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손흥민 '너무 아쉬워'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슛이 빗나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 [월드컵] 손흥민 '너무 아쉬워'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슛이 빗나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발전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실수였다고 혹은 운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같은 실수가 두 번 세 번 되풀이되면 거기까지가 곧 실력이다. 이제는 아련한 도시전설이 된 2002년의 4강 신화에서 무려 16년이 흐른 2018년의 한국축구는 더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과거보다도 퇴행한 듯한 모습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차전에서도 반전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한국은 24일 오전 0시(한국시간) 러시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1-2로 패했다. 멕시코는 2연승으로 16강행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1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1로 진 한국은 2연패로 승점을 따내는 데 실패하며 조별리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이 조별리그 첫 두 경기를 모두 패한 것은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마지막 상대가 월드컵 우승국 독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28년만의 3전 전패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나마 이어진 경기에서 독일이 스웨덴(이상 1승 1패)을 상대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실낱같은 16강 생존 희망을 남겨놓기는 했지만 최종전에서 한국이 월드컵 우승국 독일을 이기고 스웨덴이 멕시코에 패하는 기적같은 시나리오가 나와야 하는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다.

수비수들의 안타까운 부진

[월드컵] 황희찬 돌파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황희찬이 질주하고 있다.

▲ [월드컵] 황희찬 돌파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황희찬이 질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타까운 것은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패배의 빌미가 되었던 '결정적 장면'들이 2차전에서도 마치 재방송처럼 되풀이되었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 멕시코의 우세가 예상된 경기이기는 했지만 한국은 이날 4-4-2로 전술변화를 단행하며 스웨덴전과는 달리 초반 멕시코를 거세게 몰아붙이며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장현수의 태클 실수와 PK(페널티킥) 허용, 그리고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이 이날 승부의 흐름을 바꿨다. 지난 1차전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한국은 스웨덴전에서도 전반을 무실점으로 그럭저럭 버텨냈으나 후반 아군진영에서 장현수의 패스 실수-교체 투입된 김민우의 무리한 태클로 이어지는 수비수들의 연이은 판단 미스로 PK 결승골을 내주며 무너진 바 있다.

전반 24분 김민우가 상대 역습에 공간을 내줬고 이를 커버하던 장현수가 문전 크로스를 차단하기 위하여 태클을 시도하다가 공이 팔에 맞았다. 심판은 장현수의 핸드볼 파울을 선언하며 멕시코의 페널티킥을 지시했다. 27분 벨라가 침착하게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경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멕시코 쪽으로 넘어갔다.

서서 버티는 수비를 해야 할 상황에서 섣부른 태클을 시도한 판단 자체도 아쉬웠지만 위험지역에서 공이 날아올 수 있는 동선으로 팔을 높이 치켜든 것부터가 수비수로서 초보적인 실수였다. 바로 지난 스웨덴전에서도 김민우가 의욕만 앞선 위험한 태클로 결국 PK를 내준 장면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모습이었다. 한국을 상대한 스웨덴이나 멕시코 선수들도 핸드볼을 저지른 경우가 있었지만 최대한 팔을 돌리거나 어깨를 움츠리며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파울을 지적받지 않았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장현수와 김민우의 부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웨덴전에서 부상을 당한 박주호의 대체요원으로 투입된 김민우는 빠르고 기술이 좋은 멕시코 선수들을 제어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 공격에서는 제대로 된 크로스 하나 올리지 못하는 부진을 이어갔다.

장현수는 후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치차리토)의 두 번째 골 상황에서도 아쉬운 태클이 나왔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슛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에르난데스는 가벼운 속임수 동작으로 장현수를 완벽하게 따돌리고 골키퍼 조현우와 1대1 상황에서 여유롭게 득점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공격수의 슛 각도를 좁히고 플레이를 지연시키는 게 우선인 상황에서 마음이 앞서서 공만 보고 달려든 댓가였다. 수비수의 순간적인 상황 판단력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준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장현수와 김민우는 이미 평가전에서부터 잦은 실수 등으로 지적받던 선수들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장현수와 김민우를 꾸준히 중용했으나 결과적으로 두 선수는 월드컵에서도 잇달아 실점을 허용하며 명예회복에 실패했다.

[월드컵] 환호하는 멕시코 선수들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멕시코 대표팀이 환호하고 있다.

▲ [월드컵] 환호하는 멕시코 선수들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멕시코 대표팀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멕시코에 패배한 것보다 더욱 아픈 것은...

