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폭력 여성 피해자들은 피해사실 뿐만이 아닌 자신이 어떤 여자인지까지 증명해야 할까요?"

'남배우A 사건'의 피해자인 여배우B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2015년 4월 16일 한 저예산 영화 촬영 중 발생한 강제추행 사건에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사전 합의 없이 남배우A가 여배우B의 옷을 강제로 찢고, 추행한 이 사건으로 최근까지 재판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 신고와 고소의 개념이 혼재돼 있다. 흐름을 정리하면 사건 이후 여배우B가 남배우A를 성추행 혐의로 '신고'하고, 직후 남배우A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여배우B씨를 무고로 '고소'한다. 이를 인지한 담당 검사는 보복성 고소로 보고 남배우A에게 '무고죄'를 추가해 1심 재판에 넘긴다. 지난해 말 1심 재판부는 남배우A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올해 10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남배우A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판결을 내렸다. 여배우B에 대한 무고죄까지 인정됐다. 유죄다.

남배우A는 이후 적극적이었다. 조덕제라는 본인의 실명을 공개하며 언론 인터뷰에 적극 응해 생각을 밝혔다. 인터넷에선 여배우B의 각종 신상과 행실 등에 대한 추측성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여배우B가 왜 공개적으로 등장하지 않는지 질타하기도 한다. 사법 재판을 넘어 여론 재판의 흐름이다.

여배우B씨가 항소심 판결 직후 용기를 냈다. "즉각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실명을 공개할까 생각도 했지만, 양측의 공방전으로 가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와 수차례 조율 과정을 거쳐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여배우B를 직접 만났다. 항소심 이후 공식적으로 언론매체와 갖는 첫 인터뷰다. 현장엔 여배우B(이하 B씨)와 그간 재판 과정에 도움을 준 법적 신뢰관계자 C씨가 동석했다.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 유지영


여배우B "재판 이후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배우 본인의 결심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B씨가 항소심 판결까지 버틴 시간은 약 30개월. 그 동안 이 사건은 가려져 있던 영화계 성추행 및 성폭력 사례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관련 포럼 등에서 그 심각성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해당 피해자들에게 세상은 어둡다. "재판 이후 다 잘 될 줄 알았는데…"라며 B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현재까지 불안증세 등으로 치료 중인 그는 인터뷰 도중 수차례 감정을 추스르며 대화에 임했다.

"그간 검찰 수사에 재판 중이기도 했고, 피해사실에 대해 너무나 말하고 싶었지만 진흙탕 싸움에 들어가기 싫어서 침묵했어요. 그 전까진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너무 힘들어서 어쩔 줄 몰랐어요. 그러던 중 여러 추측 보도가 나오고, 또다시 저라는 사람이 이상한 성격에 예민한 사람이라 보도되고, 사실 관계도 부정확하게 나오고 있어요.

(한숨) 사건에 대해 무엇이 사실인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예전(B씨는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2015년 7월경 한 매체 인터뷰에 응한 바 있다-기자 주)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는 이게 저만의 개인 사건이 아닌 영화계 성폭력에 대한 중요한 선례인 듯해서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공대위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관계를 잡고, 제가 어떤 2차, 3차 피해를 입었는지 얘기하고 싶었어요."

