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에서 포즈를 취하는 구성윤ⓒ서창환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는 구성윤ⓒ서창환 ⓒ 서창환


2016 리우올림픽 대표 출신 구성윤은 한국 골문을 지킬 차세대 골키퍼다. 러시아-모로코 친선전에 출전하진 못했으나 A대표팀에 발탁돼 향후 기대감을 높였다. 일본 J1에선 권순태(가시마 앤틀러스),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김승규(비셀 고베),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과 함께 맹활약하며 한국인 골키퍼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들 중 권순태, 김승규, 정성룡은 K리그 활약을 발판삼아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용병으로 입단했다. 일본에서 프로 데뷔해 성공한 이는 김진현과 구성윤이 유이하다. 구성윤(23)은 2009년 데뷔한 김진현 이후 실로 오랜만에 J리그에서 성공적으로 꽃을 피운 케이스다.

천생 골키퍼

포항 청림초에서 축구를 시작한 구성윤의 시작은 남달랐다. 대부분의 골키퍼가 어린 시절 필드 플레이어로 입문해 골키퍼로 전향하는 것과 달리 구성윤은 축구를 배울 때부터 골키퍼로 시작했다.

"어느 날 축구부 골키퍼 선배가 훈련하고 있는 곳에서 친구들과 공을 찼어요. 그때 제가 골키퍼를 했는데 슈팅을 막는 걸 보고 선배가 칭찬하더라고요(웃음)."

대형 골키퍼의 가능성(?)을 알아본 골키퍼 선배는 축구부 감독에게 찾아가 구성윤의 포지션을 골키퍼로 추천했다. 감독은 구성윤의 플레이를 관찰했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그에게 골문을 맡겼다.

"동네 축구를 할 때 친구들은 골키퍼를 보기 싫어했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골키퍼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필드 플레이어들과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고 손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어요. 선방할 때의 짜릿함도 이루 말할 수 없고요." 

구성윤은 고향을 떠나 고교축구에서도 제법 강호로 손꼽히는 재현고에 입학했다. 입학 후 키가 훌쩍 커 신입생임에도 주전 골리로 골문을 지켰는데, 이를 우연히 지켜본 세레소 오사카 스카우트의 레이더망에 포착돼 축구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원래는 다른 선수를 관찰하러 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운 좋게도 제가 뛰었던 모습을 보고 높은 평가를 매기셨어요. 그렇게 돼서 생각지도 못한 일본 무대에 도전하게 된 겁니다."

1학년 시절부터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세레소는 결국 구성윤이 3학년이 되던 해인 2012년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일부 언론에선 그가 입단 테스트를 받고 계약을 했다고 전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세레소는 영입 전부터 구성윤의 잠재력을 인정했고, 테스트 없이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세레소 생활

부푼 꿈을 안고 세레소에 도착한 구성윤에게 장밋빛 미래가 점쳐졌다. 소속팀 골키퍼 코치들도 훈련 시 그의 플레이를 보고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시련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다쳤던 왼쪽 무릎 반월판 연골 부상이 재발한 것이다.

"구단에 입단한 지 한 달 만에 무릎 부상이 재발했어요. 필사적으로 재활해서 2013년 8월 태국 전지훈련을 앞두고 복귀를 했어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훈련 출발하는 날에 또 부상을 당했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그것도 복귀하자마자 다시 찾아온 부상은 성인이 채 되지 않은 그에게 커다란 좌절을 안겼다. 더군다나 구성윤이 한창 부상에 신음했을 때는 한국 유망주들이 J리그에서 실패를 맛보고 하나 둘 국내로 돌아가던 시기였다.

"몸도 아프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어요. 저처럼 일본 무대를 도전했던 친구들이 돌아가는 뉴스를 보니까 조급함도 몰려왔죠."

어린 나이에 시작한 타국 생활인데 부상까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구성윤은 이 악물고 일어났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부모가 일본에 방문해 몸과 마음이 아픈 아들을 위해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니 하루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레소에서 끝까지 버틴 건 잘한 것 같아요. 그런 어려운 시기가 있었으니까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년 만에 맞은 프로 데뷔전

 구성윤은 2015년 J2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했다. 3년의 세월을 기다린 값진 성과였다.

