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2>, 빙상장에서 적으로 만난 리지원과 리지혜 자매.

영화 <국가대표2>는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 당시 격돌한 남북 대결을 그렸다. 단순 대결이 아닌 탈북자 출신 남한 대표와 북에 남아 있는 동생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가'

영화 <코리아>(2012)는 이 문구와 함께 태극기가 깔리며 시작한다. 영화 <국가대표2> 역시 배경으로 태극기가 떠오르며 시작한다. 1991년 제41회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탁구 남북단일팀을 다룬 영화와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 때 아이스하키 종목의 남북대결을 다룬 이 두 영화가 최근들어 부쩍 회자되고 있다.  

두 영화는 바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분투 중인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연관된다.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스위스와 스웨덴에 모두 0:8로 지면서 예선 탈락이 확정됐지만 1승 아니면 1점이라도 내달라는 국민적 열망이 강하다. 그만큼 사연이 많고 깊기 때문이다.

올림픽 참여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둘러싸고 나온 잡음들은 사실 이미 예견된 것들이었다. '분단'이란 현실 탓에 단일팀 구성과정을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데다, 모든 것이 급하게 진행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앞서 개봉한 두 영화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사실들을 정리했다.

첫 남북 단일팀은 어땠나 

"북한 애들 때문에 누구는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거 아녜요? 정말 하는 거예요?" 
"어쩌겠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나도 방금 감독직에서 잘렸어." 

<코리아> 초반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 대화에서 기시감이 든다. 영화는 중반까지 팀 구성을 놓고 우려하는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과 구성 후에도 크고 작은 갈등을 반복하는 남북 선수들을 묘사하는 데 할애했다. 실제로도 정말 그랬을까.

우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팀 선수들 사이에서 그런 서운함이 나온 건 맞다. 이를 인지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선수들을 만나기도 했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급조 논란과, 한국팀 희생 논란에 대해 "IOC에서 북한 선수 출전 명 수를 늘리기 원했지만 정부가 적극 막았다"고 해명했다. 올림픽 기간 중엔 남북한 선수들의 화합을 위해 세라 머리 총감독이 제안한 해안 피크닉이 주최 측의 무신경한 대처로 성사되지 못해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배우 하지원이 현정화 역을, 배두나가 리복희 역을 맡았다.

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배우 하지원이 현정화 역을, 배두나가 리복희 역을 맡았다. ⓒ CJ엔터테인먼트


최초 남북단일팀은 어떻게 구성됐을까. 1991년 열린 제 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일본 지바 시에서 4월 24일 개막 예정이었다. 당시도 논란이 거셌다. 1990년 말부터 본격 논의가 불거진 이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의견 차가 달랐던 것. 1990년 10월께 이치바 오기무라 세계탁구협회 회장은 "1990년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월드컵더블스 탁구대회와 1991년 4월 일본 지바시에서 열리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는 게 화합과 탁구 번영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논의는 해를 넘겨 2월까지 계속돼야 했다.

늦어도 3월 중순까진 출전이 확정돼야 했는데 2월 12일 진행된 4차 남북체육회담이 분수령이었다. 이 회담에서 전격 합의된 이후 2월 18일 실무진이 구성됐고, 같은 달 21일 선수 구성 방식에 합의를 봤다. 그렇게 구성된 남북단일팀은 3월 25일에야 도쿄에 입성해 그 직후 첫 합숙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남북단일팀 역사는 그 전으로 올라간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1964년 동경올림픽을 위해 IOC의 중재로 남한과 북한이 세 차례 회담을 가졌지만 "북측이 허위 보고와 보도를 해" 무산됐다. 1979년 <한겨레신문> 등을 종합하면 북한이 먼저 남한에 1979년 평양에서 열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남북단일팀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결렬됐는데 <경향신문> 등은 박종규 당시 대한체육회장의 말을 빌려 "평양 대회는 한국팀의 참가를 보장하지 않았고, 올림픽은 개최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등의 결렬 이유를 전했다. 