2심 판결문으로 본 사건 개요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조덕제씨의 주장은 대부분 항소심에서 이미 기각된 내용들이다. 성폭력범죄 특례법에 따라 강제추행 사실이 유죄로 확정되는 경우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에 포함되고, 신상정보공개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그가 실명을 지금 공개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법정에서는 당시 조씨의 행위가 성추행인지 정상적 연기 범위였는지가 가장 큰 다툼의 대상이었다. 조씨는 "B씨의 상의를 찢는 게 합의가 됐고, 시나리오와 콘티에 맞게 겁탈하는 신이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영화의 첫 촬영이었고, 수많은 스태프가 보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재판부에 제출된 자료는 다르다. 원작 시나리오 상엔 문제의 '13번신' 마지막 장면에 '바지를 찢는다'는 표현이 있지만 그림 콘티에선 상의만 목 뒤에서 당기도록 표현돼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해자 등 부위에 미리 설정해 둔 다수의 멍 분장이 보이도록 예정되어 있었을 뿐 그 이외의 폭력이나 신체적 노출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피고인은 사전에 시나리오와 콘티를 확인했기에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B씨가 없는 자리에서 감독이 조씨에게 강력한 연기를 주문하긴 했다. 재판부는 감독이 조씨와 따로 한 자리에서 '마음대로 하세요. 미친놈처럼. 그 사이에 멍든 자국도 있다고 (중략) 죽기보다 싫은. 강간당하는 기분이거든. 그렇게 만들어 주셔야 돼요. 얼굴 위주로'라고 한 일부 발언을 인용하면서도 '22년의 베테랑 연기자로서, (중략) 예정돼 있는 수위를 넘는 내용의 연기를 하려는 경우 당연히 피해자에게 알려 공유하고, 구체적인 연기 방식을 합의해야 한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B씨와 합의되지 않았음에도 상의를 찢고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중략) 피해자를 강제추행 했다'고 판단했다.

"전혀 합의되지 않았던 상태였어요. 가해자(조씨-기자주)가 바람난 아내를 이성을 잃고 강간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말하고 있는데 사실과 달라요. 또 가해자는 그때가 영화의 첫 촬영 첫 장면이라면서 그런 상태에서 성추행은 가당치 않다고 했지만, 13번신이었어요. 영화 초반 촬영이었는데 핵심은 제 캐릭터가 만성 가정 폭력에 노출돼 있음을 암시하는 거였죠.

후반에 강한 폭력 장면이 나올 예정이었기에 그렇게 초반부터 센 장면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어요. 바람 난 설정도 아예 아니었고. 그는 대본 리딩에 참여 안 했다고 했는데 실제론 했었고, 그 자리에서 감독님이 해당 신의 목적도 설명했었어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 주인공을 보이기 위한 거라고….

또 당시 제작사 피디가 제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그가 초반에 이미 캐스팅이 돼있었고, 제가 맨 마지막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첫 촬영이라 했지만 그 제작사 및 스태프 일부와는 예전에 다른 영화로 작업한 적이 있었죠. 이미 (저 없이) 회식도 했었고, 대부분 친한 상태였어요. 제가 오히려 어색한 상황이었거든요."

B씨는 추가적으로 당시 조씨가 "대사 숙지가 전혀 안 돼 몇 번을 맞춰드렸고, 감독님 역시 꼭 해달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것도 안 했다. 그래서 좀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법원에 제출된 메이킹 영상에 담겨 있는데 계속 대사를 틀리는 조씨에게 감독이 '이건 꼭 해야 한다'며 지시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관련자들의 진술

"감독님이 세 군데 멍 분장을 지시했고, 메이킹 영상을 보면 가해자에게 손으로 짚어주며 여기에 멍이 있으니 이걸 보이게 하면 된다고 해요. 직접 가해자의 어깨를 잡고 시범을 보이면서요. 멍이 보이는 게 초점이었죠. 연기에 몰입해 확 당겨서 티셔츠가 조금 찢어질 수 있다는 말은 했지만 그게 전체와 속옷까지 찢어진다는 의미는 아니었죠.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멍이 목에 가깝게 돼 있어요. 등까지 가지도 않죠. 검찰 수사 단계에서까지 속옷을 찢은 이유가 멍을 가려서 그랬다는데 (나중에 법정에서) 검사가 분장이 안 돼 있는 부위까지 노출되면 (만성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캐릭터와 안 맞는 거 아니냐 물으니 말을 번복하면서 등 전체에 멍이 있었던 걸로 생각했다더라고요. 

사고 당일 영상엔 속옷을 찢기 전에 눈으로 제 멍 분장을 확인하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수많은 스태프가 보고 있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에요. (촬영장 조감도를 보여주며) 이게 당시 촬영장 구조인데, 보시다시피 엄청 협소해서 서너 명의 스태프만 들어갈 수 있었죠. 감독님은 다른 방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었고요."

