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도 없고 아르헨티나도 없고 우루과이도 없다. 그렇다고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돌풍을 일으킨 팀이 나온 것도 아니다. 개최국의 선전도 8강에서 마무리됐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유럽 4개팀이 4강에 오른 대회가 됐다. 세계 축구계를 양분해 왔다고 자부했던 남미에게는 자존심에 크게 금이 가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번 월드컵이 마냥 '유로 2018'의 분위기가 나는 것 만은 아니다. 이번 대회 4강에는 지난 대회 우승팀 독일도 없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도 없으며 유로2016 우승팀 포르투갈도 없다. 워낙 많은 이변이 속출하다 보니 차라리 러시아 땅을 밟지 못한 이탈리아나 네덜란드 같은 팀이 속 편할 거란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이번 월드컵 4강에 진출한 팀이 4강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거쳐 힘든 여정을 지나온 최후의 4팀은 월드컵 우승에 도전할 자격이 충분하다. 특히 토너먼트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잡은 프랑스와 일본, 브라질을 꺾은 벨기에는 이번 대회 가장 탄탄한 전력을 갖췄다고 평가 받고 있다. 오는 11일 오전 3시(이하 한국시각)에 열리는 두 팀의 4강전이 '미리 보는 결승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슈퍼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메이저대회 우승할 절호의 기회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1무2패로 충격의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한 프랑스는 티에리 앙리와 니콜라스 아넬카, 프랭크 리베리 등 나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과의 이별을 고했다. 유로2012 이후 대표팀을 맡게 된 디디에 데샹 감독은 폴 포그바(맨유), 앙투안 그리즈만(AT마드리드), 라파엘 바란(레알 마드리드) 같은 젊은 선수들을 대거 선발해 8강까지 오르며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알렸다.

 2018년 7월 6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와 우루과이의 8강 경기. 프랑스의 라파엘 바란이 득점 후 동료 앙투안 그리즈만과 기뻐하고 있다.

2018년 7월 6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와 우루과이의 8강 경기. 프랑스의 라파엘 바란이 득점 후 동료 앙투안 그리즈만과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랑스는 자국에서 열린 유로2016에서 브라질 월드컵의 주역들에 은골로 캉테(첼시), 사뮈엘 움티티(FC바르셀로나), 앙토니 마르시알(맨유) 같은 젊은 인재들이 가세하면서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었다. 비록 결승에서는 연장 접전 끝에 포르투갈에게 0-1로 패했지만 그리즈만이 6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으로 득점왕과 MVP를 휩쓸며 프랑스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전력은 더욱 강해졌다. 프랑스는 위고 요리스 골키퍼(토트넘)와 최전방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첼시)를 제외한 주전 대부분이 90년대 태생으로 구성돼 있어 대회를 치를수록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리틀 앙리'로 불리는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는 상대 수비진을 '정지화면'으로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순간스피드로 펠레 이후 월드컵 무대에 등장한 가장 충격적인 10대 선수에 등극했다.

프랑스의 데샹 감독은 우루과이와의 8강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이례적으로 이번 대회 무득점에 그치고 있는 지루를 칭찬했다. 비록 본인의 득점은 없지만 전방에서의 활발하고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2선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만들어 준다는 의미였다. 역시 축구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득점이 없는 공격수가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성적이 좋으면 보이지 않는 작은 희생까지도 재평가 받을 수 있는 종목이다.

프랑스가 그 동안 좋은 성적을 올렸던 대회들에서는 미셸 플라티니나 지네딘 지단 같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슈퍼스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 프랑스에는 팀의 운명을 홀로 짊어질 만한 슈퍼스타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만약 프랑스가 이번 대회에서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원팀'으로 결승에 진출하고 역대 2번째 월드컵 우승까지 차지한다면 프랑스 축구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 들여 키운 황금세대, 러시아에서 결실 맺는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탈락으로 한계를 느낀 벨기에는 유소년 축구에 집중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벨기에가 미래를 위한 탄탄한 '기초 공사'를 하던 시기, 벨기에는 유로 2004와 2008,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등 2000년대 주요 메이저대회의 본선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축구팬들도 '원조 붉은 악마'의 몰락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2018년 7월 7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8강 브라질과 벨기에의 경기. 벨기에의 케빈 데 브라위너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한 후 환호하고 있다.

2018년 7월 7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8강 브라질과 벨기에의 경기. 벨기에의 케빈 데 브라위너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한 후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벨기에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훌쩍 성장한 선수들과 함께 더 강한 팀으로 돌아왔다. 유럽 지역 예선부터 8승 1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본선에 오른 벨기에는 러시아, 알제리, 한국과 한 조에 속한 본선 조별리그에서도 3전 전승을 기록했다. 비록 8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0-1로 패했지만 벨기에에게 월드컵 8강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4강에 이어 역대 2번째로 좋은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벨기에의 경기력은 단연 돋보인다. 이미 조별리그에서 9골을 기록했던 벨기에는 이번 대회 5경기에서 총 14골을 기록하며 4강 진출팀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화력을 과시하고 있다. 일본과의 16강전에서는 후반 두 골을 내준 상황에서 30분 만에 세 골을 퍼부으며 극적인 역전극을 만들어냈고 브라질과의 8강에서는 전반에만 두 골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벨기에는 조별리그에서 로멜로 루카쿠(맨유)가 4골, 에당 아자르(첼시)가 2골을 기록하며 공격을 주도했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수비수 얀 베르통언(토트넘)과 미드필더 케빈 데 브라위너(맨시티), 마루앙 펠라이니(맨유), 나세르 샤들리(웨스트브로미치) 등 다양한 포지션의 선수들이 득점을 올려주고 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상대가 두려워하는 벨기에의 가장 큰 무기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4강전은 '앙리 더비'로도 축구팬들에게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이었던 프랑스의 레전드 앙리는 지난 2016년부터 벨기에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벨기에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중계 카메라는 앙리의 표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따라 다닐 것이고 경기 전후 앙리의 코멘트는 축구팬들에게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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