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불안한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널은 23일(한국 시간) 영국 런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1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32강전 2차전에서 스웨덴 구단 외스테르순드 FK에 1-2로 패하는 망신을 당했다.

이미 1차전 원정에서 3-0으로 이겼던 아스널은 이날 패배에도 불구하고 골득실에서 4-2로 앞서 16강에는 올랐지만, 안방에서 몇 수 아래로 꼽혔던 외스테르순드에게 전반에만 2골을 내주며 혼쭐이 났다. 후반 초반 코라시냑의 만회골로 겨우 한숨을 돌렸을 뿐 아스널은 종료휘슬이 울릴 때까지 외스테르순드의 강한 저항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무리 로테이션을 가동했다고 해도 선수단 전체의 몸값을 다 합쳐도 아스널 주전 1~2명의 개인 몸값에도 못 미치는 외스테리순드를 상대로 보여준 졸전은 홈팬들의 야유를 받기에 충분했다. 경기후 현지 언론에서도 아스널의 경기력에 혹평이 쏟아졌다. 16강에는 올랐지만 이런 경기력이라면 유로파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유로파리그에서 '약체' 팀에 발목 잡힌 아스널, EPL서도 부진

 첼시, 아스널 3-1로 꺾고 EPL 1위 질주(2017년 2월 4일)

지난 2017년 2월 4일, 첼시에 3-1로 패배한 당시 아스널 선수들의 모습. ⓒ 연합뉴스


아스널에게 현재 유로파리그가 절실한 상황이다. 아스널은 올해도 리그 우승에서 사실상 멀어졌다. 시즌의 2/3 이상을 소화한 지금 아스널은 13승 6무 8패(승점 45)로 리그 6위에 머물고 있다. 1위 맨체스터 시티와는 무려 27점차이고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는 4위 첼시와도 8점차다. 심지어 아스널의 숙적인 북런던더비 라이벌인 5위 토트넘에도 7점차로 뒤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아스널은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4위권 진입조차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아스널은 2004년 전설의 무패우승 이후 더 이상 EPL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2016년까지는 꾸준히 4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며 챔피언스리그 본선만큼은 개근하고 있다는게 위안이었지만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이 공식마저 무너졌다. 아스널은 지난 시즌 리버풀에 승점 1점차로 밀려 5위(승점 75)에 그치며 벵거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놓쳤다. FA컵 역대 최다 우승(통산 13회, 벵거 감독 부임 이후 7회)으로 마지막 자존심은 지켰지만 리그만 놓고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였다.

벵거 감독에 대한 교체 여론이 강하게 불거졌지만 아스널 구단은 논란 속에서도 지난해 여름 2년 재계약을 선택하며 벵거 감독과의 동행을 연장했다. 하지만 올시즌에도 상황은 특별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리그 순위와 승점은 오히려 지난 시즌 이맘때보다 더 더 하락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간판 공격수 알렉시스 산체스를 맨유로 보내고 헨릭 므키타리안과 패트릭 오바메양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재정비했으나 4위권 진입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리그컵에서 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상대가 하필이면 올시즌 최강전력을 자랑하는 맨시티다. 현실적으로 아스널은 유로파리그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노리는 게 그나마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지만 올해 유로파리그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도르트문트(독일) 같은 챔피언스리그 수준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강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서 아스널이 쉽게 우승을 낙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벵거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시즌 후반 아스널이 우승권에서 멀어질 때마다 벵거 감독의 거취를 논하는 것도 현지 언론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정작 변한 것은 없다. 벵거 감독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아스널이 우승을 못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아스널은 이제 우승후보에서 멀어진 상태고, 프리미어리그의 여러 강호 중 한 팀에 불과하다.