 법원에 제출된 해당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구조도. 오른쪽이 전체 집 구조이며 감독과 모니터는 다른 방에 다수의 스태프도 큰 방에 몰려있다. 왼쪽을 보면 조씨와 피해자B씨, 그리고 세 명의 스태프만 함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원에 제출된 해당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구조도. 오른쪽이 전체 집 구조이며 감독과 모니터는 다른 방에 다수의 스태프도 큰 방에 몰려있다. 왼쪽을 보면 조씨와 피해자B씨, 그리고 세 명의 스태프만 함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독자제공


 사건 당시 B씨가 받은 멍 분장. 판결문과 B씨 말대로 양 어깨와 등 상단 세 군데에 분장이 돼 있다.

사건 당시 B씨가 받은 멍 분장. 판결문과 B씨 말대로 양 어깨와 등 상단 세 군데에 분장이 돼 있다. ⓒ 독자 제공


1심 재판에서 그 공간에 있었던 스태프 3명이 진술했다. 카메라 감독은 "허리 이상으로 찍는 것으로 감독과 이야기해서 그렇게 촬영했다. 촬영감독의 눈은 카메라니까 그 외적으론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고, 다른 두 스태프도 "촬영에 집중하느라 다른 부위를 볼 상황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B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같은 진술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스태프들이 피해사실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본 것. 

여기까지 정리하면, 문제의 장면(13번 신)은 겁탈 행위 등 일부 묘사가 있던 원래 시나리오에서 겁탈 행위가 빠진 그림 콘티로 바뀐 상태에서 촬영됐다. 때문에 항소심 판결문은 '피해자 등 부위의 미리 설정한 다수의 멍 분장이 보이게 예정됐을 뿐 그 이외의 폭력, 노출, 직접적인 성행위는 전혀 예정돼 있지 않았고, 피고인(조덕제)은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고 적시했다.

"(역시 메이킹 영상에 나오지만) 감독, 가해자와 셋이 얘기하는 장면에서 제 캐릭터 해석을 묻는 부분이 있어요. 만성 폭력에 노출된 인물이니 남편이 폭력을 휘둘러도 (더 맞을까봐) 반항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제가 말했었거든요. 셋이 리허설 하는 장면도 있는데 감독님이 뺨을 때리는 시늉을 하세요. 그리고 본 촬영에서 가해자가 실제로 주먹으로 때려 제가 주저앉는 장면이 나와요. 웬만하면 앵글에서 안 벗어나려고 서있었을 텐데 너무 아파서…. 보통 그런 액션이 있으면 미리 합의를 보잖아요. 근데 리허설과 달리 실제로 가격을 했고, 그 다음부턴 연기를 할 수 없었죠. 가해자가 합의되지 않은 행동을 했으니…."

법원에 제출된 사고 영상(메이킹 기사가 찍던 영상이 아닌 메인 카메라가 찍던 영상-기자 주)과 2심 재판부에 따르면 B씨는 끊임없이 가슴을 가리려 하고, 카메라 앵글 밖으로 벗어나려고 시도한다. B씨는 "만약 연기하는 상황이었으면 그렇게 제가 (앵글 반대편 너머로) 나가려고 할 이유가 없었다. (힘으로 못 당하자) 그 뒤로는 벽에 꼼짝없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B씨를 두고 C씨가 "성폭행 피해자가 흔히 겪는 긴장성 부동화 증상을 그대로 겪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2심 재판부는 제출된 메이킹 영상과 사고 영상을 통해 조씨가 우발적으로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했고, '그렇다 할지라도 추행의 고의가 부정될 수 없다'고 봤다. B씨는 "사고 영상엔 세 번의 테이크(같은 장면을 한 번 촬영할 때 1테이크-기자 주)가 담겨 있는데 앞선 두 테이크와 달리 세 번째에서 절 주먹으로 때리고 강제추행 하는 장면이 담겼는데 앞에 두 번의 테이크에서 가해자가 NG를 냈다"며 "현장에 제 여벌 의상이 준비돼 있지 않았고, 촬영장 대여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아 제가 NG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인격적 살인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게 메이킹 영상이다. 흔히 영화 홍보 목적으로 영화 스태프와 별도로 촬영 기사가 와서 현장 분위기를 일부 스케치 한 영상을 말한다. B씨는 1심 패소 후 해당 영상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때서야 담당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감독이 조씨에게 따로 연기를 지시하는 장면 역시 메이킹 영상에 담겨 있다.

