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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비판하는 일은 짜릿하다. 직접 행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만 봐도 흥분된다. 찌라시에나 등장할 괴담이설로 치부를 건드릴 땐 더 그렇다.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가 바로 그 맛이다. 서술자인 에단 벤 호사야가 위험에 처할수록 호기심으로 조급해져 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비유 삼은 대상이 구약의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다.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 책표지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 책표지
ⓒ 지식을만드는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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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일지언정 경전에 먹칠하는 일을 감내하기는 어느 종교든 벅차다. 그러나 질시 받는다 생각하면 기분 나쁠 것도 없다. 미약한 존재는 험담 대상이 될 수 없으니까. 특히 구약은 여러 종교들 중 신자수가 세계 최다인 기독교의 성경이다. 따라서 구약에 나오는 인물을 흠집 내는 일은 이목을 끄는 데는 으뜸이다. 게다가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는 완성도가 높은 역사소설이어서 꽤 실감난다. 기독교인은 읽다가 내동댕이칠 수도 있다.

저자 슈테판 하임의 이력과 정황을 고려하면,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는 파시즘과 동독 사회주의에 대한 비유담(比喩談)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반파시스트로 활동하다가 나치스를 피해 여러 나라를 떠돈다. 나중에 동독으로 이주했지만, 동독 문학계에서도 겉돈다. 1972년 동독에 거주하면서도 이 책을 서독에서 출간했음이 그 증거다.

이스라엘 편에서 성경은 실록이다. 그 실록에 의하면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다. 그 신성한 왕조를 비튼 소설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는 총 26장 구성이다. 구약의 <사무엘>서와 <열왕기>에서 소재를 낚아 다윗의 "놀라운 신분 상승, 경건한 생활, 영웅적인 행위 등"을 물고 늘어지며 재조명한다. 성경을 강자의 기록인 역사로 낯설게 보아 딴죽을 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윗 왕이 아니라 서술자이며 역사학자인 에단이다. 에단이 진실을 더듬어 가는 동선마다 다윗의 행적이 드러나는 액자소설이다. 저자는 에단의 입을 빌어 역사학자를 "어떤 사람이 사후에, 후세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계속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자격자로 규정한다. 에단의 펜이 정권의 어디를 겨누느냐가 소설의 관건이라는 암시다. 에단이 솔로몬 왕에게 이용당할 것이라고 넌지시 귀띔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솔로몬 왕은 아버지 다윗 왕을 기리는 "단 하나의 진실하고 권위 있는,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공적으로 인정받는 보고서" 편찬을 위해 에단을 명색 편집자로 앉힌다. 그 이유는 그의 공신력을 더해야 장차 카더라 통신의 여지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단을 어떻게 다스리는가가 보고서 편찬의 관건이다. 2015년 박근혜 정권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역사학자들을 동원했던 교육농단 사건이 절로 떠오른다.

소설은 보고서 편찬을 위한 국왕 직속 위원회에서 들러리 신세가 된 에단의 내밀한 투지를 이중적 처세술로써 시사한다. 하나는 솔로몬 왕이나 유력 인사들 앞에서 알아서 기는 태도라 할 자기비하 발언이다. 다른 하나는 은근하나 지속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예상하면서 문제적 증인을 만나거나 역사적 기록물이라 할 점토판을 찾아 발품 팔기를 고집함이다. 둘 다 솔로몬 왕의 언론 탄압과 역사 왜곡을 염두에 둔 저항성이다.

전자가 정치적 매장이나 개죽음을 피하면서 시간을 벌기 위한 나름의 호신책이라면, 후자는 독자에게 19금을 엿보는 것 같은 재미를 줄 만큼 위원회가 정한 무언의 가이드라인을 어기는 소신행보다. 물론 전자는 추후 에단이 솔로몬 왕의 결정을 따르는 나약함으로 이어지긴 한다. 어쨌거나 에단이 밝힌 다윗의 족적은 항간에서 회자되는 기존 명성과 아주 딴판이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렇지, 이래도 될까 싶게 성경의 권위를 거스른다.

그 첫 번째가 다윗의 아내였던 사울 왕의 딸인 미갈의 증언이다. "두 번이나 나의 남편이었고, 나의 오빠 요나단의 연인이었으며, 아버지 사울 왕의 창부였"다는. 기독교가 적대시하는 성적 소수자의 선례로 다윗을 지목함이 짓궂다. 일개 양치기 소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의 "놀라운 신분 상승" 비결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데 있다는 역설이다.

증언들은 이어진다. 다윗 시대 군사령관이었던 요압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죽이는 다윗의 교활함을 지적한다. 다윗의 딸 다말은 이복오빠 암논에게 강간당한 데에 다윗의 종용이 개입했다는 정황을 토로한다. 밧세바는 유부녀였던 자신을 아내로 삼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뒤통수치는 계략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그 진실들은 증언자들이 당대 통념상 비정상적인 삶에 처해 있거나 피하고픈 언행을 보임으로써, 설령 대중에게 알려진다 할지라도, 먹히기 어렵다. 물론 에단을 편드는 독자 입장에서는 대상이 누구든 인간을 수단 삼은 다윗은 "경건한 생활, 영웅적인 행위"와는 거리가 먼 철권 통치자라고 재평가할 수 있다.

소설은 솔로몬의 지혜에 손을 들어준다. 정치권력에 대놓고 저항하지는 못하면서도 끝까지 버티던 에단은, 언론 탄압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솔로몬 왕의 의향대로, 죽을 때까지 묵언하기로 맹세하고 예루살렘에서 쫓겨난다. 에단을 축출함은 다윗의 후손인 솔로몬 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보고서 편찬이 뒤가 구린 역사 왜곡이라는 역설을 입증한다.

저자 슈테판 하임은 역사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고 빈손 털린 채 성에서 내쫓긴 에단을 나약한 지식인의 초상으로 삼은 듯하다. 실제로 어떤 이유로든 나치즘이나 파시즘에 찬성도 반대도 못하다 결과적으로 시녀가 된 지식인들의 어정쩡한 삶들을 세계사는 보유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오늘 기사는 반갑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들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단다. 지난 12월 1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지난 12월 22일 유엔은 미국이 이스라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전격 발표한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는 보고서 채택에 찬성했다. 물론 한국도 동참했다.

과거 사건이든 현재의 문제적 사안이든, 강압적인 권력 행사에 대해 바로잡으려는 국내외의 몸짓은, 피지배자들의 삶에 어떤 의미로든 안전판을 제공한다. 그런 관점에서 힘없는 개개인을 대변해 세계적으로 막강한 종교를 빌려서 비뚤어진 권력의지를 비판한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의 유통기한은 영구적이다.

지난 12월 15일 오스트리아 극우 연정이 탄생했다. 지난 5월의 프랑스와 지난 9·10월의 독일 등의 변화까지 포함해 유럽 극우는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소외계층의 수는 늘고 있고, 디아스포라의 설움을 겪는 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편향되고 왜곡된 권력을 다룬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류의 작품이 싹트기 쉬운 현상들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다. 2018년 무술년에는 국내외 너나없이 사악함을 부수고 바름을 드러내는 데 더더욱 힘쓰면 좋겠다.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

슈테판 하임 지음, 김충남 옮김,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2016)


태그:#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 #슈테판 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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