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영화 <자백> 무료 시사회 현장.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영화 <자백> 무료 시사회에 참석한 최승호 피디.ⓒ 엣나인필름


"지금 밝혀진 부분을 파고들어 정확히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론 기회가 없을 거 같습니다. 국정원이 환골탈태한다고 했지만 벽지 한 장 바꾼 거 빼곤 없는 거 같습니다. (간첩 조작 사건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잠깐 정권이 바뀌었다고 조작 사건이 아예 없어질까요? 제도적인 변화가 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유우성씨)

국가정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의 목소리엔 울분이 맺혀 있었다. 영화 <자백>을 통해 국가에 의한 폭력을 몸소 겪고 대법원에서도 간첩 혐의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국정원이 개혁을 외쳤지만 간첩조작에 대해선 미지한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 최승호 PD, 여러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이유다.

영화 <자백> 무료 시사 후 무대에 선 최승호 PD는 "새 정부에서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가 탄생했고, 간첩조작 사건 조사에 기대감이 컸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며 최근 개혁위가 내놓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에 아쉬움부터 표했다.

최 PD는 "국정원 내에서 자살한 분의 사건도 있고, 홍강철 선생 사건은 2심 판결로 국정원의 조작 행위가 있었음이 드러났는데 대법원 판결이 안 났다는 이유로 조사대상에서 아예 빼는 등 사건을 은폐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개혁위 발표가 기대에 너무 동떨어져 변호인단 역시 분개했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자백> 역시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하는 만큼 조작 사건을 발본색원하는 데 공감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우성씨 역시 국정원 개혁위에 대해 "피해자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스럽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너무 많은 허점이 있는데 돈을 쏟아부어 언론도 이용한 정황도 있고 그런 걸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며 "난 운이 좋아 무죄임이 밝혀졌지만 30년에 걸쳐 사람들이 받은 고통이 과연 돈으로 보상될지 의문"이다.

피해자들의 증언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영화 <자백> 무료 시사회 현장.

발언 중인 유우성씨.ⓒ 엣나인필름


현장엔 유우성씨 외에도 조작 사건으로 피해 입은 여러 피해자들이 자리했다. <자백>에도 등장해 소감을 밝힌 홍강철씨는 "영화로 알려졌듯 전 북한에서 주민들 탈북 지원도 하고, 송금 브로커도 한 범법자였다"며 "보낼 사람이 없어서 북한이 저 같은 사람을 간첩 보내겠나"라고 반문했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건 또다시 조작을 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도 촛불을 들었고, 온 가족이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습니다. 새 정부가 적폐청산을 외쳤는데 박근혜 정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근데 이번 정권이 지난 정권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 자릴 빌어 정부가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간첩 조작 사건을 조사하길 바랍니다." (홍강철) 

사실상 국정원이 조작 사실을 인정하고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까지 받은 유우성씨는 매우 운이 좋은 경우였다. 현장에 나온 피해자들은 대부분 이번 국정원 개혁위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거나 여전히 조작 사건으로 인해 비보호자로 분류돼 국가의 지원에서 배제돼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국정원의 부부간첩미수사건 피해자로 알려진 배아무개씨(익명 요청)는 "(간첩 인정 진술을 뒤집었다고) 마약과 연관 지어 비보호 대상자로 지정됐다"며 "(조작에 응한) 가짜 간첩에겐 집과 생활비를 지원하고 진술을 뒤집은 사람은 고통에 밀어 넣는다. 살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살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누명을 벗고 살 수 있게끔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른바 '원정화 간첩사건'이라며 원씨 진술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3년 6개월간 복역을 해야 했던 황아무개 중위(익명 요청)는 "폭력에 의해 허위 자백을 했는데 부끄럽다"며 "2017년임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당사자로서 마음이 아프다. 지금 재심 준비 중인데 사회가 투명해지는 데 (제 사례가) 일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황 중위의 부친 역시 현장에 동석해 간절히 호소했다. 부친 황씨는 "저 역시 베이비붐 세대로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이라 간첩을 잡아 포상도 받고 이름도 날려야지 생각하며 자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 저에게 큰아들이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갔을 때 어떻게 대처할 줄 몰랐습니다. 탄원서도 처음으로 올려봤습니다. 간첩으로 몰려 한국을 떠난 김승효씨가 '한국은 나쁜 나라다. 이제 가기도 싫다'라고 했는데 정말 한국이 나쁜 나랍니까? 얼마 전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은 국가의 최후의 보루라고 지켜줘야 한다고 했던데 그들이 국가를 지키는 게 간첩을 거짓으로 조장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죽임당해야 하는 일입니까? 이 나라가 계속 거짓으로 채우려 하니 북한이 우릴 얕잡아보고 통일도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요? 정말 통일하고 싶으면 우리부터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유우성씨에게 물었습니다. 무죄를 받은 이후 직장에 복귀하셨냐고. 아니랍니다. 무죄를 받아도 이렇게 생계가 어렵습니다. 이런 관행도 바뀌어야 합니다." (황 중위의 부친)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영화 <자백> 무료 시사회 현장.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영화 <자백> 무료 시사회 현장.ⓒ 엣나인필름


변호인 연대

관계 당국의 미진한 수사와 개혁 의지로 피해자들을 위한 일종의 연대가 강해지고 있다. 하주희 변호사는 "보다 조직적인 대응을 위해 <자백> 무료 상영과 함께 우리도 변호인단을 모집 중"이라며 "민변 회원들 전체를 회람해서 자발적 신청자 20명 정도가 모였는데 함께 피해사례를 듣고 기록을 보면서 해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들레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김인숙 변호사는 "국가로부터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한 피해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부터 드리고 싶다"며 "전태일 열사,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런 조작 사건들은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는 점에선 같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이런 폭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운을 뗐다. 그는 해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진태 전 의원, 이시원, 이문성 검사 등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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