메이킹 영상은 보통 주연 배우를 중심으로 편집되기 마련이며, 만약 배우들 노출 장면이 예정돼 있었다면 그날은 메이킹 영상 자체를 아예 찍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메이킹 촬영 기사가 현장에 있었다는 건 애초부터 노출이 예정돼 있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B씨가 몰랐던 상태에서 조씨와 감독 등만 메이킹 영상 촬영을 인지했거나 메이킹 영상 기사가 임의로 나와서 촬영했을 가능성도 있다. B씨는 "감독과 가해자 사이에 있었던 일(따로 B씨 몰래 연기 지시를 한 것)도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가해자가 제출한 메이킹 영상을 보고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선 감독과 영화 제작사, 메이킹 영상 촬영기사의 해명이 필요하다. <오마이뉴스>는 감독의 입장 표명에 따라 후속 보도할 예정이다. 참고로 조덕제씨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감독은 "조씨 말은 다 거짓말이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다"고 반박하며 24일 B씨 측 기자회견 이후 공식 대응을 예고했다.

또 다른 논란도 있다. 조씨는 "난 단역이며 상대는 주연"이라는 논리로 "B씨가 날 작품에서 강제 하차시키려 했다"고 인터뷰 등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B씨는 "실제로 하차 얘기는 사건 발생 이틀 후인 4월 18일 조씨가 연락해서 먼저 언급했다"며 당시 문자메시지를 기자에게 공개했다.

항소심 재판부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보다 더 오랜 경력의 배우다. (중략)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항의 및 사과요구, 하차요구 등의 행동이 연기자로서 피해자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 추가 예정 촬영이 한 번 정도에 불과했던 점에 비춰 (중략) 피해자가 거짓으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를 만졌다고 주장하면서 이 같은 행동(사과요구와 하차요구 등)을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것에 대해서 강하게 말하고 싶은데요. 배우 위계질서는 가해자가 가장 위였습니다. 경력으로 치면 그는 22년차고 전 17년 차에 나이 차이도 많이 나요. 아시겠지만 영화계, 연극영화과 위계질서가 엄격하거든요. 그가 단역이든 조연이든 저보다 선배이고, 나이도 스태프 포함해서 가장 많을 거예요. 제가 주연이라고 뭘 어떻게 할 상황도 아니었고, 메이킹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현장에서 NG를 내고 너무도 쉽게 그가 다시 하겠다고 하거든요. 그만큼 힘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전 끝까지 선배님이라 불렀어요. 사건 이후에도 촬영장에 온다는 걸 선배님 제발 오시지 말라고 했고…, 계속 오시면 신고할 거라고…."

B씨는 "이미 하차 의사를 밝힌 분이 이후에 촬영장에 와서 (하차 문제 등을 따지며) 스태프들에게 언성을 높이고 그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 유지영


추가 의혹들

B씨에겐 일종의 '갑질 여배우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이 얘기를 하며 B씨는 황당한 경험을 공개했다. 1심 재판이 한창이던 지난 2016년 7월에서 8월 사이 B씨를 두고 한 연예매체가 꾸준히 부정적 기사를 냈다는 것. 한 인터넷 매체 소속 기자 2명이 쓴 '[단독] 백종원 상대로 돈 갈취한 미모의 여자 톱스타', '성추행피해 주장 여배우 B씨, 자칭 교수 논란' 등 5건의 기사는 모두 B씨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킨 기사다.

B씨는 "제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톱스타도 아닐뿐더러 해당 기사는 대부분의 사실을 왜곡했고, 현재 세 건에 대해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며 나머지 건도 검찰 조사 중"이라 밝혔다. 이들 일부 기사엔 실명이 아닌 가명이 사용됐는데, 경찰 조사과정에서 조씨의 오랜 지인이자 코미디언 출신인 유명인이 당시 그 인터넷 매체의 '편집국장'을 지낸 사실이 밝혀졌다. 조씨는 이렇게 생산된 기사들을 1심과 항소심 법원에 제출했다.

