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별을 사랑했으며 지구가 돈다는 걸 믿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수많은 명작들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 두 사람은 1564년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생전 만난 적도 없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저 세상에서 만났다면 어떨까? 25일까지 공연하는 창작 뮤지컬 <최후진술>은 유명한 두 인물이 사후세계에서 만났다는 독특하면서도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꿔봤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의 최후진술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의 유성재 배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MJstarfish 공식 유튜브 영상 캡처).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의 유성재 배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MJstarfish 공식 유튜브 영상 캡처). ⓒ MJStarfish


극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시작한다. 마지막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오가 "태양이 돈다"고 최후 진술하는 장면이다. 갈릴레오는 본인이 저술한 <대화>에서 은근히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것을 교회에 들켰고 결국 마지막 최후진술에서 죄를 참회하며 천동설을 지지하는 속편을 쓰겠다는 맹세를 해 사형을 면한다.

그런데 극의 후반부, 사후 세계에서 갈렐레오의 최후진술이 한 번 더 나온다. 두 최후진술의 내용은 '천동설 지지'에서 '지동설 지지'로 변화한다. 최후진술이 변화하는 과정을 풀어내기 위해 '죽음 후의 여행'이라는 가상세계가 설정됐고 갈릴레오는 그 곳에서 인생의 마무리를 한다.

아마 이 여행 자체가 갈릴레오의 상상이자 무의식 자체일 것이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순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장 강렬했던 일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갈릴레오에게 그것은 지동설이라는 진실을 부정했던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스스로에게 두 번째 최후진술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윌리엄 셰익스피어, 시원하지 않은 만남

"갈릴레오 갈릴레이! 웬일이야.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너 죽기만을 기다렸어."

이 노래는 뮤지컬 <최후진술>의 넘버 중 '넘버원팬 '의 일부다. 갈릴레오는 죽은 후 사후세계의 가이드인 셰익스피어와 마주친다. 두 사람은 서로 열렬한 팬이었음을 밝히며 "잘 죽었다"고 유쾌하게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죽어서도 갈릴레오는 별을 보느라 여념이 없고 셰익스피어는 색다른 글 소재를 찾아 쓰는 데 빠져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성격이 잘 드러날 뿐만 아니라 '저 사람은 죽어서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도 충족시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그치고 만다.

극은 무궁무진하게 활용 가능할 것 같은 두 사람을 평면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과학과 문학의 1인자가 만났는데 서로 팬이었다고만 할 뿐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각 분야에 대한 교류도 없다. 또 가장 큰 문제는 셰익스피어의 비중이다. 극중에서 셰익스피어는 정말 '가이드'이기만 하다. 셰익스피어 역이 다른 누군가로 대체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 정도다. 단지 64년생이라는 게 맞아떨어져서 데려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셰익스피어를 맡은 배우가 코페르니쿠스, 프톨레마이오스, 밀턴, 강도, 프레디 등 다양한 역할을 함께 소화하는 데 이로 인해 몰입도가 떨어진다. 갈릴레오라는 한 인물의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회상될 수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바람에 이야기를 전체를 끌고 가지 못한다. 무책임하게 다양한 인물들이 나왔다 들어가기만 할 뿐이다.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의 만남이 극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만큼 둘 사이의 진솔한 이야기를 쌓아가면서 2인극의 장점을 살렸어도 좋았을 듯싶다.

유쾌·진지 모두 잡은 뮤지컬 <최후진술>의 노래들

뮤지컬 <최후진술>에서 가장 매력적인 요소를 뽑으라면 단연 중독적인 멜로디의 유쾌하고 진솔한 노래들이다. 그 중 갈릴레오의 최후진술을 대변하는 노래인 '최후진술'과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극의 처음과 끝을 책임진다. 두 노래를 통해 진실을 향해가는 갈릴레오의 고뇌와 깨우침이 절절하게 나타난다. 특히 "태양이 돈다"에서 "지구는 돈다"로 가사가 바뀔 때 갈릴레오가 최후진술을 향해 온 여정이 마침내 끝났음을 알리면서 큰 희열을 안겨준다.

죽음, 과학, 재판 등 어찌보면 무거울 수 있는 극의 내용을 유쾌하게 끌어간 데에는 귀여운 안무와 노래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중 대표적으로 활기찬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레디', 모든 순간 글을 써서 행복하다는 셰익스피어의 진심이 담긴 'I'm dancer', 갈릴레오와 밀턴의 귀여운 호흡이 돋보이는 'paradiso!' 등이 있다.

별이 쏟아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공간

천국이나 지옥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죽은 후의 세계를 떠올려 본적은? 갈릴레오의 사후세계는 별이 가득한 세상이다. 수많은 별들과 그것들을 관찰할 직접 개발한 망원경. 무대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조명에 많은 신경을 쓴 듯했다.

무대 2층 벽과 위 쪽에 작은 조명들을 달아 별이 수놓아진 밤하늘을 표현했고 이 조명들을 모아 큰 별을 여러 개 만들었다. 갈릴레오가 노래를 부를 때 이 별들에 차례로 조명이 들어오는데 웅장하고 멋있다기보다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극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져 아름답다.

 뮤지컬 <최후진술> 커튼콜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의 이승현,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의 양지원 배우가 마주보고 있다.

뮤지컬 <최후진술> 커튼콜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의 이승현,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의 양지원 배우가 마주보고 있다. ⓒ 채효원


뮤지컬 <최후진술>은 삶과 죽음, 인간의 고뇌와 생애를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윌리엄 셰익스피어 두 인물의 만남을 통해 풀어냈고 그 중심에 '천동설' '지동설'이라는 큰 난제가 있었다. '사람은 죽어서 어떻게 될까'라는 흔하면서도 흥미있는 소재를 채택해 이를 배우들의 연기, 노래, 안무 등을 통해 즐겁지만 진지하게 표현해냈다. 곱씹을수록 매력적인 극임은 분명하다.

허나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극을 보는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극은 처음 보는 사람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뮤지컬 <최후진술>은 이 점에서 불친절한 공연이었다. 2인극인데 나오는 등장인물은 5명이 넘는다. 새로운 인물들이 휙휙 지나가는데 관객이 그 모든 인물과 정황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관객들이 극의 내용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분명히 감동적인 메시지와 재미 모두를 담고 있는 극임에도 극장을 나오면 웃긴 장면만 떠오르는 것이다.

진지함과 재미 사이에서 무게를 맞추는 일은 공연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공연을 본 날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의 이승현, 셰익스피어 역의 양지원 배우는 이 점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공연 중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의 애드리브가 늘어났다. 애드리브가 많아지면서 극을 진행하는 배우들이 웃는 경우도 늘었는데, 그 때마다 극에 대한 몰입도가 확 떨어졌다.

특히 관객 참여 이벤트 부분이 과했는데, 뮤지컬 <최후진술>은 공연 때마다 지목된 관객 한 명이 다음 장면의 두 가지 버전 중 하나를 선택해 극을 이어나간다. 배우들이 관객에게 자신을 뽑아달라고 말하고 관객이 선택하면 해당 배우가 맡은 버전의 장면이 공연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이 계속 "나를 뽑지!" "내가 윙크했는데!"라는 대사를 첨가했고 그 애드리브는 커튼콜 넘버까지 이어졌다. 적절한 애드리브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지나치면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배우 자체가 보이기 마련이다.

뮤지컬 <최후진술>은 독특한 소재와 내용,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등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풍부한 재료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내는과정이 많이 아쉬운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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