<코리아>에 등장하는 주요 갈등 중 하나. 연회장에서 서로 말다툼을 하는 남북 선수들, 급기야 한 선수가 다른 선수를 폭행해 그 사진이 찍힌 '또 하나의 38선을 긋다'라는 기사가 나가게 된다. 실제는 어땠을까. <동아일보>는 1991년 3월 31일자 기사에서 1차 훈련지로 이동하는 남북선수들의 표정을 사진 기사로 담았다. "스스럼없이 형, 언니라는 호칭이 나오며 한 핏줄임을 확인했다"라고 돼 있다.

현실은 제자리걸음

 남북탁구단일팀 소식을 전한 1991년 당시 신문들.

남북탁구단일팀 소식을 전한 1991년 당시 신문들. ⓒ 경향신문, 한겨레




당시에 대해 현정화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 인생 어느 때보다 가슴 뜨거웠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남한엔 현정화 북한엔 리분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탁구계 스타였던 두 사람은 남북단일팀 여자 단체전 우승의 성과를 안고 금의환향했다. 현정화는 "갑작스런 단일팀 결정에 이 걸 왜 할까 생각도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남북 선수들 간 문제는 전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친해졌다. 밤에 몰래 서로의 방에 놀러 가서 가슴 속 얘기까지 다 털어놨다"고 전했다. 대회가 끝난 직후인 5월 8일 <경향신문> 등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의 아픔을 나누는 선수들의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 팀에 대한 훈훈한 보도도 있었다. 케이팝 댄스를 북한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춤을 췄다는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1차전에서 대패한 이후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선수들끼리 짜낸 아이디어였다(관련 기사: "남 선수들, 북 선수들에게 케이팝 댄스 알려줘" http://omn.kr/pq5n).

물론 단일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국가대표2>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탈북자 출신의 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황보영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등에서 "개인적으로는 단일팀이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평창올림픽이 끝나는) 다음 달부터 분위기가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밝혔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를 고려한 말이다. 황씨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북단일탁구팀의 표정을 담은 <동아일보> 기사.

남북단일탁구팀의 표정을 담은 <동아일보> 기사. ⓒ 동아일보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대외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의 화합은 충분히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지만 본질을 잊은 채 대외만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향은 아니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에서도 이 지점을 언급한다.

<코리아>는 '1993년 이후 작은 기적을 이뤘던 이들은 그 이후 다시 만날 수 없었다'는 문구를 넣어 20여년이 지났음에도 답보상태인 남북 관계를 꼬집었다. 그 사이 단일팀을 둔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남북의 정치 상황에 따라 계속 결렬돼야 했다. 현정화는 영화 개봉 당시 만난 취재 기자에게 "꼭 다시 한 번 합법적으로 리분희 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강하게 밝혔다.

<국가대표2>도 마찬가지다. 치열했던 남북 대결과 분단 현실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두 자매 이야기를 전하면서 동시에 '2016년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아이스하키 팀은 국가대표팀이 유일하다'는 문구를 말미에 넣었다. 또 다시 기시감이 든다. 스웨덴에게 대패하는 과정에서 한 방송사 해설자가 한 말이 겹쳤기 때문이다. 단일팀도 좋고, 승리도 좋지만 그것을 위해 가장 먼저 우리가 내딛어야 할 첫발이 무엇인지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팀(상대팀)에 속한 선수들은 각종 실업팀에서 매년 30~40게임씩 소화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이 선수들과 우리는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동시에 <코리아>에서 감독 역할을 한 박철민의 대사도 덧붙인다. '독도'까지 표기된 한반도 기 중앙에 선을 그어놓고 내뱉은 말이다.

"이게 지금 우리 현실이다. 갈라지고 나눠진 땅에 살면서 탁구대에서도 적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만나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선을 넘고 그래서 같은 곳에 서고 싶어 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나란히 서면 하나가 되면 그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자. 이 찬란한 순간이 다시 오지 않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박철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단일팀 일본 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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