B씨의 법적신뢰관계자 C씨는 "식당 일은 2014년에 발생한 것으로 피해자가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식당 측이 먼저 과실을 인정하며 보험처리를 한 사례"라며 "당시 진술과 조서들도 다 있다. 그걸 재판 과정에 이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건과 관련해 해당 인터넷매체 대표 이아무개씨는 '당시 편집국장을 포함한 해당 기자들이 허위 사실을 적시했고 B씨의 삶을 망가뜨리려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C씨는 1심 재판부가 B씨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데 이런 기사들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판 당사자들만이 입수할 수 있는 자료들을 편집국장이 가지고 기사 작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그렇게 생산된 기사는 다시 조씨의 재판자료로 쓰였어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깎아 내리기 위한 시도였죠. 한국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입증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여성인지, 자격을 갖춘 피해자인지 입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시도가 지난 1심에 있었고, 1심 재판부가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할 때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에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 이 기사들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허위 및 과장의 진술습벽'이 있다고 주장한 조씨 측 입장을 수용했습니다.

그 편집국장과 기자는 2016년 7월경에 입사했다가 조씨의 무죄선고가 난 그해 12월경에 퇴사합니다. 물론 정말 조씨가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는 입증이 더 필요하겠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자료와 증언만으로도 충분히 합리적 의심은 가능합니다. 언론을 이용한 이런 형태의 2차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드물고, 그 피해 정도가 매우 크기에 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어떤 것인지 우리 모두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C씨)

B씨는 또 다른 2차 피해도 겪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직후 전 소속사 대표에게 가서 해당 사실을 말했지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그는 "피해를 호소하는 나와 계약을 해지하고 심지어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쪽에 허위사실 확인서를 제출했더라"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B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그는 사건 이후 B씨와 계약을 끝내고, 현재 조씨의 소속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가해자는 제가 속옷을 찢은 부분만 강하게 항의했다고 주장하는데 사건 직후 제가 패닉에 빠져 울고 있을 때 감독님이 상태를 물었고, 이후 가해자와 삼자대면 할 때 다 얘기했어요. 왜 이렇게 했냐, 속옷도, 하체도 왜 그랬냐고요. 그 당시 그는 바로 추행 사실에 대해 반론하지도 않았고, 미안하다 말하지도 않았죠. 오히려 '너무 연기에 몰입해서 그랬는데 너에게도 도움 됐지?' 이랬죠. 그 말과 그 얼굴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그 직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전 소속사 대표에게 다 고지했어요. 그도 촬영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가해자가) 왜 그랬지?' 하는 대목이 녹음 파일에 있어요. 자고 일어나니 그 일이 더 선명해져서 너무 힘들다고 했는데 절 안 만나주고, 그러다 계약이 만료됐죠. 이후에도 제가 계속 얘기하니 '그래서 선배를 신고할 거냐?'라며 가해자 쪽에 가깝게 말하더라고요.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라 전 따로 개인 매니저를 구했는데 알고 보니 법원에서 가해자 쪽에 유리하게 진술했더라고요."

B씨와 전 소속사 대표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엔 전 소속사 대표가 촬영 직전 노출 여부를 문의한 B씨에게 '노출 부분이 없는 걸 OO씨도 아실 거고 단지 멍 자국이 보이는 부분에서 슬립(민소매 옷 어깨부분)까진 보인다고 한다'는 대목이 있다. 전 소속사 대표 역시 해당 영화 장면에서 B씨의 노출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8일 오전 서초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여러 여성 단체들이 모여 '그건 연기가 아닌 성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중 '찍는페미'의 배우 김꽃비씨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찍는페미'는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으로 여성 영화인들이 연대하고 페미니즘적 영화 현장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단체다.

지난 3월 서초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여러 여성 단체들이 모여 '그건 연기가 아닌 성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중 '찍는페미'의 배우 김꽃비씨가 발언하던 모습. (본 사건과는 관련 없음) ⓒ 유지영


여배우B "성추행 사실보다 이후에 당한 일들 더 괴로워"

B씨는 "성추행 사실 보다 그 이후에 당한 일들이 더 힘들고 괴롭더라"며 끝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B씨는 조덕제씨와 함께 전 소속사 대표, 조씨 변호인들, 감독과 제작사 대표 등에게도 큰 상처를 받았다. B씨는 "할 말이 너무 많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말을 이었다.

