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NEW


박근혜 정부가 영화계에 행사한 전방위적 압력이 하나둘 드러나는 가운데 영화 <판도라> 역시 그 피해 사례 중 하나였음이 밝혀졌다.

11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아래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종국 당시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은 직접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해당 작품이) 흥행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재판 증거자료로 채택된 것을 살피면 김종덕 전 장관은 "김종국 부위원장이 '부산영화제 자회사인 CAC엔터테인먼트가 원전 비리와 정부 책임으로 원전 재난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영화(<판도라>를 뜻함)가 서울시와 강원도에서 촬영 중'임을 알리며 '주연배우 또한 노사모 회원인 김명민 등이므로 정부 지원을 배제하고 배급사를 조정함으로써 흥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과 함께 증거로 채택된 김 전 장관의 수첩기록엔 '부산국제영화제 자회사(CAC 엔터테인먼트)', '김명민(노사모), 김영애, 정진영', '원전비리, 정부책임', '서울시 강원도 촬영', '정부 돈 빼고/배급사 조정/흥행실패'라는 내용이 메모돼 있었다.

김종국 전 부위원장... "그런 말 한 적 없다"

<판도라>는 2015년 3월 7일 촬영을 시작해 약 5개월 간 진행됐고, 촬영 종료 후 1년 간 개봉이 밀려 2016년 12월 7일에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영진위가 민간에 위탁한 모태펀드가 투자 의사를 보였다가 돌연 철회한 정황, 촬영 예정지였던 부산 기장에서 갑자기 촬영 불가 통보를 한 상황이 알려지며 정부 압박에 대한 의심이 커진 바 있다.

로케이션 촬영이 불발되자 <판도라> 측은 추가로 세트장을 지었고, 이 때문에 예산이 계획보다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실제로 <판도라>에 출연한 한 배우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 비보도를 전제로 "한수원 관계자들도 그렇고 정부쪽에서도 압력을 넣어서 영화 촬영에 큰 지장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12일 당사자들에게 직접 다시 확인했다. 강성호 현 CAC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영화 후반작업에 합류해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투자 난항 등으로) 배급사가 (쇼박스에서 NEW로) 바뀐 일이 있었고, 스태프들이 '한수원에서 계속 접근을 막아서 참 힘들다'고 많이 토로했다"고 전했다.

NEW 측 역시 "창투사의 투자를 못 받았다. 대부분 '미안하다, <판도라>에는 투자 못할 것 같다'는 식의 피드백을 받았다"며 "제작 관련해선 로케이션 허가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답했다.

 김종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영화 티켓 사재기 의혹에 관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종국 영화진흥위원회 전 부 위원장.ⓒ 남소연


김종국 전 영진위 부위원장은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오마이뉴스>에 "일단 김종덕 전 장관이 메모한 시기가 궁금하다. (블랙리스트 건이) 가장 문제시 된 게 <다이빙벨> 때일 텐데 2014년 9월 무렵일 것이고, 우리는 2015년 1월 1일부터 임명장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며 "<판도라> 개봉은 2017년 초인가 2016년 말로 한참 뒤다. (압력을 행사하려면) 캐스팅도 안 됐을 때 했다는 건데 어떻게 그런 메모가 나올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김종국 전 영진위 부위원장의 말과 다소 달리 <판도라>는 2015년 3월에 촬영을 시작했기에 2014년 말 경에는 캐스팅이 거의 끝났을 때였다. 의지만 있다면 관계 당국의 압력이 가능한 시기인 셈. 이에 대해 그는 "영진위는 상업영화를 지원하는 제도가 전혀 없다. 대기업 영화를 영진위가 어떻게 지원하겠는가"라며 "김종덕 전 장관이 착오했을 것이다. 직접 대면해서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상업영화 지원 제도는 없지만 (모태펀드 등을 이용해) 방해할 수는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김종국 전 부위원장은 "감독이 <연가시>를 연출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 정치적 요소가 전혀 없는 영화지 않나"라며 "상업영화를 방해해서 뭐하겠나"라고 답했다.

 문체부가 11일 발표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활동 결과 자료 중 일부.

문체부가 11일 발표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활동 결과 자료 중 일부.ⓒ 문화체육관광부


영진위 9인 위원회도 사실상 친정부 '거수기'

이와 함께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는 2014년 12월 영진위원장에 임명된 김세훈 교수 이후로 순차적으로 김종덕 문체부장관 라인과 청와대 추천 인사 5, 6명이 영진위원으로 임명된 사실을 밝혔다. 영진위원회는 총 9인으로 구성되며 영진위의 주요 의사 결정 기구다.

조사위원회는 "이들 위원들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적극 가담, <자가당착>과 <다이빙벨> 등을 상영 예정이던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제 지원을 취소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 증거로 조사위원회는 문체부 직원과 김종덕 전 장관의 재판진술 자료를 들었다.

문체부 담당자는 재판에서 "(인디스페이스 지원 배제는) 영진위로 하여금 다음해 지원 대상에서 배제토록 한 것이고, 당연히 청와대 뜻을 (영진위에) 알렸다"며 "최종적으로 9인 위원회를 거쳐야 하지만 이미 김종덕 장관이 5, 6명을 자신과 관련한 사람들로 선임했기에 이런 방안이 통과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김종덕 전 장관 역시 같은 재판에서 "취임 후 5명 정도 새로 임명했던 걸로 기억된다"며 "새로 임명된 분들은 아무래도 보수 성향이 분들로 청와대에서 내려온 지시를 영진위에 전달하거나 설득하기에 훨씬 수월한 면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는 "조사기간을 3개월 연장한다"고 알렸다. "지난 5일 전원위원회에서 의결된 것"이라 밝히면서 위원화는 "진상조사는 4월말까지 진행되며, 5월부터 7월말까지 3개월간 백서 편찬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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