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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른들이 지켜내지 못한 참사' 세월호. 속죄하는 마음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보통의 시민들이 모여 참사 1년 후인 2015년 4월 2일 부터 매주 목요일 '304목요포럼' 이란 이름으로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하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려 노력했습니다. 304명의 죽음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력함을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 기자 말

왜?
▲ 가만히 있으라 왜?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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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더 지나고 나니까 상황정리가 되잖아. '그 때 이렇게 했다면 아니면 저렇게 했더라면 더 살릴 수 있었을까?' 이런 게 계속 맴도니까..."

세월호를 아직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어른들이 미안해' 했던 그 마음 져버리지 못하는.

참사 당시 승선권
▲ 김성묵씨의 세월호 승선권 참사 당시 승선권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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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씨는 저의 친구입니다. 저는 뉴스에서 세월호를 처음 접했고 그 시간 그는 세월호에서 탈출했습니다. 우리는 세월호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소방호스 있잖아. 그걸 내려서 아이들을 구조했어. 호스가 미끄러우니까 아래에 있던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먼저 어깨 위로 해서 올렸어. 배가 한번 기우뚱하니까 배 안에 물이 확 들어찼고 갑자기 조용해지더라고. 그렇게 아이들은 배 안에서 물에 잠겨버리고 말았지."

김성묵씨 탈출전 마지막 사진
▲ 참사당시 김성묵씨 탈출전 마지막 사진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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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있잖아. 아무래도 나는 어른이니까 좀 더 상황판단이라던 지 그런 게 좀 더 빨랐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고. 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난 더 빨리 나와서 소리라도 더 지르고 몇 명이라도 더..."

저도 생각합니다.

'지난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엇이라도 더 했다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세월호에 대한 의문이 조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3년 전의 저는

'나 하나 뛰어들어서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내가 죽게 되더라도...'

이런 무서운 생각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비단 저뿐 아니라 대한민국 많은 성인들이 그런 슬픈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스무살의 어느 봄날, 스물 네 살의 어느 비오는 날, 그리고 취업에 대한 걱정, 안타까운 연애에 술 한 잔 기울이는 밤을 지새울 그 날들.

그날들을 이미 나는 겪었기에.

김성묵씨의 자동차
▲ 3년만에 올라온 김성묵씨의 자동차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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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나온 성묵이의 차. 저에게는 살아줘서 고마운 친구인데 이 친구는 마지막에 구하지 못한 아이들의 눈빛을 잊지 못해 하루하루 어깨가 기울어갑니다.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에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눈도 제대로 못맞추는 성묵이는 그 날 일이 생각날 때면 벽에 대고 미친 듯이 속죄의 절을 합니다. 가족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은 병이 되어가고 있겠죠. 3년이 훌쩍 넘은 지금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켜주지 못해서
▲ 어른들이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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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대리운전회사운영자, 컴퓨터 기술자, 여행사 직원 등 직업은 다양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매주 목요일 세월호 기록을 뒤적이며 기록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글로 적고자 합니다. 3년이 지나 주인에게 돌아온 김성묵씨의 자동차 만큼이나 망가져 버린 마음과 상처를 함께 들여다보고 하나씩 함께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에 한가지 물음을 갖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쯤에 있나요?"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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