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SBS


제작 의도가 유족의 매정함을 밝히자는 것이 아니었겠지만, 아들의 주검을 두고 '고깃값이라도 받아야겠다'고 했다던 아버지의 태도는 이해불가였다.

지난 26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故염호석 '시신 탈취' 미스터리'란 부제 아래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로 일했던 염호석씨의 자살과 장례를 둘러싼 의문을 다뤘다.

염호석씨의 죽음이 알려진 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왜 연고도 없는 강원도에서 죽음을 택했는지 또 그의 시신을 놓고 벌어진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의문을 표했지만, 그것을 꼼꼼하게 파헤친 언론은 많지 않았다. 4년이 지났지만, 34세(당시 나이) 서비스 노동자의 죽음과 그 당시 벌어진 시신탈취 사건을 파고든 방송이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대다수 언론은 그동안 진실을 은폐했다.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진실을 마주해야 했던 까닭에, 국민의 한 사람이었던 난 방송 내내 고 염호석씨에게 미안했다.

34세 젊은이가 죽는 것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자살자 수가 25명(2016년 기준)에 달하는, 'OECD 최고의 자살 국가'란 멍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염씨가 숨을 거둔 그 현장에서도 소주병과 유서, 번개탄 등이 발견돼 수사당국은 단순 자살로 처리했다. 그러나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과정은 참혹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정점에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자리 하고 있었다.

염씨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SBS


되짚어 보면 분노에 찬 죽음과 시신탈취는 군사정권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온몸에 시너를 붓고 정권에 저항하고, 권력에 의해 맞아 죽은 이들은 수두룩했지만 정권은 진상규명보다는 은폐가 먼저였다. 투쟁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영안실 침탈은 정해놓은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이들이 시신을 지키기 위해 병원을 둘러싸고 밤샘을 했지만 영안실 벽을 해머로 깨부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던 그 때는, 군사정권시절이었다. 놀랍게도 2014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해머'는 '6억'이라는 돈으로 바뀌었고, 설계자는 정보기관이나 정치권력에서 경제권력으로 바뀌었으며, 일을 처리하는 과정은 더 치밀해졌다.

당시 염호석씨는 유서를 통해 노조 주도로 장례식을 치러줄 것을 부탁했고, 염씨의 부모 또한 그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후 삼성측이 염씨의 아버지를 만나 가족장으로 치러주길 부탁하며 6억 원을 건넨다. 그 뒤 염씨 아버지는 가족장을 추진했고, 이에 노조가 반발하자 공권력에 요청해 염씨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 장례를 치른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삼성 탄압의 실체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랍다. 삼성은 노조원과 비노조원 사이에 가벽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노조 탈퇴를 실적으로 관리했다. 서비스 지점을 아예 폐쇄하는 경우도 있었다. 염호석씨는 죽기 두 달 전인 3월에는 월급으로 70만 원을, 4월에는 월급으로 41만 원을 받았다. 비노조원들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노조원들에게는 '콜'을 안 하는 고사 작전의 일환이었다. 삼성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염호석씨를 일감에서 배제해 고사시키려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염씨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2014년 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직원들을 '삼성가족'이라 불렀다. 협력사와 동반 성장을 강조했고 사업장이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지를 높이자는 주문도 있었다. '가족', '안전하고 쾌적한 사업장', '서비스 품격과 가치'라니... 현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에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은 얼마나 몸서리를 쳤을까. 가족은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밉보이면 서슴지 않고 밥줄도 서서히 조이는 갑질. 그것이 삼성 창업주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는 유훈 때문이라니, 초일류기업 경영철학치고는 후져도 너무 후졌다. 

공권력 남용... 경찰에게도 당연히 죄를 물어야 한다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SBS


특히 염호석씨의 시신을 놓고 벌어진 그 장면은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극적이다. 삼성 임원이 노조 주도 장례를 막기 위해 6억 원을 내밀고 회유하는 장면은 차라리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 시신도 보지 못한 고인의 부친에게 보상을 이야기하고, 염씨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앞에 차를 대기시켜 호텔로 데려간 뒤 가족장과 6억 원을 맞바꾼다는 설계도 모자라 삼성과 계약 관계에 있는 장의업체를 동원해 시신을 빼돌리는 기막힌 노조 따돌리기는 군사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치밀한 공작을 능가한다.

그러나 더 가관인 것은 조력자로 둔갑한 경찰의 모습이다. 그날 경찰에게선 형평의 원칙도 중재자의 모습도 기대할 수 없었다. 염호석씨 친모를 영안실에서 격리시키고, 방패로 고립시키기까지 한다. 시신을 빼돌리는데 수백 명의 경찰들이 길을 만든다. 화장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장장 입구에서 친모와 유가족들을 막은 건 경찰이었다.

삼성은 설계자였고 경찰은 조력자였다. 삼성에게 천인공노의 죄를 묻는다면 경찰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들은 이런 부당한 곳에 공권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권력 남용이다. 경찰에게도 당연히 죄를 물어야 한다.

삼성 민낯 고스란히 보여준 노조파괴 문건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SBS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26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사라진 유골, 가려진 진실 고(故) 염호석 시신탈취 미스터리' 편 캡처.ⓒ SBS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으로 드러난 삼성의 민낯은 추악하다. 염호석씨의 주검을 두고 거래를 했듯, 정경유착을 통해 사익과 뇌물을 맞바꾸었다. 2심 재판부는 '수동적 뇌물공여'라는 석연찮은 논리를 내세워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줬지만, 일부 국민들은 법의 잣대를 의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스 소송비 대납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에서도 삼성의 민낯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사 중인 사건이라지만, 드러난 일부 사실만으로도 국정농단 사건과 비교했을 때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과연 삼성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알수록 놀랍고 무서워진다.

삼성전자는 수년째 사상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갈아치우고 있다. 한국 사회는 매년 불황을 갱신하고 있는데, 몇 년째 보란듯이 나홀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다. 오히려 삼성의 성장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일자리 만들기에 기여한다면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삼성의 나홀로 성장에 박수를 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해마다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하고도 사익을 위해 정권과 결탁해 경제 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본사 직원들에게는 수천만 원씩 성과급을 안겼지만 자회사 서비스 노동자에게는 말라서 죽게 만드는 '고사' 작전을 펼친 곳이 삼성이기 때문이다.

최근 아버지 염씨에게 6억 원을 건넨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최아무개 전무가 구속됐다. 그러나 죄를 물어야 할 시람은 더 있고, 은폐된 진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설계자와 조력자, 실행자는 아직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염호석씨의 유서 첫 머리다. '초인류 기업' 삼성이 언제까지 음지에서 과거 정보기관의 못된 흉내나 내며 기업을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80년 역사를 가진 삼성이 창업주의 그릇된 유지를 받드는 것은 국가를 위한 일도 국민을 위한 일도 아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그들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물었다. 이제 삼성이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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