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G 상상마당, 시네마달


여기,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생각도 커 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에게 '미래'란 곧 '관계 맺기'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고생들은 춤을 추고, 사춘기에 진입한 아들은 아버지를 염려한다. 이 아이들을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바르게'라는 수식으로 옭아맬 필요는 없다.

때때로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그 응시와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응원을 대신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이 거제의 소녀들과 평택의 소년에게는 든든하고 친구 같은 '어른들'이 곁에 자리하고 있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땐뽀걸즈>와 IPTV 등 2차 플랫폼으로도 만날 수 있는 <안녕 히어로>는 그렇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소중한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들은 아이들의 건강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들의 관계 맺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안도감을 경험케 만든다.

물론 그 안도감은 '어른들'의 책임과 책무에 대해 다시금 고민케 만드는 성찰의 시선으로까지 연결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잊지 말아야 할 아이들의 처한 환경과 조건을 기어이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추석 연휴가 다 가기 전에 놓치면 아쉬울 한국 다큐멘터리 세 편을 소개한다. 색깔은 다르지만,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와 관계 맺기를 그린 <땐뽀걸즈>와 <안녕, 히어로>는 분명 다채로운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재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춤추는 소녀들과 친구 같은 선생님 <땐뽀걸즈>

ⓒ KT&G 상상마당


소녀들은 오늘도 춤을 춘다. 어른들에게도 생소한 스포츠 댄스다. 수업 시간에 종종 졸기도 한다. 시험은 운명에 손을 맞긴 채 '찍기'로 일관하기도 한다. 방과 후엔 아르바이트하랴 동생들 돌보랴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땐뽀(댄스)반' 활동이야말로 나를 나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삶의 활력이자 목표다. 그리고 이들에겐 친구 같고 삼촌 같은, 기존 '선생님' 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지도교사가 존재한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땐뽀반' 학생들과 이들을 지도하는 이규호 선생님의 활동과 일상에 카메라를 가져간 <땐뽀걸즈>는 상영시간 내내 웃음을 짓게 만드는 '행복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4월 이미 < KBS 스페셜 >을 통해 안방에서 선보인 이후 극장까지 진출했다. 불황을 맞은 조선업의 도시 거제도를 배경으로 소녀들과 교사의 우정과 노력, 그 안에서 빚어지는 감동의 무게를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담아낸다.

물론 그 '스포츠 댄스'가 전부는 아니다. 누구는 아버지와 떨어져야 하고, 누구는 홀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다섯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부모 대신 돌보기도 한다. '땐뽀반' 아이들의 일상은 거제 소녀들만의 현재가 아닌 우리 보통 아이들의 그것과 겹치지만, <땐뽀걸즈>는 한발 더 나아간다. 딱히 '학교 졸업 후 조선소 취직'이란 쳇바퀴를 고민하지 않으면서 '입시지옥'의 어두운 그늘도 자연스레 거부하는 이들의 건강하고 꿈 많은 얼굴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지녀야 할 현재이자 '밝은 미래'의 원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제 여상' 부임 전에도 20년 간 방과 후 활동으로 댄스 스포츠를 가르쳤다는 이규호 선생님의 존재감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구수한 사투리와 친근함으로 학생들과 교감하는 이 중년 선생님은 아마도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만나볼 수 없었던 가장 '학생 친화적'인 교사의 모습으로서 큰 울림을 전한다.

청춘 그리고 성장, 또는 교육과 지역 문제, 가족과 우정 등등. 그리하여 이 <땐뽀걸즈>가 품은 화두들은 실로 다채롭다. 무엇보다, 싱그러운 10대 소녀들의 건강함과 그들이 품을 가능성을 그 어떤 자극적인 장면 없이 순수하게 마주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땐뽀걸즈>는 소중하다. 화면과 연출 역시 담백하다.

아니, 아이들이 춤을 추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담은 이 <땐뽀걸즈>야말로 추석 연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의 눈을 통해 본 해고노동자 아버지 <안녕 히어로>

ⓒ 시네마달


아버지는 노동자다. 해고노동자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인 아버지는 파업 중에 해고를 당했고, 이후 수년간 복직 투쟁을 이어 갔다. 12살 때부터 그 모습을 지켜본 아들은 이제 중학생이 됐다. 그 아들은 다른 아버지들과 조금 다른 '아빠'가 염려되고 걱정된다. 또래와 다르게 그런 아버지가 나오는 '뉴스'도 열심히 챙겨본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지 공부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싫지는 않다. 아니, 좋다.

<안녕 히어로>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김득중 지부장의 아들 현우의 시선으로 본 해고노동자의 가족 이야기다. 현우의 중학교 입학 이후 수년 간의 인터뷰와 일상, 그리고 아버지의 활동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이 작품은 언뜻 '아이의 시점으로 본 어른'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예술 작품의 궤적을 닮았다. 그만큼 쉽고 공감을 살만한 접근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더욱이 아이의 시선으로 본 해고노동자의 복직 투쟁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보여주지 못한 접근법이기도 하다.

그 접근은 그래서 계속된 질문과 궁금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아빠는 지는데도 계속 싸우는 거야?"라는 현우의 질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의 삶을 어떻게든 공감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 안에 '당위'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며칠 만에 집에 들어왔다 해도 고작 한두 시간밖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는 활동가 아빠에 대한 아쉬움도, 지방선거에 출마한 노동자 후보를 위해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는 노동자 아빠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수년째 이기지 못하는 싸움을 이어나가는 의아함도, 그 모두 이 중학생 아들이 감내해야 할 아버지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다. 이는 어쩌면 해고노동자를 바라보는 일반인 혹은 외부자들의 시선과도 겹치는 지점들일 수 있다.

<안녕 히어로>는 결국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명제로 귀결되는 해고 노동자 문제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그 시선은 강요나 당위, 거창한 명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영화 말미, 키도 더 크고 목소리도 더 굵어진 현우는 분명 성장해 있었다. 결국, 복직을 선택한 아버지를 보는 관점은 훨씬 현실적으로 변모해 있었다. 복직하지 못한 아버지의 동료들을 걱정할 만큼. 결국, 현우는 아버지의 투쟁을 지켜보며 어떤 '이해'와 '공감'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안녕 히어로>가 전하고픈 메시지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단순히 해고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했는가 하는 직접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소년의 성장을 통해 해고노동자들을 아픔은 물론 이 땅의 노동 현실을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우의 성장이야말로 해고와 노동환경을 둘러싼 대한민국의 미성숙한 '어른들'의 대척점에 자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 히어로>는 그렇게 해고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우회적으로, 그러나 뼈아프게 통찰하는 다큐멘터리다.

<안녕 히어로>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내놓은 또 하나의 걸출한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미시와 거시를 섬세하게 아우르는 <종로의 기적>과 <두 개의 문>에 이어 곧 <공동정범>을 선보일 계획이다. 결이 확연히 다른 이 <땐뽀걸즈>와 <안녕 히어로>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를 꼭 들어주시길. 그 안에서,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그들에게 필요한 '어른'들의 모습을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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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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