구성윤은 2015년 J2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했다. 3년의 세월을 기다린 값진 성과였다. ⓒ 콘사도레 삿포로



기나긴 재활을 끝내고 컨디션을 회복한 구성윤에게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세레소의 주전 골키퍼는 국가대표 선배 김진현이었다. 세레소가 구성윤의 잠재력을 높이 사고 있어도 현실적으로 김진현을 벤치에 앉히긴 쉽지 않았다.

"(김)진현이 형은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제가 가장 의지했던 사람이에요. 제가 오자마자 부상으로 힘들었을 때 많이 위로해주셨어요. 하지만 필드에선 진현이 형의 존재감이 너무 컸어요. 제가 경기에 뛰려면 선택을 해야 했죠."

결국 구성윤은 2015년 세레소와 상호계약 해지 후 당시 J2 소속인 콘사도레 삿포로에 입단했다. 삿포로는 그를 주전 골리로 낙점해 2015시즌 J2 도치기SC와 개막전에 선발 출전시켰다. 일본 무대에서 3년 만에 맛보는 프로 데뷔전이자 삿포로 최연소 골키퍼 데뷔(20세 260일)였다.

데뷔 시즌에만 33경기에 출전한 구성윤은 이후 명실상부한 삿포로의 수문장으로 우뚝 섰다. 2016시즌에도 33경기 출전 22실점으로 경기당 최저 실점률(0.67)을 기록했다. 뛰어난 활약을 펼친 구성윤은 소속팀의 승격을 견인했고 그해 활약을 인정받아 J2 베스트 일레븐에도 뽑혔다.

"동계훈련에서 나고야와 연습경기에 투입됐는데 그 경기에서 감독님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냉정히 말해 세레소 시절엔 존재감이 없었어요. 그래서 삿포로에서 실패하면 축구를 관둔다는 절실함을 갖고 경기에 나섰어요. 모든 걸 쏟아 붓는 심정으로 임한 게 들어맞은 것 같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구성윤은 리우올림픽 4경기 중 3경기에 선발 출전해 주전으로 활약했다.

구성윤은 리우올림픽 4경기 중 3경기에 선발 출전해 주전으로 활약했다. ⓒ 대한축구협회(KFA)




소속팀에서의 맹활약은 자연스레 대표팀 소집으로 이어졌다. 구성윤은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에서 3경기 선발 출전해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중 8강 온두라스전 0-1 석패는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올림픽도 그렇고 대표팀 경기는 태극기를 달고 뛰는 만큼 리그 경기랑 차원이 달라요. 사명감을 갖고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누벼서 정말 뜻깊었습니다.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대회를 마감해 실력을 온전히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드네요."

아쉬움은 있지만 국제 무대를 경험한 구성윤은 더욱 단단해졌다. 올 시즌도 그는 삿포로의 확고한 주전 문지기다. 팀 전력이 약해 지난 시즌에 비해 실점(40)이 늘어났지만, 리그 30라운드 기준 29경기에 선발 출전할 만큼 팀은 여전히 그를 신뢰하고 있다.

현재 삿포로는 J1에서 9승 7무 14패로 13위를 기록 중이다. J1 잔류를 위해선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승점을 벌어야 한다. 실점하면 곧바로 팀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자리인 만큼 구성윤의 어깨가 가볍지 않다.

"팀이 잔류할 수 있도록 제가 뒤에서 든든히 뒷받침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대표팀 욕심이 없냐는 질문도 많이 하시는데 의식하지 않으려고요. 후회하지 않고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를 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9번 선방해도 한 번 실패하면 비난 받는 게 골키퍼다. 그래서 골키퍼는 어렵다.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한 구성윤도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혹독한 경쟁을 펼친 그였기에 이를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구성윤은 자신의 두 손으로 팀을 지켜낼 수 있다는 책임감을 품고 장갑을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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