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눈꺼풀>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눈꺼풀>

영화 <눈꺼풀> ⓒ 영화사 진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은커녕 귀에 거슬리는 대사조차 거의 없는 영화인데, 왜 '전체 관람가' 등급으로 지정 받지 못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유가족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 받고자 하는 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든 한 번쯤 만나야할 영화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라면 이 영화를 보기 힘들 것이다. 유가족에겐 너무나 '잔인한' 영화다. 유가족이라면 스크린을 쳐다보기 힘들 것이며, 본다면 첫 장면부터 자막이 올라가는 끝까지 내내 펑펑 울게 틀림없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핑크빛 여행용 캐리어로 시작해 칠흑 같이 어두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세월호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오멸 감독 스스로 '진혼곡' 같은 작품이라고 규정했지만, 위로 받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차라리 참사 직후 온 국민이 세월호 트라우마에 허덕이던 그즈음 이 영화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영화 속 배경과 음악, 소품과 대사 하나하나에 의미를 떠올리며 내남없이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두 번 연속 보고난 뒤에야 개봉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됐다. 애초 세월호 1주기 무렵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되짚어 보면, 그땐 박근혜 정권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온갖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다. 정권의 방조 속에 '일베의 폭식 투쟁'이 저질러지는가 하면, 민간인 학살의 대명사 '서북청년단'이 버젓이 결성식을 갖기도 했다. 

그렇듯 엄혹한 상황에서 이 영화가 무사할 리 없었다. 감독은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그가 만든 작품들 또한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지금은 그들의 야만적인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난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서야 비로소 스크린에 걸리게 된 것이다.

곧,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품이 제작되던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기력하고 참담했던 당시의 대한민국의 민낯이 영화 속에 다 담겨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비록 대놓고 말 꺼내지 못하고 수많은 상징을 동원해 대신 전하고 있지만,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그것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단박에 알아맞힐 수 있다.

 영화 <눈꺼풀>

영화 <눈꺼풀> ⓒ 영화사 진진


영화는 섬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는다. 섬이 유일한 공간적 배경이다 보니, OST를 제외하면 화면엔 대숲의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가득하다. 섬의 이름은 하필이면 미륵도. 사람이 저승에 가기 전 들르게 된다는 전설을 지닌 곳이니, 굳이 그렇게 배경을 설정한 이유를 알겠다. 애초 '진혼곡'임을 암시하려는 것이다.

섬에 사는 유일한 사람은 떡을 찧는 노인이다. 낚시꾼 등 섬을 찾아온 이들에게 한사코 떡을 먹고 가라며 제기에 정성스럽게 담아 대접한다. 다만, 장난기 가득한 앳된 학생들을 보자 버럭 화를 내며 '여기는 너희가 올 곳이 아니'라며 일갈한다. 미륵도의 주인인 노인이 저승길을 인도하는 사자이자,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영화 <눈꺼풀>

영화 <눈꺼풀> ⓒ 영화사 진진


세월호 아이들의 유품으로 여겨지는 주인 잃은 신발들을 수습해 신고 다니는 노인의 행동조차 큰 위로가 된다. 아이들의 뽀얀 피부를 연상케 하는, 마치 새 것 같은 여행용 캐리어를 클로즈업할 때는 순간 울컥하기도 한다. 지퍼를 열어 바닷물뿐인 여행용 캐리어 안을 쓰다듬듯 어루만지는 노인의 자상한 손을 통해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위로를 받는다.

섬에 사는 미물들도 영화의 주연이다. 떡을 찧을 때마다 곁에서 지켜보는 달팽이, 노인의 말상대가 돼주는 흑염소, 담벼락에 기대 망을 보는 붉은 지네, 집 곳곳을 활보하는 개미와 거미, 그리고 노인의 잠자리에까지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뱀에 이르기까지, 제주인 노인을 돕고 있다. 평소 끔찍이도 싫어하던 것들인데, 이 영화에서만큼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평온한 미륵도에 '진혼'을 훼방 놓는 쥐 한 마리가 들어온다. 고작 한 마리일 뿐이지만, 그가 온통 섬을 헤집으며 돌아다닌다. 바로 이 순간부터 미륵도는 2015년 즈음의 대한민국 같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영화 속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OST는 점점 더 각박해지며 듣기 거북한 소음이 된다.

제기 위 떡은 어느새 쥐의 차지가 되고, 떡 찧는 절구통을 놀이터 삼아 들락거린다. 방에까지 들어와 온갖 쓰레기로 어질러놓는가 하면, 선반 위 노인의 낡은 라디오까지 넘어뜨려 고장내버린다. 라디오는 노인이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전해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다.

급기야 쥐를 몰아내기 위해 노인은 버선발로 밖으로 나가 뒤쫓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절굿공이가 망가지고, 이내 분신과도 같은 절구통마저 부서져버린다. 노인은 더 이상 떡을 찧을 수 없게 되고, 제주로서의 역할은 마감된다. 이는 '진혼'의 수단이 사라짐을 의미하고, 낙담한 노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혼'의 섬 미륵도는 쥐의 찍찍거리는 소리로 뒤덮인다.

 영화 <눈꺼풀>

영화 <눈꺼풀> ⓒ 영화사 진진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초 사람들을 섬에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뿐이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철부지 아이에게 '너희가 올 곳이 아니라'며 호통치는 장면도 이 무렵이다. '떡이 싫다'는 친구의 말에, '그래도 먼 길 가려면 떡을 먹고 가야 한다'는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는 또 한 번 울컥하게 된다. 여기서 세월호 아이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영화에서 OST 만큼이나 자주 듣게 되는 소리가 있다. 바로 전화 벨 소리다. 걸어도 받지 않고, 걸려 와도 또한 받지 않으니, 벨 소리가 장면 하나를 통째로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의 상황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통'을 부러 꼬집으려는 것이다.

섬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때를 제외하고는 카메라의 시선이 늘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있다. 눈높이를 부러 낮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선지 시야는 조금 답답하지만 조금도 권위적이지 않다. 영화를 통해 뭔가를 보여주며 가르치려들지 않고, 다독이고 공감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내용은 물론, 촬영 방식에서도 '진혼'의 의미를 살린 셈이다.

굳이 옥에 티를 찾자면 이것이다. 러닝 타임이 85분으로 그다지 길지 않은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마지막 10분은 차라리 뺐다면 어땠을까 싶다.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지켜보는 게 너무나 괴로워서다. 부서진 절구통이 노인의 분신일진대, 그것을 쥐 소리 들끓는 우물에 내던지며 절규하는 모습과, 세월호 안에 잠들어있는 아이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장면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영화 <눈꺼풀>

영화 <눈꺼풀> ⓒ 영화사 진진


사족 하나. 우스갯소리지만, 쥐 한 마리가 섬 전체를 망가뜨린다는 설정은 영화의 행간을 읽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지만, 자꾸만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쳐 방해가 되는 구석도 없지 않다. 기실 영화 속 쥐가 벌이는 행태가 그의 죄목과 자꾸만 겹쳐 보이곤 한다. 아무튼 만약 그가 이 영화를 본다면 조금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이야기다.

눈꺼풀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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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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