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림 선수와 가이드 고운소리 알파인스키 양재림 선수(뒤)가 13일 오전 강원도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복합 시각장애 경기에 출전해 가이드 고운소리와 함께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양재림 선수와 가이드 고운소리 알파인스키 양재림 선수(뒤)가 13일 오전 강원도 정선 알파인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복합 시각장애 경기에 출전해 가이드 고운소리와 함께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이희훈


"아..."

관중석에서 탄식이 터졌다. 선수와 가이드러너가 순차적으로 출발한 지 1분 20초께였다.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코스를 이탈한 선수가 고개를 숙였다. 하늘을 한 차례 올려다 본 그는 자책하듯, 폴대를 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주황색 옷을 입고 앞서가던 가이드러너가 뒤를 돌아보면서 스키를 멈췄다. 양재림(29) 선수와 그의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23)씨였다.

13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스키 경기장. 양재림 선수와 고운소리씨의 도전은 안타깝게 끝났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슈퍼복합 시각장애 경기에 나선 이들은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경기를 마쳐야 했다. 다른 선수들의 활강에 방해되지 않도록 코스를 벗어난 그들은 공동취재구역으로 향하기 전 서로를 안아주었다.

"잘 했어, 내일 준비 잘 하자" 서로 격려한 '동반자'

질주하는 시각장애 양재림 선수 알파인스키 양재림 선수가 13일 오전 강원도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복합 시각장애 경기에 출전해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질주하는 시각장애 양재림 선수 알파인스키 양재림 선수가 13일 오전 강원도 정선 알파인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복합 시각장애 경기에 출전해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이희훈


양 선수는 태어난 직후 망막 병증으로 왼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10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오른쪽 눈은 조금이나마 시력을 회복했지만 그마저도 비장애인의 10분의 1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앞을 가이드 러너인 고운소리씨가 이끈다. 국가대표 상비군이기도 했던 그는 2015년부터 3년 가까이 양 선수와 함께 달리고 있다. 가이드 러너가 선수의 눈이 돼야 하는 '동반자'인만큼 당연히 호흡이 중요하다. 두 사람은 무선 헤드셋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온다. 양 선수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신호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형 변화도 많고 설질(눈 상태)에 따라 타는 방법도 다르고, 특히 턴(회전) 타이밍이 중요하니깐 이런 걸 '하나·둘·셋'이라고 짧은 신호를 (소리가) 저에게 전달해요. 거기에 맞춰서 제가 리듬을 타고 간격을 조절하고. '너무 빠르다' 싶으면 '빼기'라고 외쳐서 간격을 줄이고."

이번 경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초반 두 사람 간 간격이 벌어지자, 고운소리씨가 뒤를 돌아보면서 간격을 조절했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면서 같은 모습으로 기문(Gate) 옆을 곡선을 그리면서 활강했다. 그러나 급경사 지역을 통과하면서 양 선수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코스를 이탈했다.

두 사람은 경기 후 기자와 만나 "잘 했다. 내일 준비 잘 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고 전했다. 고운소리씨는 "우리 둘 다 (실격 전) 느낌이 좋았다. 실격했지만 언니가 너무 잘 따라와줬다"라면서 "멈추고 나서 '잘했다. 내일 준비 잘하자'고 했고, 언니도 그렇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기 탓을 했다.

"(실격된 코스가) 코치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체크 포인트였다. (경사 탓에) 기문 쪽에 도착해야 다음 기문이 보이는  코스라서 간격 조절이나 라인 설정을 잘 해야 했는데 제가 먼저 (코스를) 넘어오다 보니 (언니의 시야에서) 제가 사라져서 라인 설정이 좀 더 밖으로 된 것 같다. 저도 간격을 조절했어야 했는데..."

양재림 선수와 가이드 고운소리 알파인스키 양재림 선수(왼쪽)가 13일 오전 강원도 정선 알파인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복합 시각장애 경기에 출전해 가이드 고운소리와 함께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양재림 선수와 가이드 고운소리 알파인스키 양재림 선수(왼쪽)가 13일 오전 강원도 정선 알파인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복합 시각장애 경기에 출전해 가이드 고운소리와 함께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이희훈


양 선수도 스스로를 더 탓했다. 코치가 경기 종료 후 "라인 잘 자르고 코스도 잘 탔어"라고 위로했을 때도 고개를 숙였고, 기자들과 만났을 때도 "실격되기 전까진 제가 느끼기에도 라인이나 감각도 그렇고 속도도 빨랐던 것 같다. 끝까지 완주했으면 결과가 좋았을 것 같은데"라고 자책했다.

이어, "일요일(11일) 경기에 이어, 두 번째 경기 결과도 안 좋아서 많이 반성이 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구나' 싶다"라면서 "다음 경기 일정이 앞당겨져서 오늘 하루 정도 시간이 있는데 오늘 하루라도 연습 잘 하고 생각 많이 해서 내일 경기는 완주하고 정말 만족할 만 한 경기를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비 예보 등으로 종전 18일에서 14일로 앞당겨진 여자 대회전 시각장애 경기에서의 선전을 약속한 것이다. 실제로 양 선수는 알파인 스키 대회전·회전 종목이 주종목이다. 지난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 땐 대회전 종목에서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기온이 상승한 탓에 경기장의 눈 상태를 우려하는 질문엔 고운소리씨가 "연습을 많이 했다"고 답했다. 그는 "그나마 오전엔 날씨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데 오후엔 눈이 많이 녹아서 무거워지는 편"이라며 "오후에 따로 훈련하면서 녹은 눈을 많이 연습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거다.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알파인 스키 양재림 고운소리 시각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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