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학창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소위 일진 무리와 친했던 지인은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 공부를 시작했고 당시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뚱뚱하고 까만 피부에 놀림을 당했지만 방학 때 살을 빼고 꾸미기 시작하면서 어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외모의 변화로 학교 내의 '실세'로 거듭난 것이다.

그랬었다. 대학을 오기 전 학창시절에는 언제나 우리 안에 미묘한 권력들이 생겨나곤 했다.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과 친하면 학교생활이 편했고 찍히면 괴로웠다. 일진과 친해서 편했다던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불편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약자로서 주로 당할만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체구가 왜소했고 여자아이들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축구를 하거나 격한 운동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술래잡기나 공기 등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 보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자기 계발 수업으로 단소를 배우고 오는 길이었다. 교실에 들어와 가방을 만져보니 끈적끈적한 액체가 가득했다. 물풀을 누군가 가방에 잔뜩 부어놓은 것 같았다. 교실 안에는 남자 아이 몇 명이 있었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웃었고 나는 누가 내 가방을 망가트렸는지 궁금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아이들이었기에 섣불리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한 여자 친구의 생일이었다. 메일로 초대를 받은 나는 선물을 사 들고 갔는데 남자 아이들이 면박을 주기 시작했다. "너는 왜 왔냐?", "누가 초대한 거지?" 등의 말들이 쏟아졌다. 내 얼굴은 빨개졌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 자리를 나와야 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친구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할 때가 많다. 마치 당시를 기억도 못 한다는 것처럼.

당해본 경험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이 당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싸움을 정말 잘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는 수시로 가출을 했고 아이들에게 돈을 뺏었다. 직접 하지도 않았다. 몇 명의 아이들을 선정하여 학교를 돌면서 돈을 걷어오게 했고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하면 때렸다.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그다음 날 얼굴에 멍이 들어 등교한 것을 보고 미안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가끔 학교에 나온 날에는 친구들을 때리며 놀곤 했다. 덩치가 좋은 아이들이 '샌드백'이라고 칭해지며 맞는 역할을 했다. 체구가 작은 친구들은 물을 떠다 준다거나 빵이나 우유 등을 사다가 날랐다. 완전 그 아이의 왕국이었다. 영악했던 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생님 귀에 들어가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최대한 피하면서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피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비겁하게도 맞서지 못하고 당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았으니까.

'흔한 이미지'와는 다른 학교 폭력 가해자들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 SBS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왜 당했고, 그 아이들은 왜 괴롭혔을까. 문득 든 생각에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SBS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바로 '학교폭력 회복 프로젝트'다. 지난 2013년에 방영된 <학교의 눈물 1부 - 일진과 빵셔틀>에서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방송에서 나온 것처럼,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고(故) 권승민 군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유서에 담긴 피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글러브에 목검, 라디오 선까지. 승민군의 집에서 피해가 계속 이어졌다. 가족들은 충격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충격으로 학교를 떠났고 우울증 약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가족 모두가 계속 고통받고 있었다.

얼마나 잔혹한 아이들이 이렇게 했을까. 하지만, 방송에 등장하는 가해 아이들의 모습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전교 9등을 하고 있는 아이, 선도부에 반장까지 하고 있는 아이. 온갖 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있는 아이 등. 어른들 앞에서는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들도 있었다. 방송에 보여준 학교폭력 가해자 영식이의 경우도 그랬다. 그는 영어를 잘해서 호주와 미국으로 유학을 갈 꿈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친구를 감금하고 폭행했다.

영식이의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상상조차 못해본 일이었다. 어머니는 졸업이라도 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학교에서는 '자퇴만이 최대의 배려'라고 말했다. 그렇게 영식이는 스스로 자퇴서에 서명을 했다.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한 책임에 대해 깨달았다. 영식이는 왜 그랬을까.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승자'가 없는 학교 폭력

 어머니 또한 품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영식이를 나무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영식이는 외로워졌고 피해자 학생에게 많이 의존하게 됐다. 그랬던 친구가 자신을 배신한다는 생각이 들자 폭력이 나왔다.

어머니 또한 품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영식이를 나무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영식이는 외로워졌고 피해자 학생에게 많이 의존하게 됐다. 그랬던 친구가 자신을 배신한다는 생각이 들자 폭력이 나왔다. ⓒ SBS


영식이는 학교 폭력 피해자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던 그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별다른 제재 없이 넘어갔고 어머니 또한 품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영식이를 나무라는 때가 많았다. 그렇게 영식이는 외로워졌고 피해자 학생에게 많이 의존하게 됐다. 그랬던 친구가 자신을 배신한다는 생각이 들자 폭력이 나왔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현상. 결국에는 아무런 승자도 없는 이 학교 폭력의 현실에서 아이들은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다. 방송에 따르면 피해자의 31%가 자살을 생각하고, 가해자의 44%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한다. 더 이상 피할 곳 없이 내몰리고, 또다시 피해자가 가해를 하는 식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단순히 아이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끝없이 경쟁만 시키는 학교의 모습과 어른들이 보여준 권력의 모습이 그렇게 만들었다. 게다가 학교 폭력을 마주한 어른들의 안일한 대처는 더욱 상처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SBS는 학교 폭력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과연, 그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었을까? 거기서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다큐발굴단>을 통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재밌는 다큐들, 이야깃거리가 많은 다큐들을 찾아보고 더욱 사람들이 많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학교폭력 학교의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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