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 국가대표 공식 은퇴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홍콩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린 김주성의 국가대표 공식은퇴식에서 김주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주성, 국가대표 공식 은퇴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홍콩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린 김주성의 국가대표 공식은퇴식에서 김주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한국농구의 전설' 김주성(39·원주 DB)의 '국가대표 은퇴식'이 열렸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2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린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 홍콩과의 경기 하프타임에서 김주성의 국가대표 은퇴식을 거행했다. 사실상 협회 차원에서 특정 선수의 대표팀 은퇴식을 실시한 것은 사상 최초다.

김주성은 프로농구뿐 아니라 국가대표로서도 한국농구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풋풋한 대학 초년생 시절이던 1998년 그리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현 농구월드컵)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까지 무려 16년간이나 국가대표로서 활약했다. FIBA 농구 월드컵 본선 2회(1998, 2014), 아시안게임 5회(1998~2014), FIBA 아시아선수권 6회(2001~2013) 출전에 이르는 화려한 경력에서 보듯 김주성의 농구인생이 곧 한국 농구대표팀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주성의 태극마크 경력, 가장 빛나던 순간들

김주성의 태극마크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홈에서 열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획득한 장면일 것이다. 한국남자농구 역사상 2개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가진 선수는 오직 김주성뿐이다. 12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금메달을 모두 홈팬들 앞에서 들어올릴수 있었다는 것도 선수로서 큰 축복이 아닐수 없다.

2002 아시안게임은 김주성이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빅맨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첫 대회이기도 하다. 98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등을 통하여 경험을 쌓기는 했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대학생 신분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출전시간을 얻지는 못했다면, 2002년에는 명실상부한 주전 빅맨으로서 서장훈과 함께 든든하게 골밑을 지키며 한국이 정상에 오르는 데 큰 기여를 해낸 수훈갑이었다.

당시 서장훈-김주성의 더블포스트는 한국농구대표팀에서 205cm 이상의 장신 듀오가 나란히 주전으로 가동된 사상 첫 사례이기도 했다. 그동안 국제대회때마다 마땅한 골밑 파트너가 없이 혼자 고군분투해야했던 서장훈은 뛰어난 활동량과 블록슛 능력을 갖춘 김주성이 가세하며 리바운드-수비 부담을 덜고 장기인 공격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2002년만 놓고 봤을 때 이들의 조합은 지금까지도 한국농구 역대 최고의 더블포스트로 회자된다.

중국과의 결승전은 한국농구 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명승부로 기억된다. 당시 이미 아시아 최고의 센터로 불리우며 NBA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던 야오밍을 상대로 김주성과 서장훈은 그야말로 육탄방어에 가까운 처절한 수비를 펼치며 몸을 던졌다. 두 선수 모두 일찌김치 4반칙에 몰리는 위기를 겪었으나 노련한 파울관리로 종료휘슬이 울릴때까지 코트를 지켰다. 김주성은 야오밍을 눈앞에 두고 과감한 원핸드 덩크슛을 성공시키며 기싸움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은 연장접전 끝에 중국을 물리치고 무려 20년 만의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농구는 한동안 기나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내부적으로는 '농구대잔치 세대'가 세월의 흐름에 밀려 노쇠하면서 세대교체의 시기에 접어들었고, 외부적으로는 중동세의 성장과 중국의 반격 속에 아시아 농구계의 판도가 급격히 변화하며 한국농구는 위기를 맞이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김주성이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했던 16년이라는 기간 중 대부분은 바로 한국농구의 암흑기와 겹친다. 2005년 FIBA 아시아선수권(역대 첫 4위), 2006 도하 아시안게임(5위, 사상 첫 노메달), 2009년 FIBA 아시아선수권(7위) 등 한국농구가 해당 대회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잇달아 경신할때마다 한국농구의 간판빅맨이던 김주성 역시 그 불명예스러운의 역사의 한 복판에서 함께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에서 그가 '대체불가' 선수였던 이유

