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경.

배우 김상경이 영화 <1급기밀>로 관객과 만난다. ⓒ 올댓시네마


군납비리를 직접 고발하다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 한 군인의 이야기. 영화 <1급기밀>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혹자는 또 다시 지난 정권들을 비판하는 영화라며 사회고발성 영화 중 하나로 눙칠 수도 있지만 김상경의 주장은 좀 다르다.

"이순신 장군 때도 있었고, 이런 군납, 방산 비리야 말로 한국 역사상 오랜 비리 중 하나 아닌가."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1급기밀>의 배우 김상경은 그 내부고발자 박대익 중령으로 분했다. 그의 출연 이유도 조금 남달랐다. 고 홍기선 감독이 8년 간 자료를 수집하며 완성한 이야기를 지난 2016년에 처음 접한 그는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고. 서슬 퍼렇던 보수 정권 하 어떤 부담을 느끼긴커녕 그는 "오히려 전전 정권도 그랬고, 전 정권에서도 강조하던 내용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유 없는 블랙리스트 

"친정부 영화라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부가 방산 비리를 척결한다고 했잖나. 근데 왜 우리 영화는 투자가 안 되는 거지? 좀 의외였다. 막을 영화가 아니라 그 분들이 좋아해야 할 영화 아닌가. 보수와 진보가 함께 손잡고 볼 수 있는 영화인데? 구멍 뚫린 방탄복을 입고, 녹슨 수통을 쓰는 우리 청년들 이야기인데?"

반 농담 같지만 진심에 가까웠다. 더욱 진지한 어투로 김상경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시나리오 자체는 유연했다"라며 "게다가 드라마와 영화 통틀어서 방산비리를 다룬 첫 작품이다 보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출연 이유를 전했다.

 영화 <1급기밀> 관련 사진.

영화 <1급기밀> 에서 김상경이 맡은 박대익은 자신이 몸담은 부대가 비리의 온상이었음을 알고, 내부고발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 리틀빅픽쳐스


영화는 1998년 국방부 조달본부 비리, 2002년 차세대 전투기 사업 비리, 2009년 해군 납품 비리 사건 등 총 세 가지 굵직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김상경 역시 뉴스를 통해 익히 접했던 내용이었다. 그는 "뉴스로 볼 땐 길어야 3분 분량으로 지나가면 잊기 쉬울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영화는 이걸 더 집중해서 공론화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며 "남 이야기가 아닌 이상 <1급기밀>이 갖고 있는 의미가 참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반대로 <1급기밀>은 제작 도중 원래 투자사가 바뀌었고, 상업영화 대부분에 지원하던 모태펀드가 투자를 철회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김상경을 비롯한 일부 배우들은 영화 개봉 후 출연료를 정산하는 식으로 힘을 보탰고, 심지어 김상경 본인은 일부 금액을 영화에 투자하기까지 했다. "그 사실은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연기자로서 난 정치색이 없다. 배우는 관객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보수 쪽에서 중시하는 안보가 이 영화의 주제기도 하다. 게다가 감동적이고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일거양득 아닌가. 그런데 이 영화에 출연했다고 나보고도 '좌빨'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저 난 작품을 택할 때 이야기의 재미와 의미를 생각하며 해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색 운운하며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부채 의식

 영화 <1급기밀> 관련 사진.

영화 <1급기밀>에서 박대익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는 방송 기자 김정숙(김옥빈, 우측)이다. ⓒ 리틀빅픽쳐스


이 지점에서 그의 전작들을 꺼냈다. 사실 1998년 드라마 <애드버킷>으로 데뷔했을 당시만 해도 김상경은 대기업 실장, 변호사 등 전문직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그러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계기로 이른바 '생활형 연기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민주화 항쟁을 그린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하하하>  등으로 그는 연기적 지평을 넓힌다. 김상경은 "그리고 부채의식 또한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특전사를 나왔는데 그 부대가 당시 민주화 항쟁 때 시민들을 진압했다. 내 상사들이 청문회에 나가는 것도 많이 봤다. <화려한 휴가>에선 제가 시민군으로 나오지 않았나. 부채감이 분명 있었지. 서울에서 태어나 '전라도에 빨갱이가 산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근데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너무 내가 진실을 모르고 살았다는 미안함이 있는 거지. 

<1급기밀>에서도 한 군인이 (군납비리로 들여온 부품 때문에) 목숨을 잃잖나. 아니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진짜 나쁜 거 아닌가? 비리를 저지르는 자들은 돈 조금 챙기려고 그러는 건데 군대에선 그것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자기 아들이, 가족이 죽는다고 생각해보라. 작은 비리가 아니라 그건 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저 역시 아이가 둘인데 이들도 커서 군대를 갈 것이다. 곧 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캐릭터 준비를 위해 실제 사건의 내부고발자였던 김영수 소령을 만나면서도 김상경은 "그 분이 진짜 군인이었다.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이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예우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면서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서도 분명 있을 수 있는 불합리함을 당연하게 얘기해서 고치는 데 일조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배우론

<화려한 휴가> 등 전작들 때문에 김상경 역시 지난 정권이 만든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배우였다. "그 리스트로 인해 겪은 직접적 불이익은 없다"고 전하면서도 그는 다시 한 번 배우로서의 본령을 강조했다.

"보수 진보를 떠나서 작품을 해왔다. 제가 세종대왕 역을 두 번이나 했는데 그럼 세종대왕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웃음) 우리가 생각하는 보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고 진보는 사회적 변화를 주장하며 보다 함께 나아지길 요구하잖나. 여러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어떤 성향일까 많이 생각해왔다. 결론은 배우로서는 관객을 위해서라도 정치색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배우를 진보와 보수로 가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들도 제 팬인데 그 분들은 대부분 보수다. 보수면 제 팬이 될 수 없나? 전라도 사람들은 제 팬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제 팬이다. 배우는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대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떤 의사라고 상상해보자. 의사 입장에서 환자가 보수라고 치료 안 해주고, 진보라고 치료해주는 건 아니잖나.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할 뿐이지.

하지만 투표할 땐 자연인 김상경으로서 하는 거다. 자연인 김상경은 상식적이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들이 절 작품으로 기억하지 캐릭터로는 잘 기억 못하시더라. '<살인의 추억> 했어요!' 이러면 '아, 근데 무슨 역할이었죠?' 묻는 분이 많다(웃음). 연기할 때 작품이 드러나야지 인물이 도드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배우는 작품 속의 한 인물로 살아야 한다는 주의다." 

 배우 김상경.

ⓒ 올댓시네마


그는 "'손에 잡히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과거 홍상수 감독과 봉준호 감독 일화를 전하며 자신의 배우론을 그렇게 정리했다.

"두 감독님을 만난 건 운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그전까진 비슷한 구조의 드라마를 했다가 두 분 작품을 하면서 연기관이 깨진 거지. 술 먹는 연기는 마냥 취한 것처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술을 진짜 마시니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질 때도 있더라. 어떤 상황에선 즉흥 연기를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 참 여러 방식의 연기가 가능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전 연예인 같은 배우가 아니다. 그냥 일반 사람이다. 영화에서 그 일반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일반 사람을 대변하는 배우다. 멋지고 훤칠한 배우들이 있듯 저 같은 평범한 배우도 있어야 한다. 요즘엔 집이 경기도 쪽으로 이사 가서 자주 타진 못하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주로 타왔다. 비 오는 날 버스 안의 습기, 사람들 냄새. 타보지 않으면 영영 모르지. 일상에서의 그런 경험이 내 몸에 묻는다고 생각하고, 그게 연기로 나온다고 본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