심판 판정 역시 이번에도 한국의 편이 아니었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2번째 골이 터지기 직전 한국의 공격 상황에서 기성용이 볼을 몰고 가다가 상대 선수의 명백한 반칙성 플레이에 넘어졌음에도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바로 멕시코의 역습으로 골까지 이어진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VAR 판독도 고려해볼 수 있었지만 심판은 한국 벤치의 항의를 무시했다.

한국은 이날 무려 24개의 파울을 지적받았고 무려 4명의 선수가 경고를 받았다. 스웨덴전보다 전방 압박을 강화하며 다소 거친 플레이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심판이 멕시코 선수들의 반칙성 플레이에는 휘슬이 인색했던 것도 스웨덴전과 비슷했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평정심을 잃고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는가 하면 멕시코 선수들과도 신경전을 벌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신태용 감독의 경기운영도 아쉬움이 남았다. 멕시코전 전반에 보여준 경기력은 사실 스웨덴전에서 먼저 보여줬어야 할 모습이었다. 경기 초반 1차전과는 다른 전술과 선발 라인업을 꺼내들며 변화를 준 것은 좋았지만, 고질적인 수비불안 문제로 이번에도 선제골을 내주며 흐름이 끊겼고,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땅한 플랜 B-C가 없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다.

'트릭' 논란까지 감수하며 전력 비공개에 집착했던 것을 감안하면 신태용호는 공격과 수비 전술 모두 완성도가 극명하게 떨어졌다. 선수들 개개인은 물론 최선을 다했지만 팀으로서 조직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에이스 손흥민은 비록 막판 만회골로 체면치레를 했지만 부담감이 컸던 듯 전반적으로 무리한 드리블로 공을 끌다가 상대 수비가 둘러싸여 무력화되는 장면이 잦았다.

황희찬, 문선민, 이승우 등은 열심히 뛰어다니기는 했으나 문전에서의 침착성이 떨어진데다 연계능력에서 아쉬움을 보이며 움직임에 비하여 실속이 없는 젊은 선수들의 경험부족을 드러냈다. 베일에 싸여있던 세트피스는 도대체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수 없을만큼 위협적인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에야 터진 중거리슛 만회골은 조직적인 플레이와는 무관하게 그저 손흥민의 개인능력으로 만들어낸 골이었다.

[월드컵] 손흥민 '들어가라!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멕시코 엑토르 모레노를 피해 슛하고 있다.

▲ [월드컵] 손흥민 '들어가라!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멕시코 엑토르 모레노를 피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체카드도 실속이 없었다. 선발로 나선 문선민을 이승우로 대체한 것을 제외하면 만회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공격수 대신 미드필더 정우영과 수비수 홍철을 교체로 투입하는 알 수 없는 용병술이 이어졌다. 실제로 교체투입된 선수들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었다. 스웨덴전에서 선발로 나왔던 김신욱과 구자철은 공격자원임에도 정작 멕시코전에서는 벤치만 지켰다. 활동량이 많았던 멕시코전 후반 손흥민-기성용 등의 체력이 고갈되어 걸어다니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고, 좀 더 직선적인 공격루트가 필요한 상황에서 신태용 감독은 공격 전술에 변화를 줄 만한 카드가 전무했다.

한국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 멕시코에 패한 것이 놀라운 일 자체가 아니다. 다만 패배보다 더 아픈 것은 한국축구가 2014 브라질 대회의 참혹한 실패 이후 지난 4년 동안 여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왜 손흥민은 대표팀에서는 부진한지'같은 개인의 역량 탓으로만 자꾸 떠넘기는 차원을 넘어, 한국축구 자체가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게 모든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죽음의 조에 배정되었다는 것, 16강 진출 가능성이 처음부터 희박했다는 것은 어차피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대표팀에 기대했던 것은 질 때 지더라도 한국축구만의 색깔과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아시아 예선에서조차 허덕이며 성적 부진과 감독교체의 혼란 속을 헤맸던 지난 4년간의 과정을 돌아볼 때 월드컵에서 벼락치기로 반전을 기대한 것은 욕심에 가까웠다.

선수들의 개개인의 기량과 투지도, 감독의 전술과 경험도, 한국축구의 전통적인 강점인 체력과 압박도 어느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이번 대회는 과연 '한국이 아직도 월드컵 본선에 어울리는 팀인가'에 대한 심각한 회의만을 안겨주고 있다. 차라리 이제는 이번 대회의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더라도 한국축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과 새판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월드컵] 서로 격려하는 한국 선수들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1-2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월드컵] 서로 격려하는 한국 선수들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1-2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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