김주성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까지 국제대회에서 제대로 된 골밑 파트너와 함께 호흡을 맞춘 경우는 거의 없다. 서장훈이 2006년 도하 이시안게임을 끝으로 '프로무대에서 센터 본능을 잃었다.'는 비판과 함께 당시 최부영 대표팀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다소 이른 나이에 대표팀을 다소 불명예스럽게 은퇴했다. 한국농구 역대 최장신센터로 기대를 모았던 하승진(전주 KCC)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유리몸' 기질과 부족한 기본기로 '국내용'이라는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프로농구 동부-LG '비켜' 26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원주 동부와 창원 LG의 경기에서 동부 김주성이 수비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프로농구 동부-LG '비켜' 지난 2015년 2월 26일 오후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원주 동부와 창원 LG의 경기에서 동부 김주성이 수비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0년대까지 서장훈이 그러했듯, 김주성 홀로 골밑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소년가장' 신세를 감수해야 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야 오세근(안양 KGC), 김종규(창원 LG), 이승준(은퇴), 이종현(울산 현대모비스) 등 한국농구의 빅맨 인재풀이 넓어지며 겨우 '나홀로 노예' 신세에서 해방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김주성은 대표팀에서 대체불가한 자원으로 꼽혔다.

어쩌면 '국가대표 김주성'이 진정으로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도, 그의 화려한 개인기록이나 수상 실적보다도 한국농구가 어렵고 힘든 시기에 묵묵히 대표팀을 위한 헌신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프로 선수 입장에서 대표팀은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만 먹는 자리다. 이로 인하여 잘 나가는 프로 선수들이 대표팀을 기피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미 프로무대에서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김주성 입장에서는 매년 비시즌에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소득은 별로 없는 대표팀 합류를 솔직히 꺼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주성은 30대 중반으로 어느덧 노장의 반열에 이른 시점에도 국가의 부름이 있을 때마다 기꺼이 응했다.

김주성은 16년동안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던 원동력을 '애국심'이라고 정의하며 "부상과 체력 난조로 더 이상 뛰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지만, 태극마크의 중요성을 알기에 대표팀의 부름을 받을때마다 다시 시작할수 있었다. 오직 태극마크를 달아본 선수들만 느낄 있는 감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프로무대에서의 김주성의 플레이스타일이나 경기매너를 비판하는 이들조차 '국가대표에서 김주성만큼은 결코 욕할수 없다"고 인정하는 이유다.

화려했던 김주성의 시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김주성, 국가대표 공식 은퇴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홍콩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린 김주성의 국가대표 공식은퇴식에서 김주성이 꽃다발을 받고 있다.

▲ 김주성, 국가대표 공식 은퇴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홍콩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린 김주성의 국가대표 공식은퇴식에서 김주성이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은 대표팀에서도 특유의 이타적인 플레이에 집중했다. 과거 대표팀의 에이스로 꼽혔던 허재나 서장훈같은 선수들에 비하여 김주성이 득점-리바운드같이 눈에 보이는 1차 스탯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과소평가받기도 하지만, 대표팀 경기마다 김주성이 코트 위의 리더이나 수비전술의 핵심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왜 역대 감독들이 그를 대표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로 거론하는지 알 수 있다.

김주성의 국가대표팀 은퇴무대이기도 했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김주성에게도, 한국농구에게도 마지막 선물같은 대회였다. 아시안게임에 앞서 치러진 농구월드컵 본선에서 5전 전패로 최하위를 기록하며 사기가 떨어진 아시안게임에서도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모습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어느덧 대표팀 최고참급이 된 김주성은 오세근-김종규 등 후배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많은 시간을 뛰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수비력과 농구센스로 팀에 기여하며 한국이 12년 만의 금메달을 되찾는 데 함께 했다.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우승이 확정된 이후 가장 먼저 코트에 뛰어들어 후배 선수들과 얼싸안고 포효하는 모습은 12년 전 막내 시절이던 부산 아시안게임과 묘한 데자뷰를 이루며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우승 확정 이후 선수들은 국가대표 은퇴를 앞둔 문태종과 김주성같은 고참 선수들에게 특별한 '헹가래'까지 선물하며 파란만장했던 국가대표팀에서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선수들도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김주성처럼 프로무대는 물론이고 대표팀에서까지 '시작과 끝'이 한결같이 화려했던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시기를 헤쳐오면서도 16년간 한결같이 국가대표를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해온 전설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기도 하다. 김주성은 이제 태극마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만 그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앞으로도 국가대표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의 한 페이지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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