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 속 검사와 현실의 간극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디 검사 뿐일까. 판사, 변호사, 법원 검찰 공무원 등 법조계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과 생활은 '항공모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의 인식과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다. 또 현실의 법과 드라마 속 법도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정드라마와 현실이 어떻게 다르고 어디가 비슷한지, 법을 매개로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그 첫 시도로 KBS2 수목드라마 <슈츠>를 함께 보기로 하자. - 기자 말

법률회사, 변호사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KBS 2TV 수목드라마 <슈츠>가 2주를 지나면서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올리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변호사 최강석(장동건 분)과 가짜 변호사 고연우(박형식 분) 두 콤비가 펼치는 법정 활약상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기사에서는 드라마 주인공 고연우(박형식 분)처럼 변호사를 사칭했을 때 어떤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지, 대한민국에서 변호사가 되려면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 살펴봤다(관련기사 : '변호사 행세' <슈츠> 박형식, 처벌 받지 않는 방법은). 

대학 4년, 로스쿨 3년... 변호사 되려면 최소 7년 필요

 KBS 2TV 수목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KBS 2TV 수목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KBS


드라마 속 고연우가 떳떳하게 변호사로 일하려면 대학교 4년, 로스쿨 3년 도합 7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에선 고연우가 가짜 변호사라는 사실이 탄로날 위기에 처했다. 전날 밤 고연우의 솔직한 모습에 반해 의뢰인이 된 래퍼 비와이 때문이다. 비와이는 무심결에 로펌 <강&함>의 대표 강하연(진희경 분)이 보는 앞에서 "아직 안 잘렸네, 가짜 변호사"라고, 내뱉고 만다.

당황한 고연우는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갔을까. 믿을 건 머리뿐이었다.

"변호사는 통산하여 6개월 이상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법률사무에 종사하거나 대한변호사협회의 연수를 마치지 아니하면 단독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거나 법무법인 등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실제 변호사법 21조의2에 나오는 조항이다. 자신이 6개월의 연수기간을 채우지 않아서 가짜라고 놀린다고 둘러대자, 강하연은 의심을 거두었다.

변호사가 동료 가짜 변호사를 모를 수 있을까

현실에서도 이럴 수 있을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가짜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느냐는 뜻이다. 

신분증을 뒤지지 않더라도, 한국이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법조계는 각종 '연줄'로 연결돼 있다. 이른바 학연, 지연, 혈연을 심하게 묻고 따진다. 

즉 판사, 검사, 변호사라면 고향이 어디이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으며, 언제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언제 사법연수원을 마쳤는지를 묻게 된다. 예컨대 아무개 판사, 아무개 변호사를 알고 싶을 때 마음만 먹으면 '○○년 A고 졸업, ○○년 B대 졸업, ○○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기'라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사법시험이 폐지된 이후에는 '○○년 A고 졸업, ○○년 B대 졸업, ○○년 C대 로스쿨 졸업, ○○회 변호사시험 합격'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여기에 따라 법조인 사이의 친분이 갈리고, 때로는 그것이 '서열'이나 '능력'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물론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다지만 변호사에게 '출신성분'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사시(사법시험)냐, 변시(변호사시험)냐를 따지기도 한다. 

이런 법조계 바닥에서, 가짜 변호사 고연우가 로펌 내에서 정체가 탄로나는 일은 시간문제다. 아마도 입사 당일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당해서 법정에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줄로 연결된 한국 법조계에서 고연우는 애초에 탄생 불가능한 존재였을까?  

드라마에 너무 정색을 하고 덤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슈츠>에서 비현실적인 장면은 더 있다. 법정 묘사 장면이다.

법정에서 판사 없이 당사자끼리 합의하고 돌아간다?

 KBS 2TV 수목 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KBS 2TV 수목 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KBS


드라마 3화와 4화에서는 재판이 열리기 전에 양쪽 당사자와 변호사가 법정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판 직전에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한 이들은 판사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유유히 법정을 빠져나간다. 이런 광경은 극히 이례적이고 더 나아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재판 전 법정에는 보통 여러 사건의 당사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한 팀만의 오붓한(?) 시간과 공간이 잘 마련되지 않는다. 보통 1개의 법정은 1개의 재판부가 하루를 쓰는데, 오전과 오후에 빡빡한 일정으로 수십 건의 사건을 배치한다. 예컨대 10분~30분 단위로 재판이 계속 열리게 된다. 따라서 법정에는 현재 재판중인 당사자 말고도 적지 않은 당사자와 변호사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번 열린 법정은 조용할 틈이 별로 없다.

또한, 하루 중에서 재판이 장시간 진행되지 않는 경우나 휴정기간에는 법정을 아예 열어놓지 않는다. 설사 법정을 열어놓는다 하더라도 법정질서를 중시하는 법원에서 수많은 사건 중에서 한 사건의 당사자들만을 위해 터놓고 이야기하도록 배려를 해주기 어렵다. 법정에선 다음 재판 준비를 위해 법정경위나 참여관, 실무관 등 직원들이 업무를 하기도 한다. 

법원 권위를 빌리기 위해서였을까. 변호사나 당사자들이 판사도 없는 법정에서 자기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다 합의에 이른다? 한국 법정에선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다.

법원 조정은 법정인 아닌 별도 조정실에서 진행

다만, 법원이 나서서 설득하고 조정하는 경우는 많다. 법원은 당사자들의 요청이 있는 경우, 이혼, 가족사건, 그 외에 판결보다 화해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사건을 조정절차로 넘긴다. 이때는 법정이 아닌 조정실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재판을 한다. 여기서는 1개의 사건만을 놓고 판사가 원고, 피고, 변호사가 모인 가운데 필요한 경우 조정위원까지 불러서 조정을 진행한다. 1시간 이상이 걸릴 때도 있다. 특히 이혼사건은 당사자간의 감정이 중요하고, 자녀 친권, 재산분할, 양육문제 등이 걸려 있기 때문에 조정 시도를 원칙으로 한다.  

'최선의 판결보다 최악의 조정이 낫다'는 말이 있다. 법원에서도 판결보다 조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참고로 조정으로 사건이 끝나면 법원은 소송비용(인지대)의 절반까지 환급해주기도 한다.

드라마처럼 민사소송이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 당사자끼리 합의가 이뤄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판에 나오지 않으면 그만일까. 그건 깔끔한 처리가 아니다. 법원으로서는 당사자끼리 합의를 했는지 알 수도 없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임의로 재판을 중단할 수가 없다. 이때는 소송을 낸 쪽(원고)이 상대방(피고)의 동의를 얻어서 소취하서를 제출하는 게 가장 좋다.

만일 취하를 하지 않으면 법원은 재판기일을 열 수밖에 없다. 원고와 피고가 1회 불출석하면 다음 기일을 정하고, 2회에도 불출석하면 소송을 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본다. 이것을 취하간주라고 한다. 이때부터 또 한 달이 지나야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다. 그러니까 그 전에 취하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변호사 선임해도, 법정에 나와야 할까

한 가지 더, 4화를 보자. 항공사 대표의 이혼소송에서 변호사와 당사자들이 전부 법정에 나와 있다. 실제 이혼 재판에선 이런 광경을 보기 힘들다. 드라마 속 부부처럼 양쪽 모두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변호사만 출석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끼리 대면하는 껄끄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변호사가 있으면 당사자는 재판에 나가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을까. 이혼재판,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어떻게 다를까. 이 이야기는 다음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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