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포스트>의 포스터.

영화 <더 포스트>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밀림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총알을 주고받던 베트남 전쟁의 한 장면을 보면서 먼 친척뻘 되는 삼촌을 생각했다. 언제나 낡은 군복을 입고 다녔던 그는 어린 우리에게 월남전의 영웅담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했다. 맨손으로 베트콩을 몇 명 때려잡았다고 자랑을 늘어놓던 삼촌에게서 '명분 없는 참전'이나 '패전', '고엽제' 따위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이겼던 전쟁이라 생각했다. 공산당과 맞서 싸웠다는 자부심을 고인이 되기 전까지 고집스럽게 지켰다. 그 삼촌이 살아 계셔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담은 영화 <더 포스트>를 봤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베트남 전쟁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진 것보다 감춰진 것들이 많다. 패전을 예상하면서도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을 휩쓸어도 정작 명분 없는 싸움에 참전을 결정한 유신정권에 참전의 정당성을 묻는 신문도 방송도 없었다. 베트남 밀림에서 머리 위에서 쏟아 붓는 미군의 정체불명의 액체가 고엽제이고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성물질이라는 것도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베트남 참전은 그 때도 성전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유신정권의 치적으로 남아 있다.

'펜타곤 페이퍼' 폭로, 우리 언론은 뭘 했나

영화 <더 포스트>는 트루먼에서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을 다룬다. 패전을 예상한 정부의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손에 쥔 쪽은 <뉴욕 타임스>였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히자,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고 기밀문서 유출자 색출에 나선다. 한발 늦게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한 <워싱턴 포스트>는 쓸 것인가, 덮을 것인가를 두고 언론사 안팎에서 논쟁한다. 증시 상장을 앞두고 투자자가 투자를 포기하면 언론사 존망을 기약할 수 없다는 이사들. 보도를 강행할 경우 법원 모독죄와 간첩죄로 기소될 위기에서 사주 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갈등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는 써 버리라'고 편집장에게 결단을 통보한다. 미국의 역사와 <워싱턴 포스트>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장면

영화 <더 포스트>의 한장면 ⓒ CGV 아트하우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가 발행인 캐서린을 설득하기 위해 했던 말은 영화 속 명대사에 속한다. 그런데 멋진 이 말, 우리 현대사로 옮겨놓고 보면 아픈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유신에 언론은 침묵했다. 80년 군사정권의 학살에도 언론은 침묵했다. 언론은 알아서 지는 길을 택했고, 국민들은 은폐된 진실로 인하여 한동안 광주를 손가락질 했다.

대학 시절 학살의 진실을 알려준 건 국내 언론이 아니라, 영화 <택시운전사>에서처럼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찍은 영상이었다. 몇 번이나 복사되어서 끊기고 '지직'거리길 반복했던 영상에서 곤봉과 대검에 죽어가는 광주의 진실을 만났다. 훗날 전두환-노태우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던 건 언론의 힘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광주에 들어왔던 외신기자, 그 진실을 유인물로 퍼날랐던 민초들이 힘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로 분한 토마스 크레취만 ⓒ 쇼박스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기사를 사전 검열하고, 유명 언론인조차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 받고 죽어 나가던 시절에 진실 은폐의 책임을 언론사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의견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런 탄압을 이겨내고 진실을 폭로하고자 해직되고 투옥된 언론인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탄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땡전 뉴스'나 반복했던 언론의 과거가 합리화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 사주 캐서린.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서 은폐된 진실의 폭로를 택했다. 군부 독재의 만행에 눈 감았던 언론들. <더 포스트> 캐서린의 결단을 보고도 '우리나라하고는 다르잖아'라고 말한다면 기레기 오명은 영영 벗지 못할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1면에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했는데, 우리는 닉슨 딸 결혼 기사나 건졌네.'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 벤의 자조 섞인 한탄처럼, 우리 언론들은 탄압이 두려워 진실을 은폐했다기보다 정권이 던져주는 사탕에 눈이 먼 측면도 없지 않다. 정권과 기업이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았던 정경유착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고약한 것이 권언유착의 병폐다. 대통령과 언론사 사주가 술자리에서 '나는 낮의 대통령. 너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우던 건 오래된 적폐라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 때 해경 비판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이승만 특집 다큐를 지시하며 노골적으로 정권에 부역행위를 한 현직 언론인도 한둘이 아니다. MBC, KBS 등 공영방송조차도 국민들에게서 멀어진 건 진실보다 대통령 의중에 포커스를 맞춰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해냈던 <워싱턴 포스트>와 비견되는 역사도 있다. 대기업 부회장을 불러서 야단 치고, 온갖 회유와 압박 속에서도 '태블릿 PC' 진실만을 줄기차게 제기한 방송이 있었다. K스포츠 재단 배후 비선실세 최순실의 폭로에 앞장 섰던 신문도 있었다. 국정농단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는 방송과 기사를 앞에 놓고 국민들은 경악했고 분노했고, 분노의 촛불이 광화문을 메웠다. 훗날 영화로 다시 제작해도 될 만한 내용을 2016-2017년 일부 언론과 국민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부끄러운 역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 <더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

영화 <더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 ⓒ CGV 아트하우스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은폐보다는 내보이는 게 언론이다

'언론은 통치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법원의 판결문은 오히려 평범하다. 언론이 통치자보다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상식에 가깝다. 그러나 40여 년 전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주와 언론사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40여 년 지난 대한민국, 여전히 언론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을 섬기는 언론이 부기지수다.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물론이고요.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혈맹입니다.' MBC <스트레이트>가 폭로한, 모 신문사 간부가 삼성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보낸 문자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BBC 기자가 한국 언론에 "내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달라"고 주문하는 일도 있었다.

 MBC <스트레이트> 방송 중 공개된 문자 내용.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MBC <스트레이트> 방송 중 공개된 문자 내용.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 MBC


 '문재인 대통령 공산주의자' 관련 BBC 오역 논란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BBC 서울특파원 로라 비커를 BBC 뉴스 코리아에서 인터뷰 했다. 이를 자체 제작한 영상이 페이스북에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산주의자' 관련 BBC 오역 논란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BBC 서울특파원 로라 비커를 BBC 뉴스 코리아에서 인터뷰 했다. 이를 자체 제작한 영상이 페이스북에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 BBC 뉴스 코리아 페이스북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는 울림이 큰 영화다. 특히 발행인 캐서린의 고뇌가 압도적이다. 차분하게 그러나 뚜렷하게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는 그의 언변은 매혹적이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라고 말했어요.' 죽은 남편의 말을 빌려 언론관을 이야기 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 써나가는 것 그게 우리의 일이죠.'

언론인들. 언론을 공부하는 사람들. 모두 보기를 권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문을 매체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출입정지 1년의 중징계를 내린 법원 출입기자단. '언론은 통치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30년 전 미국 법원의 판결을 되짚어 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판결문 공개는 개인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고? 그건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은폐하는 것보다는 쓰고 내보이는 게 언론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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