23일 영국 언론 <스카이 스포츠>에 출연한 23일(한국시간) 매튜 사이드 기자는 "아스널의 가장 큰 문제는 벵거"라고 지적하며 "벵거 감독이 아스널을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이드 기자는 "감독은 구단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며 전술적 발전을 이끌어가는 혁신가"라고 정의하며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좋은 예로 들었다. "벵거 감독도 한때는 혁신가였다. 하지만 현재 아스널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벵거 감독이 그동안 아스널에서 이룬 것을 존중하지만 지금의 아스널은 새로운 도전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시즌 맨시티의 선두 질주를 이끌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은 현재 유럽축구를 대표하는 전술가로 꼽힌다. 젊은 나이에도 스페인 특유의 점유율 기반의 공격축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혁신가로 불리우며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에 이르기까지 가는 팀마다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벵거 감독이 지향하던 '아름다운 축구'의 완성형에 근접한 모델이다. 1996년 당시 40대 후반의 벵거 감독이 아스널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도 그는 팀 운영과 전술철학은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었다.

올 시즌에도 성적 부진하면... 벵거와 아스널 '정말' 결별할 수도

또한 벵거 감독과 EPL에서 장기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으나 지금은 격차가 벌어진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한 팀의 장수 감독으로 성공신화를 써내려왔다는 점에서 자주 비교대상에 오르내리곤 했다.퍼거슨의 가장 큰 성공비결은 한 팀에서 무려 27년이나 장기집권하면서도 지나간 성공에만 안주하여 매너리즘의 틀에 갇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퍼거슨 감독은 소위 '티키타카'나 '게겐프레싱' 같이 자신만의 전술적 색깔을 만들어내거나 고집하는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특정 스타나 고정된 전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선수구성이나 상황에 맞춘 유연한 팀 운영을 통하여 전력을 극대화시켰다. 당대 최고의 스타선수들을 상대로도 오랜 세월 한번도 라커룸에서의 통제력을 잃지 않았고, 끊임 없는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통한 팀 혁신으로 숱한 고비를 극복하고 꾸준히 강력한 팀을 창조해냈다.

그 결과로 맨유는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는 순간까지 EPL 최강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맨유는 퍼거슨이 떠난 이후 모예스-판 할 감독을 거쳐 무리뉴 감독도 퍼거슨 시절의 아우라를 따라잡지는 못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퍼거슨이 은퇴한 지 수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유럽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벵거의 성공신화는 퍼거슨과는 시작은 비슷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반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스널에서 벵거가 거둔 놀라운 성공은 주로 초창기 10년 이내에 몰려있다. 하지만 아스널이 전성기가 끝난 2000년대 중반 이후로 합리적인 투자-아름다운 축구-어린 유망주 육성 위주 정책 등은 이제 낡은 방식이 됐다. 오히려 축구자본의 거대화로 맨시티-첼시 같은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공룡구단들이 탄생하면서 더 이상 '벵거볼' 정책으로는 프리미어리그와 유럽무대에서 버티기 어렵게 됐다.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던 벵거 감독은 어느새 달라진 축구시장의 트렌드와 변화를 읽지못하는 낡은 고정관념과 아집의 상징으로 전락해버렸다. 우승 트로피만이 평가 기준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스널 정도의 클럽이 오랫동안 정상권에서 멀어진 것은 분명 구단의 플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매년 같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않는 벵거 감독에 대하여 팬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 ⓒ 연합뉴스


물론 벵거 감독도 최근 들어 현실을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아름다운 축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수비적인 스리백 전술을 시도하여 FA컵 우승에 성공한 장면이라든가, 메수트 외질의 재계약, 오바메양의 영입 등으로 '빅네임' 선수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과거의 벵거 감독의 성향을 감안하면 꽤 큰 발전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의 부분적인 변화만으로 아스널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늦었고, 이 정도 변화로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다는 점이다.

벵거 감독은 이번에도 아스널과의 계약기간을 준수하겠다며 일부의 퇴진론에 대하여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아스널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실적으로 아스널에게 남은 희망은 지난해 무리뉴의 맨유처럼 유로파리그 우승팀을 통하여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일 이마저도 실패한다면 아스널과 벵거 감독의 이별은 이번에야말로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될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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