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귀화선수이기도한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여전히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였다.

국가대표 귀화선수이기도한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여전히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였다. ⓒ 서울 삼성


상승세의 서울 삼성 썬더스가 갈 길 바쁜 전주 KCC 이지스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11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올 시즌 삼성-KCC의 마지막 승부에서 삼성이 접전 끝에 88-83으로 승리했다. 삼성은 3연승의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4강 직행에 갈 길 바쁜 KCC의 발목을 잡았다.

KCC는 이날 패배로 서울 SK에 공동 2위를 허용해 향후 일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주 득점원 안드레 에밋(36·191cm)이 사타구니 부상으로 향후 출전이 불투명한 가운데 어려운 행보가 예상된다. 돌아온 전태풍(38·178cm)이 노장투혼을 벌이고 있으나 SK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다잡았던 4강 직행 티켓도 놓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삼성의 잘 지은 외국인 선수 농사

리카르도 라틀리프(29·199.2cm)는 국가대표팀에 귀화선수로 합류하며 이제는 삼성만의 라틀리프가 아닌 모든 국내 팬들의 라틀리프(한국명 라건아)가 됐다. 울산 현대모비스 시절부터 입증됐다시피 그의 최대 장점은 꾸준하고 기복 없는 플레이다.

이를 입증하듯 이날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5득점 19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변함없는 존재감을 보였다. 마키스 커밍스(30·193cm) 역시 23득점 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뒤를 든든히 받쳤다.

이상민 감독은 지난 시즌 마이클 크레익(27·188.4cm)이 언더사이즈 빅맨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줬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커밍스를 낙점했다. 초반에는 기우도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선택이었다. 2~3번 스윙맨 유형으로 분류되지만 웨이트도 좋은 편인지라 언더사이즈 빅맨 역할도 어느 정도 해주고 있다. 그런 관계로 올 시즌 삼성은 용병 걱정이 전혀 필요 없는 팀이 되었다.

리틀리프는 하승진(33·221cm), 찰스 로드(33·200.1cm)의 '트윈타워'에 초반 고전했다. 골밑슛을 시도하다 번번이 막혔다. 아무래도 혼자 2m가 넘는 장신자 둘과 골밑에서 경쟁하기에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승진과 로드는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나 지난 KT전을 통해 전태풍이 복귀하면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역시 라틀리프는 영리했다. 무리해서 골밑에서 몸싸움을 벌이기보다 밖으로 나와 슈팅 위주로 패턴을 바꿨다. 미들슛이 연이어 들어가자 하승진, 로드 콤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라틀리프는 여기에 속공시 함께 달려주는 플레이를 통해 골밑득점을 노리는 한편 특유의 넓은 시야로 빈 공간의 동료들에게 찬스를 연결해줬다. 파워, 테크닉, 스피드에 이타적인 마인드까지 갖추고 있는 라틀리프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낙구지점을 예측하고 빈 공간을 찾아들어가 공격 리바운드 후 뱅크샷으로 편하게 득점을 올리는 장면에서는 최근 몇 시즌간 오세근(31·200cm)이 그렇듯 이른바 '힘을 뺀 농구'에도 제대로 눈을 떠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최근 삼성은 외국인 선수 두 명이 한꺼번에 최상급으로 자리를 잡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라틀리프야 검증된 최고 외국인 선수지만 커밍스까지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이다. 돌파면 돌파, 슛이면 슛 내외곽을 넘나들며 전천후 스윙맨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골밑에서 자신보다 큰 로드를 맞아 어느 정도 몸으로 버티어 내는가 하면 한쪽 발을 슬쩍 빼버리며 중심을 흔드는 등 수비도 영리하게 잘 해주고 있다. 리바운드시에도 탄력을 활용해 과감하게 하승진, 로드와 경합하는 등 적극성이 돋보였다. 드리블을 치면서 돌파할 듯 하다가 깔끔한 미들슛을 적중시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삼성은 팀의 기둥 라틀리프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함께 할때는 '원투펀치'로 쓰임새를 넓혀가고 있다.

김동욱(37·194cm)은 노련한 플레이로 베테랑의 진가를 뽐냈다. 속공시 상대수비가 파울을 할 줄 예상하고 미리 슛팅자세를 취하는가하면 가벼운 훼이크동작으로 송교창의 파울을 유도해 자유투를 얻어냈다.

운동 능력 좋고 파이팅 넘치는 젊은 후배 송교창, 정희재를 앞에 두고 능구렁이처럼 플레이했다. 흡사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 서태웅을 처음 만났을 당시 한수 가르쳐주는 윤대협을 보는 듯했다.

'포인트 포워드'라는 평가에 어울리듯 중앙에서 공을 잡고 볼 흐름을 리드하는가 하면, 빈틈을 노려 드라이브인을 시도하기도 했다. 운동량과 스피드에서 앞섬에도 불구하고 송교창이 어려운 수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로테이션 부재 약점 드러낸 KCC

앞서 언급한 대로 KCC는 에밋이 사타구니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해 외국인 선수 한 명만으로 경기를 끌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에 절정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삼성과 끝까지 대등한 접전을 이어갔다. 지난 경기부터 복귀한 전태풍의 존재 때문이다. 이른바 '전태풍 효과'다.

전태풍의 최대 장점은 볼 간수 능력이다. 많은 나이로 인해 예전만큼의 폭발적 운동능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빼어난 드리블 능력을 바탕으로 볼 간수 능력 하나만큼은 여전히 정상급이다. 앞선에서 상대가 강하게 압박하면 당황했던 KCC였던 점을 감안했을 때 전태풍 복귀가 천군만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에 개인 득점력도 갖추고 있는지라 이른바 '버리는 수비'가 불가능하다. 노련한 전태풍은 이런 부분을 이용해 찬스를 잘 봐주고 있다. 적절할 때 동료들의 특성에 맞게 공을 넣어주면서 하승진, 로드의 컨디션이 부쩍 좋아졌다.

전태풍은 캡틴 기질이 강하다. 올 시즌 KCC 양날의 검인 이른바 '에밋GO 전략'도 전태풍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주득점원이라고 해도 무리한 개인 플레이를 하면 대놓고 지적을 하던가 패스 횟수를 줄여버린다. 코트 위 또 다른 감독 역할도 하고 있다.

KCC는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에게 체력전에서 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외국인 선수 한 명이 빠진 영향도 있었겠지만 활발한 로테이션을 가져간 삼성과 달리 그런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도 컸다. 사실 체력적인 부분만 따진다면 전날 경기를 가졌던 삼성이 더 불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에밋이 빠진 부분은 치명적이었으나 이런 상황을 대비해 긴 레이스 동안 김민구, 정희재, 김지후, 최승욱은 물론 유망한 신인들의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야했다. 평소에 거의 나오지 않다가 갑자기 중요한 순간에 투입시키기에는 감독도, 선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희재의 막판 실수에는 이러한 부분도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 신명호(35·183cm)는 출전시간이 늘자 예전의 빼어났던 수비솜씨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비록 심각한 공격력 부재는 여전했으나 앞선에서의 활발한 수비로 KCC의 앞선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자신의 마크맨을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것을 비롯 상대의 패싱라인을 미리 읽고 쳐내는 수비가 일품이었다.

베테랑들은 베테랑대로 쉬게 해주고, 젊은 선수들에게는 자신감과 감각을 끌어올려주기 위해서라도 로테이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KCC의 아쉬운 뒷면이 드러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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