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거장 '다르덴 형제'의 원숙하고 완성된 스타일을 보여준 <내일을 위한 시간>.

자타공인 거장 '다르덴 형제'의 원숙하고 완성된 스타일을 보여준 <내일을 위한 시간>. ⓒ ?그린나래미디어㈜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 2010년대까지도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팀)이라 할 수 있는 다르덴 형제. <로제타> <더 차일드>로 황금종려상을, <자전거 탄 소년>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아들>로 심사위원특별상과 남우주연상을, <로나의 침묵>으로 각본상을 탔다. 그야말로 자타공인 명백한 거장이다.

영화제가 사랑하는 그들의 작품은 예술성보다 현실성에서 기인한다. 그 현실성엔 지극히 현대적인 불안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들은 그 불안에 천착한다. 그 불안이야말로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대체로 짧고 굵은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겉치레 없이, 미사여구 없이 다큐멘터리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2014년작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르덴 형제의 명성에 걸맞은 수상 실적을 내진 못했지만, 그들의 원숙하고 완성된 스타일의 면모를 가장 잘 내보인 작품이라해도 무방하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특별할 것 없는 설정이지만, 여지없이 그 이면에 깊숙이 깔려 있는 불안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거장의 솜씨다.

짧지만 악몽 같은 투쟁 일지

 영화는 주말 동안의 투쟁, 그 짧지만 충분히 악몽 같은 1박 2일을 보여준다.

영화는 주말 동안의 투쟁, 그 짧지만 충분히 악몽 같은 1박 2일을 보여준다. ⓒ 그린나래미디어㈜


복직을 앞둔 금요일 오후,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에게 줄리엣의 전화가 걸려온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회사 동료들이 그녀의 복직 대신 보너스 1000유로를 선택하는 투표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반장에 의한 겁박에 의해 행해졌기에 사장한테 말하면 월요일에 재투표를 하게 해줄 거라는 것.

산드라는 일자리를 되찾고 싶지만, 동료들에게 보너스 1000유로를 포기하고 자신의 복직을 선택하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월급 없이 생계를 꾸려가기 힘들다. 산드라는 남편의 격려와 협박 아닌 협박에 힘입어 주저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주말 동안의 동료 설득하기 여정에 나선다.

이미 자신의 복직을 지지해주는 몇 명의 동료들을 확보해놓았지만 16명의 과반수인 9명을 설득시키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말그대로 '일희일비', 우울증을 앓았고 아직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산드라에겐 지옥과 다르지 않다. 지지해주는 동료를 만나면 한없이 기쁘고 힘이 나지만, 반대하는 동료와 폭력을 휘두르려 하는 동료를 만나면 당장 때려치고 싶다. 복직한다고 해도 반대한 동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운명의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주인공 산드라가 복직을 위해 주말 동안 벌이는 짧지만 악몽 같은 투쟁을 그린다. 그녀는 회사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월요일 재투표에서 자신의 복직에 투표해 달라고. 그러면 동료들은 하나같이 묻는다. 다른 동료들은 어떤 의견을 냈느냐고. 이 단순한 설정에서 오는 긴장감이 묘하게 상당하다.

산드라를 원하는 동료들, 원하지 않는 동료들

 산드라를 지지하는 동료들과 지지하지 않는 동료들, 전부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산드라를 지지하는 동료들과 지지하지 않는 동료들, 전부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 ?그린나래미디어㈜


상상을 해본다. 대입을 해본다. 내가 산드라였다면? 내가 아파서 자리를 비웠음에도 회사는 충분히 잘 돌아갔다는데, 그리고 내가 복직하지 않는 대신 동료들이 보너스를 받는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그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보너스를 받아야 하는 사정 말이다. 그걸로 그들을 원망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산드라의 회사 동료들이었다면? 솔직히 말해서 무슨 이유를 지어내든 보너스를 택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녀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내가 일하는 데 있어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에게 꽤 큰 돈이 돌아오는데 말이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그녀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지?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는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나처럼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고, 모두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산드라를 원하지 않는 동료들은 모두 다 다른 이유와 사정이 있지만, 산드라를 원하는 동료들은 아무 이유없이 그저 산드라의 복직을 원하고 산드라에게 미안하고 산드라를 응원할 뿐이다.

톨스토이의 저 유명한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르다"가 생각나게 하는 대목인데, 주말 동안의 여정에서 산드라가 행복할 때는 그저 활짝핀 웃음만을 내보이는 반면 불행할 때는 그때마다 다른 표정과 행동과 말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현대사회의 '악', '불안', '투쟁', '연대', '희망'

 현대사회의 '악'에 직면해 연대 투쟁의 희망을 이어나간다.

현대사회의 '악'에 직면해 연대 투쟁의 희망을 이어나간다.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산드라의 여정, 그 반복되는 여정에서 오는 긴장감 어린 서스펜스를 겉으로 내보이고 있지만, 이면에는 이 현대사회에 뿌리내린 거대한 '악'의 결정체가 자리하고 있다. 애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회사 복직과 생계에 아주 미묘하게 결정적인 보너스를 동일선상에 놓고 양자택일을 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악랄하기 그지없는 짓이 아닌가. 그에 비하면 반장이 협박을 일삼으며 자신을 포함한 사원들이 보너스를 타게끔 하려는 수작은 애교에 가깝다.

거기에 산드라를 비롯한 회사 동료들은 모두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안'의 일면들이다. 기본적으로 월급 없이는 생계조차 꾸려갈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1000유로 정도의 보너스로 동료 한 명의 생계를 알면서도 짓뭉개버리는 결과를 찬성한다. 심지어 그 돈이 원래 받지 않았어야 할 돈임에도 말이다.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이 사회에서 절대적인 것이다.

한편, 산드라는 '열심히' 싸웠다.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반대하는 동료들에 맞서 싸운 게 아니라, 심지어 반장과 사장을 상대로 싸운 게 아니라, 이 악몽같은 상황 그리고 우울증에 시름하는 자신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겠다. 그녀는 이겼을까, 졌을까. 이기는 게, 지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녀는 왜 싸운 것일까. 그 회사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그녀의 짧은 여정이 긴 여운을 남기고 번뜩이는 깨달음을 안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바로 다른 회사를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다름 아닌 그녀를 지지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그녀는 싸웠던 것이다. 그들 덕분에 그녀는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다. 이것이 '연대'의 힘이 아닌가. 영화는 이 지독한 현대사회에 맞설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연대에서 찾았다. 우리도 찾아보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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