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홈> 메인포스터

영화 <홈> 메인포스터ⓒ 리틀빅픽쳐스


01.

2년 전, 이맘때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은 아이들의 섬세한 감정을 제대로 전달해 낸 뛰어난 작품이었다. 마치 감독 본인이 그들의 삶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기라도 하듯, 어느 한순간도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던 선과 지아의 이야기. 이제 어른이 된 감독이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선이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윤가은 감독은 이 작품으로 수많은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영화 <우리들>이 우정이라는 관계를 소재로 활용했다면, 지난 5월 말 개봉한 김종우 감독의 <홈>은 가족의 관계를 작품의 중심에 두고 있는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이자 시선의 당사자인 준호(이효제 역)는 아빠 없이 엄마 그리고 이부 동생 성호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엄마와 이혼한 아빠와 연락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빠는 버거운 자신의 삶을 핑계로 준호를 밀어낸다. 실질적으로 준호가 오롯이 기댈 수 있는 존재라고는 엄마 하나뿐.

하지만, 그런 엄마조차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준호는 14살의 나이에 자신은 물론 동생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때 등장한 이부 동생인 성호의 친아빠 원재는 성호를 직접 데려다 키우고자 하고, 성호가 끝까지 형인 준호를 따르면서 그 역시 원재의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02.

전통적인 의미의 혈연 가족이 아닌, 어른들의 상황과 선택에 의해 새로운 의미의 가족을 형성하게 된 소년의 시선과 감정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선택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 결과는 오롯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들. 가족의 붕괴 앞에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소년의 무방비한 모습이 영화 속에 그려진다. 감독은 소년이 겪게 되는 이 모든 절망적인 상황들을 통해 혈연관계를 대신할 수 있는 가족의 탄생이 가능한지, 또 소년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는다.

가족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서로를 지탱하게 하는 힘과 심리적 안정에 대한 부분을 결핍과 상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역시 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이다.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족이기는 했으나 자신이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비혈연 관계에 있지만 삶의 가장 어두운 지점에서 삶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원재와 동생들. 영화는 단순히 두 관계 어느 한쪽의 손을 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혈연관계에만 무게를 두던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 <홈> 스틸컷 영화 <홈> 스틸컷

▲ 영화 <홈> 스틸컷영화 <홈>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03.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는 달리, 영화는 생각보다 전형적인 편에 속한다. 주인공인 준호(이효제 역)가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물론, 각 사건이 등장하는 타이밍이 다른 작품들과 큰 차별점을 갖지 못하는 것, 일종의 클리셰(Cliché)다. 그렇다고 그런 장면들로 인해 영화 속 준호의 입장을 이해하는 감정적 유대감이 무너질 정도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율배반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간혹 영화들 가운데는 이런 작품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클리셰라는 단어는 영화 속 유사한 장면, 틀에 박힌 진행에 이용된다. 조금 무분별하게. 하나의 장르가 보여주어야 하는 혹은 보여줄 타당한 가치가 있는 장면 혹은 흐름인 장르적 특성과 구분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좋은 예다. 그는 고전적으로 이용되는 도입부 혹은 미스터리한 장면들을 작품마다 활용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표현법과 상황 연출로 흥미로움을 놓치는 경우가 없다. 이 경우에 작품이 갖는 일련의 모습들은 클리셰가 아닌 장르적 특성이 반영된 흐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언제나 뉴욕을 배경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들 역시 유사한 시각에서 분석될 수 있다. 물론, 이 작품 <홈>의 경우에는 장르적 특성이라고 하기에 조금 넘치는 부분들이 있고, 이것은 분명 클리셰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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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장르적 특성과 구분되어 확정된 클리셰가 작품의 전체적인 감정선을 무너뜨리는가에 대한 것이다. 단순히 영화 속 어떤 한 부분이 유사하다고 해서 그 작품이 클리셰로 점철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가혹하기 때문이다.

가령, 멜로 장르의 작품에서 사랑을 하던 두 남녀가 예상치 못한 이별을 앞두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있다고 하자. 단순히 이 장면의 연출만으로는 이 작품의 클리셰를 확정하기는 힘들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이 장면의 클리셰가 작품의 앞선 감정선과 후에 이어지는 감정선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악성 클리셰의 경우에는 그것을 떼어내더라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으며, 오히려 작품에 개입되는 경우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앞서 이 영화 <홈>이 클리셰의 지점을 지나고는 있지만, 감정적 유대감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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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서, 유사한 장면들의 나열과 흐름 속에서도 준호가 자신 앞에 놓인 삶을 버텨내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방향이 어떠한 지와는 별개로 감정적으로 큰 울림을 준다. 본인 역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모습이라던가. 벼랑 끝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자신의 사정을 꾹 눌러내는 모습이라던가. 자신 앞에 놓은 마지막 동아줄을 어떻게든 붙잡기 위해 모진 일들을 감내하는 모습과 같은 것들이 말이다. 성인이 버티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순간들을 미리 준비할 겨를은커녕, 때마다 눈앞에 놓인 줄을 붙잡고 이겨내려는 모습이 안타까워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영화 속에서 그의 동생들로 등장하는 성호(임태풍 역)와 지영(김하나 역)은 잠깐이지만 준호가 등장하는 지점의 무게를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아주 긴 변명>에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는 아카리(시라토리 타마키 역)의 역할과 유사하다. 물론 성호와 지영의 관계로 인해 준호의 처지가 더욱 곤란해지고, 원재(허준석 역)의 내적 갈등이 유발되는 부분이 있지만, 특히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도 잘 알지 못하고 해맑게 웃는 성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영화 <홈> 스틸컷 영화 <홈> 스틸컷

▲ 영화 <홈> 스틸컷영화 <홈>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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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준호의 시선을 따라 흐르지만, 중 후반부를 넘어가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는 원재의 심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은 이 작품을 연출한 김종우 감독의 섬세함이자 연출자로서의 가능성이 돋보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준호와 성호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시점으로부터 그는 준호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준호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것에는 표면적으로 자신의 친아들인 성호가 준호를 깊게 생각한다는 점이 영향을 주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린아이를 혼자 두는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감이 작용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어른은 유일하게 원재라는 인물뿐인데, 감독은 그를 통해서 영화 밖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듯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가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07.

캐릭터의 심리나 인물의 감정을 핵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극의 구조는 단순할수록 효과적이다. 처음에서 언급한 윤가은 감독의 <아이들>이 그랬다. 다른 모든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두 소녀의 관계에 밀도 있는 접근을 시도했다.

이 영화 역시 지금보다 조금 더 단순한 구조로 인물들의 심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명확한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안타까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변화하는 준호의 미세한 심리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준호에게 집은 어떤 대상으로 존재하게 될까? 원재가 준호에게 새 축구화를 사 주었던 날, 그 날 밤 준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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