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뮤지컬 <메피스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장기나 바둑을 보면 내가 둘 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수가 옆 사람에겐 쉽게 보일 때가 있다.

제12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 아래 DIMF) 개막작인 뮤지컬 <메피스토>가 우리 뮤지컬계의 고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뮤지컬 <메피스토>는 체코 현지에서 재작년 초연 후 흥행 가도를 달리는 작품이라고 한다. 누구나 이름 정돈 들어봤을 법한 괴테의 걸작 희곡인 <파우스트>를 파워풀한 군무가 돋보이는 대형 뮤지컬로 만들어냈다.

뮤지컬 <메피스토>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뮤지컬 <메피스토> 중 한 장면.

뮤지컬 <메피스토> 중 한 장면. ⓒ DIMF


신과 루시퍼가 인간이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지 내기를 벌인다. 내기에 선택된 대상은 '학생들 모두보다 똑똑하다'며 칭송받는 교수 파우스트. 그는 평생 연구에만 몰두하며 자신의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인 그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공연에 초대된 배우 마르그리트를 보고 반한다.

그런 그에게 루시퍼의 하수인인 악마 메피스토가 접근해 젊음을 선물한다. 그는 젊음을 얻어 쾌락과 유흥을 배우고, 마르그리트와도 만나게 돼 평생 몰랐던 사랑을 나누지만, 그것도 잠시뿐. 메피스토는 다시 젊음을 가져간 뒤 그에게 영혼을 거래하길 제안한다.

파우스트는 마르그리트에게 반해 메피스토와의 거래를 수락하지만 행복의 정점에 달할 때 영혼을 주겠다며 메피스토에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에 메피스토는 인간은 권력을 가져야 행복하다며 그를 도시의 대표로 만들고, 거짓 연금술로 황금을 연금해 도시의 시민들을 그를 따르는 노예처럼 만들어버린다. 정작 그 과정에서 마르그리트는 파우스트의 곁을 떠나 다른 도시로 향한다.

성공에 취한 파우스트는 뒤늦게 사랑 없는 삶은 텅 빈 것과 같다며 마르그리트를 찾게 된다. 한편, 메피스토는 황금을 얻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망을 이용해 파우스트 한 명이 아닌 수천 명의 인간들과 계약을 맺으려 한다. 계약이 맺어지려는 순간, 루시퍼가 등장해 허상으로 인간을 속이며 계약을 맺으려 한 메피스토가 지옥의 규율을 어겼다며 그가 맺은 계약을 모두 파기해버린다. 메피스토는 언제나 욕망에 취해 순간을 택하는 인간들에게 경고를 날린 뒤 퇴장하고 노인으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마르그리트와 남은 삶을 보낸다. 신은 거듭되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력한 파우스트를 구원한 것이다.

설정에 아쉬운 점 있지만... 국내 뮤지컬계에 시사하는 바 분명하다

 뮤지컬 <메피스토> 중 한 장면.

뮤지컬 <메피스토> 중 한 장면. ⓒ DIMF


우선 <메피스토>는 뮤지컬의 장르적 특징을 잘 이해하고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이 눈에 띈다. 난해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젊음'과 '돈', '권력'이란 키워드로 정리해 쉽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또 영상과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신들의 모습이나, 수십 명의 앙상블들이 펼치는 군무로 볼 거리를 제공해 관객의 호기심을 끌어당긴 뒤 디테일한 이야기보다는 객석을 향한 굵직한 대사로 주제를 전달한다. '쇼스토퍼' 역할을 넘어 '씬스틸러'라고 할 만한 캐릭터인 보세티가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특장점이라 할 만한 부분은 두 주연 지리 조니가와 대니얼 바르탁이 보여주는 2인 4역 연기다. 노인 파우스트와 청년 파우스트를 맡은 두 배우는 각각 그 몸에 메피스토가 깃들었을 시기를 연기하는데 둘의 변신을 특별한 장치나 화려한 기교 없이 연기로 풀어낸 부분이 재밌고 신선하다. 대니얼 바르탁이 작곡한 노래 역시 상쾌하고 강렬한 사운드로 귀에 꽂힌다.

물론 장점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여성을 권력에 따르는 부산물, 소유물처럼 보는 시각이 깔려있고 마르그리트와 라우레치에 보세티 등의 캐릭터가 흔히 말하는 '성녀와 창녀'처럼 이분법적이고 단편화된 느낌은 뮤지컬 <메피스토>를 낡고 남성 중심적인 이야기로 만든다. 또 춤과 음악으로 경쾌하게 풀어낸 데다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파우스트가 대변하는 인간의 고뇌가 다소 가벼워보이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 <메피스토>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복잡하지 않게 정리된 스토리로 선 굵은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달하며 뮤지컬 마니아가 아닌 관객들도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성과 오락성을 얻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이 지나치게 선명해 마지막 메피스토의 대사는 이른바 영화 <쉬리>의 '히드라'처럼 뻔히 보이는 작품의 주제를 다시 풀어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전체적인 완성도 자체가 한국 뮤지컬에 비해 부족할 수도 있다.

최근 국내 뮤지컬계에는 점점 관객이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공연을 계속 올리던 회사가 알고 보니 부실한 재정 상태를 이기지 못해 갑자기 제작 중단을 선언하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뮤지컬 <메피스토>가 그럼에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국내 공연계에 약간의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 함께 실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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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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