"가해자를 신고하기까지 정말 많은 감정이 오갔어요. 신고하면 제가 잃을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땐 연기도 꾸준하게 했고, 강의도 나가고 있었고, 남자친구도…. 사건 이후 그 메이킹 기사는 제 아버지를 몰래 찾아와서 가해자랑 합의하라고 했고요. 아버진 항상 제가 피해를 보더라도 남과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살라고 가르치셨어요. 그래서 제가 제대로 이런 걸 말을 못한 것 같기도 한데….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는 제가 본인을 신고한 이유를 묻는 물음에 처음엔 돈을 노린 의도가 있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엔 그냥 (비싼 속옷을 찢었기에) 기분이 나빠져서 신고한 것 같다고 말을 바꿨어요. 대중 분들이 냉정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후배지만 저 돈 모자란 사람 아니에요. 강의도 하고 있고, 명예가 중요해요. 솔직히 여성 배우로서 제가 당한 피해 사실을 누군가에게 얘기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아니잖아요.

'나 당했어!' 이러면 피해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절 보실 텐데…. 그걸 알면서도 제가 신고한 이유가 뭐냐는 거죠. 오히려 조씨가 절 형사고소 하고 이어 명예훼손 등으로 민사소송을 하면서 제게 5000만 원을 요구했죠. 하지만 2심에서 오히려 그의 강제추행과 함께 무고죄가 인정됐어요. 1심에선 제가 재판에 참석하는 걸 상상도 못했어요. 그 사람 보는 게 힘들었고, 당시 변호사도 제 안정을 위해 나오지 말라 권했고요. 그러다 패했죠. 삶에 대한 회의감이…"

B씨는 또 다른 배우의 사례를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저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한 그 친구는 아예 영화계를 떠났다"라며 B씨는 "매우 힘들어 하던 그 배우의 모습이 계속 기억난다. 그때 당사자가 아니라 그 힘듦을 몰랐는데 당사자가 되니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대해주고 있는 공대위와 C씨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잠시 침묵) 모르겠어요.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의문도 들어요.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그거거든요. 근데, 반성도 사과도 전혀 없고. 항소심 때도 너무 힘들었어요. 제발 내게 사과 한 마디라도 했으면 좋겠다고요. 근데 없는 얘기를 만들어서 거짓말하고, 진술을 번복하고. 지금은 그거잖아요. 같이 매장 당하자. 자긴 갈 데까지 갔으니…. 더 이상 저 같은 피해자가 안 나왔으면 좋겠고,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용기를 내서 같이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믿고 싶어요. 외국에선 계속 발언이 나오고 있잖아요…."

B씨가 말한 그 외국 사례, 그러니까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이자 유명 감독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사실이 폭로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가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나고, 미국 아카데미에서까지 퇴출당할 수 있던 배경엔 그 사실을 폭로한 여배우들이 있었다. 시작은 프랑스 출신 레아 세이두였다. 그에 이어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카라 델레바인이 목소리를 보탰다. 한 배우의 용기가 결국 뿌리 깊은 미국 영화계 내 적폐를 뽑는 시발점이 된 셈이다. 이와 함께 13년 전 <뉴욕 타임스>의 성추문 폭로를 웨인스타인과 몇몇 남성 배우들이 막았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근데요. 전 이 영화계 성폭력에 대한 첫 사례, 그 의미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해자가 꾸며놓은 가십거리에 중요한 제 판례가 사라지지 않길 원하기에 지금까지 참았고, 많은 전화가 오는데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의미를 사람들이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일은 비단 영화계뿐만 아닌 우리 일상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어느 날 울고 있는 제게 한 연대자 분이 뭐 잘못한 게 있는지 물었어요. 없다고 했죠. 연대자 분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여자인지 입증하려 애쓰지 말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차분하게 하나씩 입증해요'라고 했어요. 오히려 그 분은 수년 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고 하셨죠. 이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면서요."

말미에 B씨는 "제 고백으로 혹여나 저예산 영화 안에서 좋은 생각을 가진 영화인 분들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애써 힘줘 말했다.

* 후속 보도 이어집니다.

남배우A 성추행 조덕제 성폭력 영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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