 무속의 힘을 빌린다. 또 대부분은 민수 누나 가족처럼 불만을 터트리거나, 농을 던지며 견뎌내는 것이리라. 또 하나, 결국 무속의 힘을 빌리다 파국을 맞는 민수의 반대편에 기독교란 종교를 믿는 희자가 서 있다는 점 역시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설정이다.

다수의 단편 영화를 만들고 <국가대표> 연출부와 <우상>의 조감독을 거친 정민규 감독의 데뷔작인 <행복의 나라>는 제목과는 달리 '언해피'한 민수의 일상을 섬세하게 쫓는 예민한 드라마다. 그러한 민수의 감정을 쫓기 위한 롱테이크 형식은 예수정을 비롯해 배우들의 호연을 만끽하기에도 적절하다. 충격적인 출발과 역시나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 <행복의 나라>는 분명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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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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