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의 올림픽 최초 여자 500m 은메달이 '실격' 판정으로 마지막 한순간에 날아갔다. 심판의 판정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최민정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에 이어 2위로 골인했지만, 추월하는 과정에서 킴 부탱(캐나다)과 부딪혔다는 판정을 받으며 실격처리 됐다. 500m 사상 최초의 은메달이 현실로 이뤄지는가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 안타까운 결과가 나오며 좌절되고 말았다.

아쉬운 판정... 최민정은 실격, 킴 부탱은 페널티 없는 이유

자리 다투는 최민정과 킴 부탱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500 미터 결승 경기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오른쪽이 캐나다의 킴 부탱 선수.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500 미터 결승 경기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이날 최민정에게 실격이 나온 부분은 두 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아웃코스로 추월할 때였다. 당시 최민정은 아웃코스로 킴 부탱(캐나다)과 엘리스 크리스티(영국) 등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최민정은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앞서가던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와 킴 부탱 사이의 빈 공간에 왼팔을 집어넣으며 코너를 돌았다. 심판은 이 과정에 관해 최민정에게 실격을 준 것이다.

안상미 MBC 해설위원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두 바퀴를 남기고 최민정이 추월을 하던 도중 킴 부탱과 부딪힌 것을 실격 사유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해설위원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은 실격 사유가 된다"고 덧붙였다. 최민정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수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한 제스처에 가까웠지만 심판은 이것을 진로 방해로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SNS에서 쏟아져 나왔다. 최민정이 왼팔을 집어넣은 다음 뒤따르던 킴 부탱이 최민정을 팔로 미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상대방을 미는 것이 확실한 '임페딩' 규정 위반이긴 하지만, 최민정에게만 실격을 판정하고 킴 부탱에게는 페널티를 주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왜 이런 판정이 나온 걸까?

안상미 해설위원은 경기 직후 트위터에 "어제 (경기 전날인 12일) 팀 미팅에서 바깥쪽으로 추월하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있는 경우 페널티를 주겠다는 심판의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14일 오전 <중앙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500m 결선 전날 "추월하는 선수가 앞 선수의 진로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정 가이드라인이 정해졌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최민정이 실격됐고 킴 부탱은 페널티 없이 기록이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코너 도는 최민정 선수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500미터 준준결승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 코너 도는 최민정 선수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500미터 준준결승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 이희훈


최민정의 도전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

그동안 한국 쇼트트랙은 중장거리에서는 절대적인 강세를 유지해왔지만 단거리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 쇼트트랙 특성상 체력과 지구력 중심으로 훈련을 해오다 보니 상대적으로 스타트 능력이 중요한 단거리 분야에는 소홀해진 것이다. 최민정은 과거에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외국 선수들은 우리가 그동안 강했던 장거리에서 점점 강해지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대로 있으면 안 되잖아요. 한국 선수도 단거리에서 강하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최민정은 쉽지 않은 빙상계에서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당차게 도전장을 던졌다. 최민정은 500m 경기를 위해 절대 스피드를 더욱 보완하고 근육량을 늘리는 등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평창을 앞두고는 약점으로 꼽혔던 스타트까지 보완해왔다. 최민정은 준준결승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레이스에서 모두 두 번째로 출발했다. 최민정의 반응속도가 얼마나 향상됐는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비공식 결과에 활짝 웃은 최민정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500 미터 결승 경기에서 출전에 결승선에 서고 있다.

▲ 비공식 결과에 활짝 웃은 최민정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500 미터 결승 경기에서 출전에 결승선에 서고 있다. ⓒ 이희훈


최민정은 본래 스타트가 빠른 편이 아니었다. 현재 대표팀 중 스타트 반응이 좋은 선수로는 심석희(21·한국체대), 김예진(19·평촌고) 등이 꼽힌다. 하지만 최민정은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왔고 그것을 증명했다. 다만 물질적인 보상이 없을 뿐이다. 이미 최민정이 그동안 보여준 성과만으로도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단거리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최민정은 경기 직후 믹스트존에서 "응원해준 분들에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판정으로 아쉽게 메달을 놓친 상황이지만, 오히려 실격 판정을 보고 탄식했을 다른 사람들을 더 먼저 생각했다. 메달을 놓친 것에 대한 속상함과 아픔은 크겠지만 최민정의 레이스를 보며 한국 여자 쇼트트랙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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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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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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