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지난 1일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KBS


"사실 그 보도 이후 제가 사회부를 떠나서 장자연 보도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조선일보>라는 실명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론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 소송이 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죠." 

장자연의 자필 문건을 최초 보도한 KBS 임종빈 기자는 다른 두 기자와 함께 <조선일보>로부터 1억 5천만 원짜리 소송에 휘말렸다고 했다. 3억 폭탄을 맞은 KBS 법인과 함께였다. 2009년 국회에서 '장자연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을 최초로 특정했던 이종걸 의원도 <조선일보>로 부터 30억 원의 손해배송을 당했다. 이후 이 소송들은 모두 <조선일보>의 패소로 결론 났다. 이종걸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일반 국민들이 비슷한 일을 당했으면 얼마나 무서운 협박에 시달렸을까. 거대 언론이 협박을 하니까 작은 언론까지 포함돼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이란 것이 형성되면서 일부는 덮어지고 일부는 왜곡되고…. 자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1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임종빈 기자의 입을 빌려 당시 '장자연 리스트 사건' 보도에서 왜 기자들이 <조선일보>라는 실명을 거론할 수 없었는지, 사건 자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소극적이었는지를 재조명했다. 임 기자는 2011년 이른바 '장자연 편지' 주장이 SBS 보도로 다시 회자됐을 당시 "이 사건을 다시 파헤쳐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 보도 역시 '특정세력 공격'으로 몰고 갔다.

검경의 부실수사와 언론의 소극적인 태도를 적극 부추긴 것이 바로 이러한 <조선일보>의 소송전과 언론 플레이였을 터.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이날 지난 2011년 검찰 조사 결과 발표와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 '오해'를 받았던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직접 만났다.

'방씨'도 아닌 이 인사 역시 당시의 상황을 억울해 하고 있었다. 이 <스포츠조선> 전 사장은 당시 검찰조사에서 장자연 문건에 나오는 '<조선일보> 방 사장'은 자신이 아니라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방용훈 사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동생이다. 

"(<조선일보>) 기사 나간 다음날, 법조 출입 기자 10명 정도 불러서 설명했습니다. '나는 장자연이 누군지도 모른다', '나는 코리아나 호텔 방용훈 사장이 주최한 모임에 불려 나갔을 뿐이다', 그런데 기사 한 줄 안 나갔어요. <조선일보> 겁나서 (기자들이 기사를) 안 쓴 거 아닙니까. 다른 신문들도 사주가 있고 약점이 있으니까 알아서 기는 거예요."

9년이 지나도 '<조선일보> 방 사장'에 쏠리는 관심

그 '장자연 리스트' 속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방 사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일 고 장자연 사건을 본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지난 3월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23만 명을 넘기면서 관심이 촉발된 이후 4개월여 만의 결정이다.

"고 배우 장자연씨가 성접대 피해를 폭로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기회가 9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오늘(2일) 회의를 하고 '고 장자연씨 사건'을 본조사 대상에 선정했습니다. 지난 2009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이 축소되거나 은폐됐을 정황이 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과거 장씨 문건에 담긴 '조선일보 방 사장'과 유력 인사들은 대체 누구인지, 그리고 이 사건을 봐주려 한 배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게 됐습니다."

2일 이 소식을 전한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역시나 '<조선일보> 방 사장'을 언급했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 문건 속 인물들 중 최고 권력자가 어디까지 연루됐는지, 또 검찰 수사는 물론 언론 보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 누구인지가 최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7월 2일자 JTBC 뉴스룸

7월 2일자 JTBC 뉴스룸ⓒ JTBC


앞서 장자연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인 조OO씨가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는 문건 속 이름들 중 유일하게 공소시효가 남은 인물로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28일 <뉴스룸>과 인터뷰하며 눈물을 쏟았던 장자연의 동료 배우 윤OO씨 역시 이 <조선일보> 기자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윤씨는 과거 검찰 조사에 증인으로 출석, 장자연이 당한 성추행을 진술한 인물이다.

"(검찰이) 가해자로 지목된 조씨를 오히려 믿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갓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사리판단을 하지 못했지만 제가 느끼기에도 많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조사 후에 나중에 알게 된 사실. 그분의 배우자가 검사 (측)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부분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이번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이 재조사 결정을 내린 사건들은 대부분 검경이 정치적 상황이나 권력의 외압으로 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던 것들이다. 장자연 사건과 함께 재조사가 결정된 용산참사 철거민 수사나 KBS 정연주 사장 기소 사건 역시 '무리' 의혹과 '반발'이 일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MBC 광우병 보도 사건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역시 검찰의 강제·과잉 수사가 문제됐다. 앞서 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 결정을 내린 김근태 전 의원 고문 은폐사건과 형제복지원 사건,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정권에 의한 조직적인 은폐와 검경의 축소 수사 의혹이 선명한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사건들엔 공통점이 있다. 분명히 존재할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구는 승진을 거듭하며 호가호위했고, 누구는 지금도 이름 석 자를 휘날리며 권세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공소시효는 끝났더라도 이들이 그 어떤 죗값을 치를 방법은 존재한다. 재조사를 통해 가해자의 일단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면 또 다른 반향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한 일부 언론의 관심은 환영할 만하다. 과거 억대 소송 전을 불사하며 사주의 이름을 지켰던 그 <조선일보> 지면판이 지난 4월 3일 검찰의 장자연 사건 재조사 결정을 단신 처리한 이후 단 한 번도 장자연이란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조선일보> 온라인판 역시 장자연 사건을 주요하게 언급한 JTBC나 KBS, MBC와 달리 장자연이란 이름을 헤드라인으로 뽑지 않고 있다.

 2018년 4월 3일자 <조선일보> 지면 기사.

2018년 4월 3일자 <조선일보> 지면 기사.ⓒ 조선PDF


당시 여론을 호도했고, 또 그 후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조선일보>가 과연 검찰의 재조사와 연이은 언론보도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 과거 '언론 카르텔'의 오명을 써야 했던 수많은 언론들이 얼마나 달라진 자세를 보일지도 관심 갖고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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